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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회화에서 대리석으로

글 문정현

임하영: Sample Room | 11.16~11.25 | 레인보우큐브 갤러리

임하영, 〈주공아파트-옥색〉, 캔버스에 유채, 145.5×112.1cm 2015 이미지 제공: 레인보우큐브 갤러리 1월

회화의 표면이 대리석의 무늬와 동일한 재질과 형식으로 매끄럽게 완결되어 있을 경우 이를 무엇으로 명할 수 있을까. 그림으로 물성의 환영을 만드는 행위에서 싸구려 대체 마감재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일련의 유사함을 발견하는 임하영의 캔버스는 매체의 속성을 사유하는 실험적인 장으로 전개된다. 가령 매끄러운 타일의 마감 실선과 9등분으로 구획되어 패인 줄눈으로 구성된 〈인조 대리석-sample〉과 〈대리석-sample〉의 표면은 매끌한 대리석의 질감과 형태를 그대로 따른다. 대상
의 특성을 캔버스 위에 일차적으로 그리는 데에 국한된 〈콜드 스톤〉, 〈테라조〉와 달리 형태와 무늬의 질감이 완전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보다 진전된 실험양식으로 구현되며 회화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으로 소급되는 것이다.
100호에 달하는 〈주공아파트-옥색〉 페인팅에서 아파트 내부의 문틀과 바닥의 타일 등 세부적인 요소들에 주목하고 이를 20호 정도의 작은 사이즈로 옮겨온 네 점의 〈주공아파트-sample〉패널 또한 기존의 대형 밑그림과 상보적인 관계를 맺으며 매체의 양식을 탐구한다. 각각의 패널은 화장실 바닥으로 유추되는 공간의 타일, 천장과 벽면 모서리의 옥색 몰딩, 문틀 겉면의 양식과 패인 중앙 칸막이를 따와서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안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현된 〈주공아파트-옥색〉의 초현실주의적 환영 속에서 각자의 맺음이 미묘하게 어긋난 창틀과 바닥재들을 떼어내고 이를 패널화로서 응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비 속에서 눈앞의 대형 캔버스는 물질성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저 멀리 꿈속의 비물질적인 환영으로서 인식되며 현실의 조형된 사물 앞에서 전복된다. 목조주택의 바닥재에서 타일 슬래브를 하나하나 떼어낸 뒤에 전시장의 벽면에 건듯 회화에서 대리석으로 조정되는 것이다.
이처럼 회화의 표면에 퍼티와 같은 안료부터 유화, 제소 등의 재료들을 배합하여서 일정한 양식의 테라조나 인조 대리석으로 시공하는 임하영의 붓질은 여타의 채색 방식과는 또 다른 수행적 행위로 전치됨을 볼 수 있다. 전시명인 ‘샘플룸’에서 암시되듯이 일정한 규격으로 짜인 패널은 그 표면을 대리석의 질감으로 적확하게 변용함으로써 견본의 마감재가 되어서 또 다른 회화의 형식들을 실험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표현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성을 제조하는 데에 가까운 작업들의 골조는 외부의 이질적인 재료를 도입하여서 회화의 틀을 구성하는 것과 달리 내부의 전통재료들을 바탕으로 외부의 이질적인 질감을 완벽하게 모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양식으로 생산되는 조각이 된다. 혹은 역으로 회화에 기댄 ‘캔버스-조각’으로 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화의 자율적인 형식에 대한 고민의 양상으로 이뤄짐에도 그것이 호텔의 대리석 화장실 벽면이라던가 건물 로비의 대리석 표면과 같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의 대상에 대한 속성을 탐구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임하영은 이질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원상태를 모조한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캔버스에 부착했던 콜라주 요소들과 달리 백색 시멘트를 혼합하여 경화한 테라조 강편(鋼片)으로 변하는 패널은 그 피와 살이 동일해 보일지라도 구조는 상이한 배다른 등가물로 부조되기 때문이다. 패널 위로 이질적인 요소를 가져와서 부착하는 것이 아니라 패널을 자체의 이질적인 인조 대리석으로 만든 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가져가서 거꾸로 부착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콜라주를 넘어선 현실적인 사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장황하게 연출된 호텔 로비의 테라조를 한 조각 몰래 떼어내고 이를 적확하게 재현해낸 전시장 벽면의 패널 타일과 바꿔치기 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를 장소특정성에 기반을 둔 회화의 실험적 양식으로 논증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 부여될 수 있을 것이다. 패널 타일의 한 단면을 마치 두부와 같이 잘게 잘라서 공중에 붕 뜨게 배치해놓은 전시의 포스터는 이와 같은 작가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결론지어서 오피스텔 혹은 모텔의 입구 공간으로 보이는 〈인조 대리석〉의 벽면 타일만을 떼어내서 그 질감을 적확하게 본뜬 〈인조 대리석-sample〉과 같은 작업을 우리는 회화이지만 동시에 시멘트로 경화된 대리석의 표면으로 부를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장식적이더라도 지극히 이젤 회화의 규격 속에서 완결된다는 점에서 장식성에서 배제된 조각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려지는 재현은 건물의 골조나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감과 재질의 요철을 반영하고 본뜨고자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재현의 행위와 물질적 소산으로 연계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임하영의 《Sample Room》은 가능성이 풍부한 신진 작가들의 작업적 얼개를 차례로 소개해 온 레인보우큐브갤러리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매체 탐구에 대한 실험적 양식의 고안들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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