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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 ESSAY

긴장과 우여곡절

글 박성소영

박성소영, 〈Profile〉, 나무합판, 멜빵, 알루미늄, 대나무, 라텍스밴드, 벽돌, 203×114×9cm, 2018

나의 초기 작업들은 문명 혹은 인류의 존재 전후에 대한 경험 없는 향수를 작가적 언어의 풍경으로 상상하는 회화들이었다. 무의식에서 비롯된 개인사적인 기억과 감성을, 대립과 공존이라는 은유적 형상들의 이미지로 제시하며 화면을 조형하는 것이었다.

그 후, 과거, 현재, 미래가 연속적이고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모순과 뒤얽힘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시간의 중층성을 조형적 탐구의 주제로 삼아 이를 평면에서부터 콜라주, 3차원의 오브제 및 공간 구성으로 확장해왔다. 즉, 회화적 모티브에서 연결되고 변주되는 조각 오브제와 레디메이드(ready-made) 사물들이 또 다른 그림처럼 펼쳐지는 작업들이다.

나는 길가에 버려졌지만 내겐 아름다운 물건들, 이웃들에게 얻은 ‘한물간 것’들을 수집해왔다. 또한 언젠가 필요하겠거니 ‘미래를 대비해’ 기꺼이 지출했던 포장도 열지 않은 새 물건들부터, 차마 버리지 못한 오래된 나의 추억의 것들까지 작업실에서 분해되고 재조립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제는 생산되지도 않고 플레이어도 없는, 30년이 지나버린 카세트테이프, 베를린 거리를 오랜 시간 함께 달려온 나의 빨간 자전거 앞바퀴, 지금은 헤어진 옛 남자친구의 멜빵, 20년을 넘게 쓴 허리띠, 베를린 이웃집 독일 할머니에게 얻은 나무 훌라후프, 과장된 모차르트의 초상화가 그려진 낡은 피아노의 뚜껑 등은 전혀 다른 기원을 갖는 사물들, 혹은 지금 바로 쉽게 사서 쓰고 버릴 수 있는 일회성 소비재들과 새로운 신체로 재조립된다.

다시 말해, 나의 사적인 시간들이 묻어있는 유일한 중고 생활용품들은 가치가 사라진 죽은 문명의 흔적들이었으나, 조형적 놀이를 통해 하나의 풍경이나 정물로, 결국엔 객관적 현재, 공적인 미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살아있으나 궁핍하고 공허해 보이기까지 하는, 생산을 위한 생산품 오브제들과의 대조적 조합으로 낯선 시차와 긴장을 물질적으로 구성하면서, 그 틈새에서 벌어지는 비결정적이며 우연한 즉흥을 기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작업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시공간성이라는 의미를 구현해 낼 수 있도록 압축 및 상징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물, 박테리아 같은 비정형의 모티브는 인류 형성 그 전부터, 그리고 인류보다 더 오래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과 이어지는 연속적 현재라는 시간의 레이어를 보여주며, 투사(Warrior), 방주(Ark) 같은 의도된 건축적 모티브는 미래를 위하여 희생되는 현재를 이야기한다.

이렇듯 영원성과 사라짐이라는 추상적 존재 의미를 현실의 구체성으로 치환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반된 감각, 이미지, 이야기들이 서로 밀어내고 당기는 에너지의 증폭들로 경험되기를 바라며, 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박성소영(b.1971) 작가는 2004년부터 2009년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마이스터 슐러를 졸업했다. 2009년 독일 쟈니 빈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Money Didn’t Matter Yesterday》를 개최한 후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등에서 개인전 및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다. 최근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긴장과 우여곡절》(2018.12.7~12.23)을 합정지구에서 선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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