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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은밀한 관찰주의자

글 천수림

조경재: 치수(齒髓)를 드러내다 | 11.19~12.20 | 아마도예술공간

조경재, 〈의자〉, 대형카메라 필름 촬영, 시트지 출력, 가변크기, 2012 이미지 제공: 아마도예술공간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의 〈정원사〉(1590년경)는 검은색 그릇에 양파, 당근, 버섯, 순무, 마늘, 박하, 밤, 상추 등 야채가 가득 담긴 그림으로, 지금도 여전히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야채로 가득한 이 그림을 거꾸로 뒤집어보면 정원사로 명명된 한 사람이 보인다. 이 그림은 ‘관점’을 달리하라는 메시지를 보낼 때 쓰이는 단골 그림이기도 하다. 관점(perspective)은 14세기에 생긴 단어로 사물을 보는 방식을 변형하는 광학유리를 뜻한다. 이는 라틴어 ‘perspicere’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떤 것을 고려하고 평가하는 관점으로 풀이할 수 있다. 조경재 개인전 《치수를 드러내다》는 사진을 주매체로 작업하는 작가가 설치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어떻게 확장시켜나가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다.


‘치수’는 치아 내부의 신경과 혈관을 포함하는 조직을 지칭한다. 작가는 자신이 본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것을 찍는다. 목재, 철재, 플라스틱, 종이, 스티로폼, 비닐 등 기초적인 재료에 의자, 사다리, 상자 등이 쓰인다. 주변에서 발견된 사물에 색을 입히고, 이어붙이고, 잘라서 활용해 하나의 조형구조를 만든 후 촬영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보통 사진이라고 인식하는 액자에 담긴 사진은 〈블루치즈〉(2017)가 유일하다. 사진 속 여러 재료는 서로를 의식하며 하나의 형태를 갖추고 마침내 한편의 추상화가 완성된다. 직관을 통해 만들어진 형태, 즉 모양은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오브제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작가는 선과 면의 분할과 색의 차이, 화면 구성 등 사진이 추상회화와 같은 모습이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회화와 조각적인 형태의 구조물은 뷰파인더의 관점으로 다시 정렬되고 재구성된다. 대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곧바로 작가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단초를 거리낌없이 보여준다.


작가는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기까지 과정을 짐작케 할 수 있는 구조물을 설치형태로 전시장 안에 펼쳐두었다. 설치작품과 함께 대칭하는 위치에 커다란 거울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사진찍기’라는 행위 이전을 상상하게 만든다. 테라스에는 실제 공간에 존재했던 목재나 철재 등으로 면과 선 등을 분할한 조형적 공간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
다. 지하층에 전시된 작업은 사진을 프린트해서 액자에 걸리는 방식과 달리 시트지에 출력[〈황금기둥〉(2018)]해 투명한 창에 밀착시키거나[〈SHOW ROOM〉(2018)] 투명지에 출력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투명지에 출력한 〈Drum〉(2013), 〈의자〉(2012), 〈Q4〉(2016)도 사진을 넘어 공간연출의 한 요소로 버무려진다.


조경재의 사진작업은 내부에서 발하는 빛을 통해 사진기의 원리를 환유하고, 두 점의 사진을 겹쳐 네거티브 방식으로 라이트 박스를 만들거나, 영상을 투사해 공간을 연출한다. 모두 ‘빛’을 활용한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사진과 설치, 공간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인 자신만의 ‘치수’를 기꺼이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지하, 지상층
의 설치를 통해 〈블루치즈〉라는 한 장의 사진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반대로 〈블루치즈〉 사진 속 구조물들은 전시장 안에 펼쳐짐으로써 ‘사진’의 원리를 훔쳐보게 된다. 사진이 처음 발명될 때 사진가는 ‘빛의 사냥꾼’으로 불렸다. 조경재는 거울, 환등기 등을 통해 ‘빛을 훔치려’ 했던 사진작가들의 욕망을 한껏 즐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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