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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노동과 예술, 그 사이

글 장현경

현장(Site) | 11.30~12.29 | 인사미술공간

박경진, 〈IDOL- 커피 한 잔 드시고 하게요〉, 캔버스에 유채, 227.3×545.4cm, 2018 이미지 제공: 인사미술공간

흥미로운 삶이란 어떤 것일까? 타고난 재능과 직업을 일치시키는 것 아닐까? 할리우드 세트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라라랜드〉에는 자신의 재능과 직업을 일치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지만, 둘 모두 재능과 직업을 일치시키는 데에는 성공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적성을 살린 직업을 가진 사람도 드물고, 설사 가졌다 해도 일터에서 자기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박경진 작가도 자신의 재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하지만 당장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그가 발휘해야 하는 재능이란 예술가의 자유로운 표현과 결이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붓을 들고 색을 칠하지만 영화 세트장에서 정해진 시안에 따라 세트장을 구현해야 하는 작화 노동자 중 하나일 뿐이다. 박경진의 작업이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자신의 붓으로 색을 칠하는 행위가 일터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노동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를 회화적인 방식으로 주제화한다는 데 있다.
전시장 1층으로 들어서면 관람자는 노동의 현장을 부분부분 드러내는 6점의 회화를 마주하게 된다. 바닥과 문을 페인트칠하는 모습, 점심시간, 쉬는 시간…. 그런데 이들 그림은 한 점만 제외하고는 모두 전시장 바닥에 놓여 있으며, 바닥에는 지저분한 페인트 자국이 흩어져 있다. 이러한 바닥의 페인트 자국은 그림 속의 현장을 관람자가 발딛고 서 있는 전시 공간까지 생생하게 이끌어낸다. 노동의 결과물로서 완성된 영화 세트장은 전시장 지하 1층에 이르러서야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낸다. 그곳에는 병풍처럼 세워둔 나무 판넬 세 개에 캔버스를 이어 붙여 완성한 한 점의 회화가 자리하고 있다. 화려한 컬러와 그리스식 기둥이 연이어 이어져있는 영화 세트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물들이 살짝씩 어긋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좌측에서 바라본 3층짜리 개방형 건물 바로 옆에 같은 건물을 우측에서 바라본 그림이 이어지고, 다시 같은 건물을 좌측에서 바라본 형태가 이어지는 식이다. 이러한 구성은 병풍 식으로 세워져 있는 설치방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여전히 그림 속 노동자들의 얼굴은 불분명한 형태로 지워져 있는데 이는 작화노동의 현장에서 개개인의 고유성이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관람자는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고 나서야 비로소 작화노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2층에 이르면 작가가 노동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이어붙인 〈아카이브〉 작업을 만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작화 노동자들 개개인의 정체가 밝혀진다. 또한 전시장 2층에 있는 작품들의 경우, 한 점도 바닥에 있지 않고 전부 벽에 걸려 있다는 사실도 붓으로 색을 칠하는 행위의 예술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이 (바닥이 아닌) 벽에 걸려 있는 것은 일반적인 회화 전시에서 나타나는 방식으로, 이들이 예술적 관망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이제부터 작가의 고유한 표현이 중요
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사실 박경진 작가의 회화 전반에서 엿보이는 널찍한 붓 자국과 강렬한 색(원색이나 검정색) 사용은 붓으로 색을 칠하는 행위 자체가 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2층에 있는 회화들에서는 (노동이 아닌) 예술의 일환으로서 작가의 고유한 붓질이 강조되고 있다. 가령, 〈초록붓질〉과 같은 작품에 이르면 노동의 현장은 거의 사라지고, 추상적인 회화에 가까워진다. 그림은
이제 초록이라는 색을 칠하는 행위에만 몰두하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연두색, 진한 녹색, 카키색, 군청색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시도된다. 이제 붓으로 색을 칠하는 행위는 더 이상 노동의 일환이 아니라 예술적 표현이 되고, 화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과감한 붓 터치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전시장 밖을 나서면 이제부터는 우리 삶에 자리한 문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혹은 적성을) 살리는 일인가. 만일 그렇다면 일터에서 그러한 재능은 어디까지 발휘할 수 있는가. 일터에서 온전히 허락되지 않는 나의 고유성, 그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좁혀야 하는 것일까.
박경진은 자신의 노동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자신의 예술에서 노동을 발견해낸다. 작화 노동을 회화작품으로 변모시키는 가운데 그는 노동과 예술을 나란히 두기도 하고, 약간 어긋나게 두기도 하며, 하나로 합쳐버리기도 한다. 노동도 예술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때 그의 회화는 노동이 예술에, 또 예술이 노동에 틈입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어느 한쪽이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 자신의 예술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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