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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채색화로 그린 현대문인화의 정취

글 김윤섭

최한동: 어쩐지…봄바람  | 12.12~12.17 | 인사아트센터

 

최한동, 〈다시 서정으로…〉, 혼합매체, 100×100cm, 2006

볼수록 화려하고 눈부시다. 온 세상을 다 채우고도 남을 것 같은 흐드러진 매화 향기의 범람이다. 땅끝에 스치듯 바람에 흩날리는 홍매(紅梅) 가지들은 꽃분홍 머리칼을 휘날리는 처녀를 연상시킨다. 그 밑으로 암수 서로 정다운 말 한 쌍이 연정을 나누며 노닐고 있다. 또 다른 곳에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방금 나온 일행들이 꽃놀이를 가고 있다. 이처럼 최한동 작가의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화면 구성이지만, 발산하는 메시지만큼은 그 어떤 그림보다도 강렬하다.


최한동 작가의 작품 제목은 줄곧 ‘어쩐지…봄 바람’을 사용하고 있다. 이 제목에 이미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모두 담겨 있다. 말 그대로 ‘봄바람’처럼 ‘여리지만 진한 생명의 기운’을 발산하는 작품을 보여준다. 또한 ‘어쩐지’라는 말처럼 ‘은근하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만큼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참으로 절묘한 작품 제목과의 궁합이다. 결국 주제를 품고 있는 제목인 셈이다. 최한동 작가가 주로 소개하는 그림의 소재들을 살펴보면 그림의 의도가 더욱 뚜렷해진다.


최한동 작가의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진 소재로는 매화, 초원, 한 쌍의 말, 여인, 해바라기 등이다. 그런데 여기에 꼭 양념처럼 빠지지 않는 것이 ‘바람’이다. 너무 세거나 약하지도 않은 기분 좋은 ‘살랑바람’을 가미한다. 아마도 이 바람은 그림에 등장시킨 대상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숨결과도 같은 역할을 하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사계절중에 봄바람을 닮았다. 긴 동면(冬眠)에서 깨어난 만물에게 따뜻한 온기로 새로운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는 봄바람이야말로 최한동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봄의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한 소재로는 능수매화 장면 말고도 짙푸르고 너른 초원이 있다. 마치 제주도 봄 들녘을 연상시키듯, 광활한 푸른 초목과 안개 바람 혹은 쌍마(雙馬)의 출현은 최한동 작가 특유의 ‘봄의 정경’이다. 가로로 낮게 누운 풀섶의 표현 역시 연한 바람에 휘날리는 홍매와 같은 맥락이다. 최한동 작가의 그림에서 봄 풍경과 더불어 자주 소개하는 소재가 잘 익은 해바라기로 표현한 가을 풍광이다. 이 가을 장면은 봄의 감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도 이해된다. 특히 햇살을 물씬 머금고 탱탱하게 익은 해바라기가 압권이다.


최한동 작가에게 봄의 느낌이건 가을의 느낌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계절의 표현이 아니라, 그 이면에 내포된 정서적 교감이다. 마치 옛 문인화(文人畵)가 대상의 사실적 표현이 아니라, 대상이 지닌 본질적인 상징성을 드러내는 이치와 같다. 그리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절제하여 여백의 미학을 살려내듯, 최한동 역시 동양 미학이 지닌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인 조형 미학을 그대로 옮겨왔다. 비록 현대적인 채색재료로 구현한 다양한 장면들이지만, 헤쳐 보면 오히려 현대문인화나 다름없다. 자주 등장하는 그림 소재 중에 여인의 초상은 매우 큰 호기심을 자아낸다. 최대한 적은 선과 여백으로 화면을 단순화시켰다. 하지만 그 여인의 모습에선 최한동 그림의 모든 요소가 함축되어 있다. 일필휘지로 그은 머리칼과 어깨선은 능수매화 줄기와 같고, 지긋이 내려감은 속눈썹은 버들잎이나 초원의 여린 풀잎을 닮았다. 그 정점은 바로 연분홍빛 입술이다. 수줍은 듯 앵두처럼 옹 다문 입술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던 홍매의 꽃잎이 살짝 내려앉은 것 같다. 끝으로 다소곳한 얼굴에 비해 건강해 보이는 등과 가슴은 풍요로움의 넉넉함을 지닌 가을빛 해바라기와 진배없다.


최한동 작가의 〈어쩐지…봄바람〉 시리즈는 봄의 계절미학과 가장 잘 어울린다. 현대적인 소재와 시공을 넘나드는 조형 어법의 환상적인 조화가 최한동 작가의 작품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원초적인 자연미와 인간 본연의 감수성 그리고 무한한 생명의 경이로움이 한데 어우러져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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