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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큐비즘의 계보학

글 박재연

《피카소와 큐비즘》 | 2018.12.28 ~ 2019.3.31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요즘도 피카소를 소환해야 전시가 되나?’ 나도 모르게 피식거림이 새어나왔음을 미리 고백한다. 그러나 다소 모호하고 (그래서) 진부한 제목과는 달리 《피카소와 큐비즘》은 입체파의 변천 양상을 정공법으로 다루는 전시다. 파리 시립 근대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입체주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의 최고 미덕은 예술사적인 맥락을 십분 반영한 유기적인 구성이다.

큐비즘의 기원을 다루는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은 세잔(Paul Cézanne)의 풍경화 두 점 (〈햇살을 마주 본 레스타크의 아침〉, 〈물가의 저택〉)으로 시작한다. 전시장 입구 벽에는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다’라는 피카소의 말이 쓰여 있는데, 이는 언젠가부터 블록버스터 전시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거장의 ‘신성하고 (그래서) 어색한’ 명언으로 흘려 넘기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역사적 함의를 담고 있다. 1907년에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서 열린 세잔 회고전은 드랭(André Derain)과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 로트(André Lhote)와 같은 야수파 화가들의 전향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거칠고 뜨거운 색채 파괴를 목적으로 하던 야수파 화가들은 세잔의 구성에서 영향을 받아 지적이고 냉정한 분석 중심의 구도로 옮겨가게 되어, 기존과 다른 화면 구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블라맹크의 〈부지발〉, 〈센 강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기 야수파들은 세잔의 영향을 받아 구성의 변화를 추구하였지만 색채 사용에 있어서는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나란히 걸린 드랭과 프리즈(Émile Othon Friesz)의 누드화들은 세잔이 즐겨 사용하던 주제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세대의 화가들이 어떻게 현대 회화 계보의 첫 페이지를 채워가는지를 가늠케 한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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