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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풍경의 초상

글 유혜인

Unclosed Bricks : 기억의 틈 | 10.12~12.2 | 아르코미술관

《Unclosed Bricks: 기억의 틈》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아르코미술관

1979년에 완공되어 곧 40주년을 내다보는 아르코미술관이 ‘주제기획전’을 마련했다. 전시가 ‘주제’로 삼은 것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일대를 특징짓는 붉은 벽돌 또는 벽돌건물들로, 기획자와 참여작가가 한 해 동안 이 건축(재료)에 담긴 역사적,사회적, 개념적, 질료적 특징에 천착해 작업한 결과물 또는 과정들을 선보인다. 여섯 작가(팀)의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은 두 개 층의 전시공간에 넉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지하 1층 전시실의 좁은 진입로에서 팀 ‘ㅋㅋㄹㅋㄷㅋ’으로 참여한 김경란과 김도균의 작업이 관객을 맞는다. 마로니에 공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아르코예술극장’과 ‘예술가의 집’ 외벽과 모서리를 촬영한 사진은 벽지로 제작되어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게 부착되어 있다. 일정한 간격을 사이로 늘어선 벽돌의 격자무늬와 고른 빛의 효과는 붉은 벽돌 건물 표면을 더욱 평면적이고 추상적으로 제시한다. 이미지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건물이 지닌 차이가 드러나는데, 명확히 다른 두 건물의 색깔과 형태, 낙서의 유무로 각각의 건물과 이용자가 맺어온 관계까지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40년간 실제 기능을 충실히 해 온 벽돌 건축물의 지표인 이 사진들을 지나 관객은 곧 실재가 아닌 기호로 기능하는 벽돌과 마주하게 된다. 김민애는 건축자재로서 벽돌이 응당 지닐 것으로 여겨졌던 견고함과 내구성은 지워지고 표면만 남은 벽돌의 새 정체성에 주목한다. 인테리어 장식재로 기능하는 벽돌 문양의 시트지는 스티로폼 구조물에 덧대어져 있고, 전시실 바닥에는 인공 잔디, 대리석 문양의 시트지가 부유하는 기호로 무심히 나열되어 있다.
벽돌이 지닌 물성과 이미지에 주목한 앞의 두 작가(팀)과 달리 강서경의 작업은 벽돌이 지닌 단위적 속성을 연상시키는데, 2011년부터 시작된 구작을 포함한 연작 〈높은, 정, 자리〉는 회화와 조각, 공간과 구조물 간의 관계성을 실험한다. 캔버스와 화문석, 철제 구조물과 실처럼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재료들은 그 존재감을 숨기지 않은 채 서로 뒤엉키고 조립되는데, 엄밀히 모듈을 적용한 구성으로 각 구조물 사이, 구조물과 공간사이는 하나의 정밀한 복합구조체로 변모한다. 전시 공간을 듬성듬성 점유한 김민애와 강서경의 작업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어디선가 경쾌한 랩 음악이 들려온다. 최초로 서울에 벽돌 건물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던 일본강점기를 살다간 시인 이상의 작업을 참조한 전소정의 작업은 이상 시의 건축적 배열성과 도시에 대한 정서를 오늘날의 매체, 영상과랩 음악으로 되살린다. 담벼락 크기만 한 두개의 스크린 사이의 틈새 공간,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법한 그 공간을 지나다 보면 마치낡은 다세대 벽돌주택 골목 사이를 빠져나가는 순간을 연상하게 되고 영상 속 CCTV에 비친 흐릿한 군상의 모습에 한 세기 전, 시대의 부자유를 예민하게 감지했던 시인의 형체를 투영하게 된다.
2층 전시실 입구에는 ㅋㅋㄹㅋㄷㅋ이 제작한지도-테이블이 자리한다. 작가(팀)의 작업실이 위치한 성수동 일대 벽돌건물들의 생장과 역사를 수집하고 도식화한 지도가 테이블 상판을 장식하고, 지도의 기호를 설명하는 색인은 전시실 기둥에 새겨져 있다. ‘주거’, ‘비주거’, ‘벽돌마감’, ‘근린시설’등 관찰의 기록들이 적힌 색인에는 ‘정연한’, ‘발랄한’과 같은 주관적 형용사가 간간히 보인다. 객관과 주관, 계획과 무질서 사이의 미묘한 공존이 이색인과 알록달록한 지도-테이블에서 드러난다. 이 지도-테이블 양쪽으로 권혜원과 김영은의 영상/사운드 작업이 나란히 위치한다. 공간은 커튼으로 가볍게 구획되어 있지만 스피커에서 들리는 으스스한 흐느낌은 전시실 전체를 채운다. 권혜원은 아르코미술관 일대의 벽돌 건물을 현기증적인 시선으로 포착한다. 부동산의 시장논리는 친숙함을 낯섦으로, 추억을 기능으로 대체한다. 철거민들의 인터뷰를 참조해 녹음한 음성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탄식과 비명처럼 간헐적으로 흘러나오고, 카메라의 시선은 끊임없이 휘청거린다. 이내 전시는 돌로 지어진 망루, 그 붉음이 지닌 함의에 주목한 김영은의 사운드 작업 〈붉은 소음의 방문〉으로 마무리된다. 1920년대 전북 임실에 지어진 붉은 벽돌 망루의 정체는 1960년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김질락의 옥중수기, 각종 신문기사를 통해 추적된다.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에 뒤얽힌 기억들, 온 신경을 깨웠던 요란한 소리와 시대를 호령했던 부조리에 대한 개인의 증언이 새빨간 모니터 화면에서 규칙적으로 떠오르고, 헤드폰에서는 글자들을 낭독하는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감정은 여과된 채 일정한 속도로 속삭이는 문장들은 곧 건너편 권혜원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흐느낌과 부딪힌다. 이 비이성과 광기 어린 소리들은 마치 망령처럼 헤드폰 속을 침범해 붉은 화면과절묘한 호응을 이루며 뒷목을 오싹하게 만든다.
낙서가 가득한 낡은 건물로 남아있든, 인테리어 장식재로 소모되든, 붉은 벽돌 건물은 여전히 도시의 풍경을 이룬다. 전시는 벽돌이라는 평범한 사물이 지닌 물성과 기호적 특성에서부터 그것이 통과해온 역사의 궤적까지, 범주화할 수 없는 층위와 틈새를 예술의 피사체로 삼아 예민하게 포착하거나 느슨하게 묘사한다. 미술관이 자리한 고즈넉한 붉은 벽돌 건축의 풍경은 감상의 대상이 되는 대신 관찰과 측정, 회고와 물음의 대상이 된다. 전시는 곧 풍경을 향한 오마주, 21세기의 풍경화, 풍경의 초상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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