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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상속세의 문제점

글 이무용

현행 상속세 제도를 둘러싼 문제들은 작품의 문화적 가치와 공적 기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재화 가치로만 판단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물(작품) 대납을 수용하지 않는 걸 보면 환금성이 낮다는 이유 때문일 터인데, 내라는 세금은 재화 가치를 판단 근거로 삼고, 실제로 받는 세금은 재화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 불합리의 전형인 것이다.

최근 미술품 상속세에 관한 논란이 미술계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하모니즘의 창시자 故 김흥수(1919~2014) 작가의 유족이 상속받은 작품을 비영리재단에 기증했으나 ‘해당 재단이 기증의 전제조건(김흥수미술관 건립 등)을 지키지 않는다’며 재단의 이사장과 사무총장을 고소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부터다. 보통의 경우 작품의 상속이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데다 상속 작품의 가격 산정이 용이하지 않고 상속되는 작품의 수량도 확증할 수 없어서 상속세 부과가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유명 작가의 유족인 경우 엄청난 재화 가치를 상속받음에도 불구하고 과세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김흥수 작가의 유족은 자진해서 국세청에 상속신고를 한 케이스다. 이에 국세청은 상속 작품 70여 점의 가치를 110억으로 추산하고 유족에게 상속세 48억을 부과했다. 엄청난 금액을 고지받은 유족은 작품을 팔아서 세금을 내자니 고인의 유지(미술계의 여망은 차치하더라도)를 거스르는 불효를 저지르게 되고, 그렇다고 그만한 돈을 만들자니 빚을 내기에도 형편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선친의 유지와 세금의 의무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비영리재단을 찾아 기증에 의한 미술품 보존이라는 과제를 해결코자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상속되는 미술작품의 재화 가치 판단은, 화랑에서 전시할 때 가격표에 적힌 가격을 일컫는 전시가격(replacement value), 공인기관에서 매긴 가격으로 감정기관의 평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가늠하는 공정가격(fair market value), 실제매매가격(selling value)을 기준으로 한다. 공정가격이든 전시가격이든 실제 매매가격이든 예측 금액일 뿐이므로 환금성(작품을 팔아 돈으로 만드는)이 낮은 미술작품의 특성을 고려할 때 유족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고가의 값이 매겨진 작품이라도 팔아야 돈을 만들 수 있는 노릇이고, 부과된 세금을 돈으로만 받는 지금의 세무 제도하에서는 세금이 곧 문화적 유산의 보존을 저해하는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유족 측이 현금을 만들 능력이 안 돼서 상속세 납부가 지연되면 가산금까지 추가되고 결국 장기연체자나 신용불량자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경우도 허다한 실정이다. 마땅히 상속세를 내야 하는 기업 총수나 재산가의 상속에는 오만가지 탈법과 절세 요령들이 만연하는데 정작 유산은 받았으나 팔 수도 없고, 오히려 작품의 보존과 작가 정신의 선양이라는 숙제를 떠맡게 된 유족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미술진흥법(안)’을 하루빨리 제정하여 위작 및 작품의 가격을 평가할 공적 기관 설립을 주장하면서 이를 통해 유산으로 물려받은 작품의 값을 정하는 일과, 상속세 또한 현금이 아닌 작품으로도 대신 낼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는 있으나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는 작가가 고인이 되고 나면 유족 측에서 자구책으로 법인을 세우고 법인 산하에 미술관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경우와 국공립미술관이나 사립미술관에 기증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마저도 미술관 측에서는 짐이 된다는 이유로 꺼리는 형국이다. 그러니 이러한 여건이 되지 않는 대다수의 유족은 그야말로 큰 짐 덩이를 안고 살아야 하는 실정이다. 적잖은 생존 작가들로부터 “아무리 피를 토하며 그린 작품이면 뭐하겠는가, 짐을 물려주는 꼴인데. 생전에 다 태워버리고 가야 할 판”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여기에는 보관의 문제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평면의 경우도 그렇지만 입체 작품인 경우 보관상의 문제는 실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부동산이나 금붙이처럼 환금성이 높은 유산에 대해서는 현금이 아니어도 현물로 세금을 낼 수는 있게 하지만 작품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이유는 세무 당국이 문화적 가치의 공적 기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재화 가치로만 판단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도 현물 납세를 수용하지 않는 걸 보면 환금성이 낮다는 이유 때문일 터인데, 내라는 세금은 재화 가치를 판단 근거로 삼고, 실제로 받는 세금은 재화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 불합리의 전형인 것이다. 문화선진국 프랑스에서는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신 납부하는 ‘대물변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국가기관과 연계하여 작품이 관리·보존되면서 대부분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 자체의 가격이 올라, 국가재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각 부처와의 연계(세무 당국과 문화 당국의 협력체제 등)는 꿈도 못 꿀 일이고, 현물 대납 또한 현재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더욱이 김흥수 작가처럼 하모니즘 창시자라는 혁혁한 업적이 두드러진 작가의 작품이 현재의 처지가 되도록 방치한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세무 당국은 현물(작품)로 세금을 받는 대신 그 작품을 문화를 담당하는 부처로 이관해서 그로 하여금 관리·보존·선양하게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미술계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하나의 입장으로 뭉쳐서 국민의 권리인 ‘입법청원’을 통해 관철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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