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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미니멀 아트의 뒷면

글 이영준

《포토, 미니멀(photo, minimal)》 | 2018.12.7.~2019.1.13 | 갤러리 룩스

 

김도균, 〈still life series〉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갤러리 룩스

 

황규태, 박남사, 이주형, 김도균 4인의 사진가들이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사진으로 전시를 열었다. 사진에서 미니멀리즘이라니 놀라운 사건이다. 아직 사진에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가 정착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의 시도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후에 꽃 피울지도 모를 미니멀리즘 사진의 기원이 될지 아니면 한 번의 시도 혹은 추억으로 끝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래서 《포토, 미니멀》 전시를 하나의 사건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데 이 사건은 너무 늦게 혹은 너무 일찍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늦은 이유는 미니멀 사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추상적인 사진이 나타난 것이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일이기 때문이고, 너무 이른 이유는 아직도 사진에서는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 정착된 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미술에서 1970년대에 시작된 모노크롬 회화가 이제는 ‘단색화’라는 브랜드로 정착된 것에 비하면 늦은 것이다. ‘미니멀리즘’이란 말을 쓰지 않고 ‘포토 미니멀’이라고 한 것이 역사의 무게를 살짝 덜려고 하는 트릭(trick)인지는 몰라도, 위의 4인의 작가들은 어쨌든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들이 이름을 남기려는 그 역사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미니멀 아트의 기원을 멀리 잡아보면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검은 사각형(The Black Square)〉(1915)까지 올라간다. 말레비치가 미니멀리즘이란 말을 쓴 것은 아니고 절대적인 조형성을 추구하는 ‘쉬프레마티즘(Suprematisme, 절대주의)’을 표방했다. 비슷한 시기에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테오 반 두스뷔르흐(Theo van Doesburg), 게리트 리트펠트(Gerrit Rietveld)등과 더불어 ‘데 스틸(De Stijl)’ 그룹을 결성한다. 그들은 ‘신조형주의(Nieuwe Beelding)’를 표방했다. 필자가 공부가 짧아 이들이 왜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 그리고 혁명의 전야 같은 격동의 시대에 이렇게 단순한 사각형과 원에만 집중하는 태평한 미술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돌프 로스(Adolf Loos)가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것이 1910년이고 『장식과 죄악』이라는 책을 낸 것이 1913년이니까 시대는 바야흐로 복잡한 형상을 걷어버리고 오로지 순수하고 추상적인 조형성만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미니멀리즘의 시초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기계문명의 대폭발과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과 항공기, 독가스 등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계적인 대량살상무기가 쓰인 전쟁이고, 이는 기계의 확장이 인간을 말살하는 쪽으로 쓰인 크나큰 비극의 사례이다. 반면 예술에서 기계미학은 기계 특유의 규칙성, 추상성 등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추상미술은 기계미학을 가운데 두고 나타난 완전히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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