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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숨은그림찾기- 낭중지화(囊中之畵)를 위하여

글 심장근

박순옥, 〈아름다운 선물〉, 화선지에 수묵채색, 35×68cm, 2018한결회 그룹의 정기전이 인사동 갤러리M에서 10월 17일부터 10월 23일까지 열렸다. 여덟 분의 작가들이 함께하는 한결회는 ‘문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잘해서 하는 일과 사랑해서 하는 일의 질적 차이는 크다. 또한, 잘하는 일을 사랑해서 하는 일의 깊이와 품격은 더할 나위 없이 높고 깊다. 이번 한결회의 출품작이 모두 그런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번 글에서 나는 지중 박순옥 작가의 작품 한 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팔인팔색의 작품 중 그의 작품이 유독 내 눈길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앞에 멈추었다는 뜻이고, 앞에 멈춤은 그 작품을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뜻이다. 나는 왜 이 작품을 내 안으로 끌어들였을까?

박순옥의 작품은 물상의 논리에 구애되지 않고 거침이 없다. 저 작품에서 구성은 좌우 두 부분으로 양분된다. 그림에서 좌우 양분의 구도는 지양해야 하지만 문인화는 그 지양의 극복을 지향해야한다. 문인화에 중도는 없는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확실한 선택을 지향하는 것이 문인화라고 볼 때 좌의 난이냐 우의 매화냐를 선택하도록 작가는 두 화제를 배치하고 있다. 나도 하나를 선택했고 내 선택은 오른쪽의 매화이다. 스스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면, 삼백 년 된 매실나무 등걸에서 꽃가지가 나왔고 그 가지에서는 불매향의 꽃이 피었다. 저 매화는 누가 키운 것일까? 이미 삼백 년 전의 것이라서 이제 와서는 키운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꽃이 핀 저 매화 자체가 중요한 주인이자 객체인 것이다. 그래서 그 향을 곁에 두고 있는 작가가 중요하다. 아마 난도 누군가는 선택할 것이다. 그 선택은 좌우의 갈등이 아니라 한 화면에서의 화합적 자기중심의 선택이며 이를 통해 한 작품은 둘 이상의 주인을 확보하게 된다. 비로소 물상이 갖는 비논리, 즉 난과 매화의 동시적 개화를 극복하면서 둘 이상의 컬렉터들에게 그들의 세상을 선사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문인화가 지향하는 묵향이 그윽하다. 저 농담의 단순한 덩어리가 쉼 없이 꿈틀거리며 뿜어내는 묵향은 매화에서는 매향을, 난에서는 난향을 나에게 주고 있다. 난향과 매향의 충돌을 염려하겠지만, 꽃과 향기는 결코 다투지 않는다. 매향을 맡는 동안 난향은 그의 거리로 적당히 물러나 있고, 난향을 맞는 동안 매향은 또한 자기 중심을 지키며 난향의 반경을 지켜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쉬이 피로해지는 후각을 위하여 매향이 잊혀질 즈음이면 난향은 매향의 고명이 되어 매향을 되살려주는가 하면, 매향은 흩어지는 난향을 위한 데코레이션이 되어주기도 한다. 지중은 둘 사이의 배치를 그렇게 함으로써 난과 매의 한 화면 속 동시성을 절묘하게 살리고 있다.

그지없이 화려한 컬러 시대에 흑백으로 그 형상만을 드러낸 그림 한 점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림은 컬러 그림과 흑백 그림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으로 나누어진다는 걸 이 작품은 ‘좋은 그림’이 되어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문인화에서 색을 천대할 생각은 전혀 없다. 우직스러울 정도로 흑백의 농담을 통해 심상을 표현한 그의 한결같은 문인화를 대하는 결기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인사동에 갤러리는 어림잡아 50 군데가 넘을거라고 한다. 그 갤러리에 숨어있는 그림들, 숨어 있지만 그 향기는 갤러리의 두툼한 유리와 벽을 뚫고 세상으로 나온다. 끊임없이 융기하고자 하는 존재들인 그들(한결회)은, 그들의 비단 주머니(전시회)에 귀한 작품을 스스로 담았고, 비로소 향기를 세상에 내놓는 낭중지화(囊中之畵)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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