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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T

예술가는 그곳에 없었다

글 김영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클리너(Marina Abramović. The Cleaner)》 | 2018.9.21~2019.1.20 | 피렌체 팔라쪼 스트로치(Firenze Palazzo Strozzi)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클리너(Marina Abramović. The Cleaner)》 전시 전경 ⓒ김영인

 

이야기의 시작은 퍼포먼스 아트, 혹은 행위 예술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정립되어가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화와 조각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매체와 구분되는, 20세기의 산물인 퍼포먼스라는 매체를 바탕으로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던 시기였다. 냉전이 한창이던 유럽을 가로지르는 철의 장막조차 도발과 전위로 가득했던 당시의 변화를 막지는 못했다.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등을 포함하는 당시 유럽의 공산 진영 중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던 유고슬라비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시기 유고슬라비아의 동시대 미술을 상징하던 공간인 베오그라드의 학생문화회관(SKC)에서는 변화를 감지하는 예술가들의 매체적 실험이 한창이었다. 그 예민한 젊은이들 중 하나였던 검은 머리와 높은 콧날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b.1946)가 훗날 ‘퍼포먼스의 대모(Godmother of Performance)’로 불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20년 후에 시작될 지독한 내전으로 인해 8개의 나라로 쪼개질 유고슬라비아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전까지 개념미술적 경향이 다분한 회화와 콜라주 작업을 해온 아브라모비치는 70년대를 기점으로 퍼포먼스를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선택하였다. 1975년 작가가 유고슬라비아를 떠나 세계를 무대로 작업을 선보이기 전까지, 초기 퍼포먼스 작업들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리듬(Rhythm)’ 시리즈이다. 〈리듬 0(Rhythm 0)〉부터 〈리듬 10(Rhythm 10)〉까지 명명된 이 연작들은, 작가 자신의 몸을 소재로 하여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몸과 그 한계를 시험하는 작업들이었다. 현재까지 유효한 작가의 주제 의식이 일찌감치 발견되는 이 퍼포먼스들의 무대는 그의 고국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유고슬라비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탈리아는 이젠 사진과 비디오로만 증언되는 이 작업들을 직접 목격할 행운을 얻었다. 1973년 로마의 빌라 보르게세 현대미술관(Galleria Borghese)에서 행해진 〈리듬 10〉에서 작가는 한 시간 동안 그의 펼쳐진 왼손 손가락들 사이를 칼로 오고가는 위험한 게임을 선보였다. 이듬해 밀라노에서 선보인 〈리듬 4(Rhythm 4)〉에서는 벌거벗은 작가가 의식을 잃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의 얼굴을 향해 산업용 팬(fan)이 45분간 돌아갔다. 같은 해인 1974년, 리듬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가장 극단적인 퍼포먼스였던 〈리듬 0〉은 나폴리의 스튜디오 모라(Morra Arte Studio)에서 열렸다. 몸과 의식, 무의식을 둘러싼 탐구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위해 아브라모비치는 관객들이 무엇을 해도 좋은 사물로서 자신의 몸을 내어 놓았다. 작가의 신체에 사용할 수 있는 일상적 도구, 음식물, 흉기를 포함하는 72개의 사물들이 관람객들에게 주어졌다. 그렇게 6시간에 걸친 퍼포먼스는 그가 피와 눈물범벅의 나체로 실려 나가는 것으로 끝났다.

그와 같은 출발 선상에 있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가학적이고 소모적인 퍼포먼스 경향을 지속하지 못하고 금세 다른 예술적 매체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그럼에도 아브라모치는 지금까지 퍼포먼스라는 장르의 영역을 계속해서 지켜오고 있다. 어느덧 70대에 접어든 이 예술가는 40년이 넘는 시간을 안고, 무모하고 도발적이었던 예술 인생의 시작점이었던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왔다.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는 곳은 피렌체의 굵직한 현대미술 기획 전시를 담당하고 있는 공간인 팔라쪼 스트로치이다. 르네상스의 취향이 물씬 풍기는 건물만큼이나 ‘회고전’이라는 단어는 퍼포먼스 아트와 쉽사리 어우러지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어느 매체보다 두드러지는 퍼포먼스의 특성상, 실시간으로 접할 수 없는 작업들을 생생하게 전시장 안으로 들여올지는 어떤 기획자라도 고민에 빠지게 할 문제이다. 이번 회고전은 100여 점에 이르는 사진, 비디오, 설치,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매체와 더불어 증언과 기록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현장감을 더해 줄 리퍼포먼스(Re-performance)를 그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리퍼포먼스는 아브라모비치 자신이 2005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발표한 〈일곱 개의 쉬운 작품들(Seven Easy Pieces)〉에서 먼저 등장한 개념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퍼포먼스 작품의 보존 가능성을 탐구하는 차원에서, 작가 자신을 포함하여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비토 아콘치(Vito Acconci),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등 1960~70년대에 활동한 작가들의 7개의 퍼포먼스가 재현된 바 있다. 비록 작가 자신에 의해 재현된다고 하더라도 리퍼포먼스는 여전히 그 원전이 되는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마치 아브라모비치의 작업 속 주제 중 하나인 시간과 공간에 놓인 인간의 숙명을 상징하는 듯하다. 한편 퍼포먼스와 리퍼포먼스 사이의 간극은 한계인 동시에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리퍼포먼스를 음악가들의 연주에 따라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음악 작품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작가의 대표작들에 동시대의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특별히 선별된 젊은 예술가들이 리퍼포먼스에 나섰다. 총 5개의 리퍼포먼스들은 매회 다르게 진행되며 전시장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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