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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ROPOLOGY OF IMAGES ④

죽음의 수소문 : 미라, 그림자, 그리자이유

글 이나라

《상자 속 스피츠 마우스 미라, 그 밖의 보물들(Spitzmaus Mummy in a Coffin and other Treasures)》 전시 전경, 오스트리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2018-2019, 이미지 제공: 이나라

 

1. 질문들

 

첫 번째 질문. 비엔나의 미라 상자

오스트리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Wien)은 2012년 이후 이름난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에게 큐레이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완벽하게 조율된 이미지로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의 세계가 내적으로 붕괴되는 우화를 그려내는 미국 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과 연극, 영화, 패션 분야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주먼 마루프(Juman Malouf)가 이 기획의 세 번째 큐레이터로 참여한 전시 《상자 속 스피츠마우스 미라, 그 밖의 보물들(Spitzmaus Mummy in a Coffin and other Treasures)》(2018.11.6~2019.4.28)이 2018년 11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서 공개되었다. 웨스 앤더슨과 주먼 마루프는 박물관이 수집하고 보유하고 있는 4백만 개의 오브제/작품 중 400여 개의 광물, 동물 박제, 악기, 무기, 민속학 오브제, 회화 등을 골라 8개의 작은 ‘경이의 방’을 구성했다. 이 중 350여 개는 수집된 후 (아마도 전시 가치가 없다는 기획자들의 판단에 따라)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오브제/작품들이다. 이들이 꾸민 전시장은 거대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처럼 보이기도 하고 팝아트의 21세기 버전을 목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는 현대사회의 경이의 방이라 할 세련된 디자인 상품을 모아둔 팝업 숍(pop-up shop) 같아 보이기도 한다. 연대기적 순서, 작가, 국가, 매체 등 고전 박물관의 전시 논리는 두말할 나위 없이 무시되므로, 우리는 무역사적인 이벤트를 목격하는 셈이고 여덟 개 전시실 진열장은 ‘활인화’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그의 영화 속 장면들처럼 오브제 자체보다 오브제를 진열장 안에 배치하는 미장센과 몽타주의 기예 자체를 눈여겨보게 만든다. 그런데 이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고대 이집트의 동물(대형 쥐) 미라 상자가 진열되어 있다. (그 이외에도 장례와 관련된 몇 가지 오브제가 스피츠마우스 미라 상자 맞은편 방에 전시되었다.) 상징적 의미를 벗겨내기 가장 힘든 오브제라 할 미라 상자는 왜 기이함을 자아낼 목적으로 오브제의 역사적 맥락을 거의 무시한 채 크기, 색채, 동작 등만을 참조하고 편집하는 전시장 한가운데 배치되었을까?

 

두 번째 질문. 부타데스(Butades)의 그림자

1세기 무렵의 로마 정치가 플리니우스(Plinius)는 『박물지』 35권의 여러 구절에 회화와 조소의 기원에 관한 신화를 소개한다. 이집트인들은 플리니우스 시대보다 6천여 년 앞선 시기 이집트인들이 회화를 발명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하며 플리니우스는 고대 그리스 코린트 지역의 도자기공 부타데스의 신화를 언급한다. 부타데스의 이야기는 부타데스의 딸과 딸이 사랑했던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딸은 아마도 전쟁터로 떠나는 연인의 그림자 윤곽을 벽에 따라 그렸고, 부타데스는 이 윤곽선에 점토를 붙여 부조를 만들고, 도자기로 구웠다는 이야기다. 잘 알려진 이 이야기는 그림자가 회화 혹은 조소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림자는 거울에 비친 반사상처럼 인간이나 사물 등 물리적 실체에 결부된 이미지다. 훗날 바사리(Giorgio Vasari)는 예술가들에 대한 전기를 기록할 때 13세기의 화가 지오토(Giotto di Bondone)가 목동 시절 동물의 그림자를 따라 그리며 그림을 배웠다고 적었고,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는 그림자 대신 나르시스(narcissus)가 바라보았던 물 표면의 반사상을 회화에 비유하기도 했다. 플리니우스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를 빌려 회화는 원본을 닮은, 원본을 좇는 이미지의 생산의 기예의 문제라는 단단한 믿음에 기초를 제공한 것일까?

 

세 번째 질문

‘그리자이유’(Grisaille, gris는 프랑스어로 회색을 뜻한다)란 회색 단색조의 그림을 일컫는 미술 용어다. 채색회화의 명암법을 지칭하던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明暗) 역시 그리자이유와 같은 단색조의 그림을 지칭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명암법이 단축법과 함께 회화의 꽃이라 주장했다. 현대의 관람객은 회색 단색조라는 표현을 들으면 우선 현대 모노크롬 추상회화를 떠올리기 쉽다. 우리의 상상과 달리 그리자이유 기법은 중세 말엽,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유리 공예와 회화에 폭넓게 사용되었다. 체계적인 그리자이유 연구서는 드문 편이지만, 여하튼 그리자이유 회화의 사례를 연구한 이들은 그리자이유 기법이 구상 회화의 표현 수단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그리자이유는 조각이 묘사하는 모든 것을 회화 역시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기법 중 하나로 회화와 조각 간의 우위 경쟁(파라곤, paragone)이 그리자이유의 확산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초기 북부 이탈리아에서 세밀한 필치를 뽐내던 화가 만테냐(Andrea Mantegna)는 부조 조각을 모방한 여러 그리자이유 성경 회화를 남기기도 했다. 플랑드르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은 성경을 주제로 삼은 여러 폭의 제단화를 그리면서 제단화 바깥쪽에 그리자이유 기법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등을 그려 넣곤 했다. 이들 그리자이유 형상은 석조 조각을 모방하고 있지만 조각보다 더 생생해 보였다. 동시에 그림을 주문한 주문자는 결코 그리자이유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리자이유는 이미 죽은 자들, 지상에 더 살지 않는 이들, 생명을 갖고 있지 않은 조각을 묘사하는 것에 쓰였기 때문이다.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Hans Belting)은 플랑드르 회화의 발명을 다룬 저작 『세계의 거울(Miroir du monde)』에서 제단화의 생명과 색채는 사람들이 그리자이유 형상이 장식하고 있는 제단화 바깥쪽 패널이 감추고 있는 안쪽 패널이 모습을 드러낼 때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러 폭의 패널로 이루어진 제단화는 닫은 상태에서는 신도들에게 제단화 겉면 형상을 보여주고 열린 상태에서는 안쪽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극단적인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 말년의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는 그리자이유 회화에 대한 여러 파편적 노트를 남겼다. 그는 르네상스 회화에서 그리자이유 이미지는 잔존하고 있는 고대적 이미지의 흔적이며 에너지의 균형점이라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친다. 여하튼 아비 바르부르크는 조각과의 경쟁에서 회화의 가능성을 입증하려는 이유로 그리자이유 회화가 그려졌다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그리자이유 회화는 무엇을 볼 수 있게 할까?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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