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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뒤샹+α

글 편집팀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이기도 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에 한 명이기도 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그가 타계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뒤샹과 그의 작업은 마치 수수께끼처럼 남아있어 계속해서 연구자들과 대중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르셀 뒤샹(The Essential Duchamp)》(2018.12.22~2019.4.7)은 이러한 뒤샹의 예술세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실제 뒤샹의 작품이 한국을 찾은 것은 무려 32년 전인 1987년( 9.1~9.30, 서울미술관)이었으니 말이다. 뒤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이 전시는 스웨덴 출신의 미술사학자·평론가이자 파리 퐁피두 센터의 초대 관장이었던 폰터스 휠텐의 소장품 위주로 구성되었으며, 〈여행가방 속 상자〉를 비롯한 동판화, 석필화 등 총 11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시기의 문화 진흥이라는 국가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았지만, 뒤샹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19년, 우리는 뒤샹에 대해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뒤샹 외에 새롭게 재발견된, 혹은 재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뒤샹의 대규모 회고전 《마르셀 뒤샹》을 기회 삼아 『미술세계』는 뒤샹의 유산을 재발견하는 특집을 준비했다. 이름하여 ‘뒤샹+α’. 사뭇 거창해 보이는 제목이지만, 뒤샹 스스로 그러했듯 뒤샹을 ‘재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미술세계』는 1987년 10월호(통권 제37호)에서 “《뒤샹-서울》전 서울미술관에서 9월 한 달간 열려”라는 제목으로 뒤샹의 첫 한국 전시를 다뤘으니, 2019년 3월호 특집에서는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섭외된 필자들의 깊이 있는 담론들은 뒤샹의 예술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 우리가 몰랐던 뒤샹의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내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독일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또 다른 뒤샹의 전시 《마르셀 뒤샹. 100개의 질문. 100개의 대답》도 담겨 있어 흥미를 더할 것이다.

늘 시대를 앞서갔던, 그리고 여전히 앞서있는 뒤샹을 주제로 하고 있는 만큼 조금은 밀도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그래도 혹시 아는가. 만약 30년 뒤 뒤샹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을 때 『미술세계』의 이번 특집이 다시 한번 좋은 참조가 될 수 있을지도. 뒤샹의 ‘α’를 찾는 기나긴 여정에 독자분들도 함께 하기를 바란다.

 

▶ 《마르셀 뒤샹》전 소개

▶ 다섯 번 사는 사람 | 김정현

▶ 〈큰 유리〉를 찾아서 | 장서윤

▶ 마르셀 뒤샹과 사진 | 박평종

▶ 마르셀 뒤샹과 엘사 폰 프라이탁 로링호븐: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체성 | 오경은

▶ 마르셀 뒤샹의 반언어로서의 언어 | 정연복

▶ 앵프라 맹스(infra-mince)의 역사적 두께: 뒤샹의 ‘지극히 얇은’ 유산과 현대 영상 설치 작업의 계보 | 곽영빈

▶ 슈투트가르트 미술관 《마르셀 뒤샹. 100개의 질문. 100개의 대답》 전시 리뷰 | 이정훈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마르셀 뒤샹(The Essential Duchamp)》은 국내 처음으로 선보이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뒤샹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과 공동으로 주최되었다. 총 150여 점의 회화와 드로잉, 레디메이드를 비롯한 아카이브를 선보이는 본 전시는 입체주의(Cubism)에 대한 뒤샹의 관심을 살펴볼 수 있는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2)〉부터 레디메이드(ready-made)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샘(Fountain)〉, 〈자전거 바퀴(Bicycle Wheel)〉까지 그동안 문헌 속 이미지로만 접할 수 있었던 뒤샹의 작업을 실물로 만날 수 있어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전시는 한국에서의 첫 회고전인 만큼 뒤샹의 삶의 여정을 따라 총 4부로 나뉘어 소개하며 뒤샹의 작품과 예술 세계를 관람객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미술세계』 지면을 통해 뒤샹의 예술적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전시의 2부는 회화를 포기하고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새로운 방식을 창안했던 1912년 이후 시기를 조명하는 작업들로 구성되었다. 〈자전거 바퀴(Bicycle Wheel)〉(1913)는 뒤샹의 첫 번째 레디메이드 작업으로, 자전거라는 일상의 기성품에서 그 기능을 제거한 바퀴를 예술적 오브제 자체로 제시한 것 이기도 했다. 그 무렵 뒤샹은 자신의 노트에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적었는데, 레디메이드는 바로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에 대한 뒤샹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레디메이드 개념은 〈자전거 바퀴〉가 나온 1913년 이전부터 뒤샹이 천착해온 것이기도 했다. 이에 2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1915-1923, 이하 〈큰 유리(The Large Glass)〉를 구상하며 제작한 〈신부(The Bride)〉(1912), 〈초콜릿 분쇄기 No.1(Chocolate Grinder No.1)〉(1913), 〈초콜릿 분쇄기 No.2〉(1914) 등을 전시하고 있어 뒤샹의 회화 작업에 담겨 있는 레디메이드 개념을 살필 수 있다. 비록 이번 전시에서는 아쉽게도 〈큰 유리〉의 실물을 볼 수 없지만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작품과 동일한 사이즈로 영상 설치물을 제작했으니 주의 깊게 관람하길 바란다. 한편, 〈자전거 바퀴〉, 〈샘(Fountain)〉(1917), 〈병결이(Bottlerack)〉(1914) 등 뒤샹의 주요 레디메이드 작품들도 직접 만날 수 있어, 작품이 ‘망막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뒤샹의 예술적 정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제3부에서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뒤샹이 파리로 다시 돌아와 작업하던 시기를 살펴본다. 이때 뒤샹은 미술가에서 체스 선수로 직업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근 20년간 직업정신을 갖고 체스 활동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뒤샹이 장 크로티(Jean Crotti)와 쉬잔 뒤샹(Suzanne Duchamp)에게 보낸 1920년 10월 20일자 편지에는 “에로즈 셀라비는 192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유태인 이름일까? 성전환을 한 것이다. 내 개인적 취향에 로즈는 가장 ‘추한(醜漢)’이고 셀라비는 ‘세 라 비(C’est la vie, 그것은 인생)’의 단순 말장난이다.”라고 쓰여 있다. 또한 미술과 공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광학적 실험을 했던 〈로토릴리프(광학 원반)[Rotoreliefs(Optical Disks)]〉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업들은 상업적으로는 대실패였지만, 광학 도구들을 이용해 순수 미술을 산업 문화와 분리하는 선을 의도적으로 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뒤샹은 자신의 작품을 총망라한 미니어처 복제판을 담은 ‘이동식 미술관’을 선보여 예술에 대한 급진적 문제 제기를 이어나갔다. 1941년 여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불안한 시기에 여러 차례 미국과 프랑스를 오간 뒤샹은 여기저기에 퍼져있는 자신의 작품이 전쟁 때문에 훼손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이에 뒤샹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2차원과 3차원의 미니어처 복제품으로 만든 〈여행가방 속 상자〉라는 컬렉션을 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파리를 떠나 다시 뉴욕으로 갔을 때 뒤샹의 망명자 처지를 상징하게 되었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여행가방속 속 상자〉 에디션과 필라델피아 미술관 1966년 에디션을 함께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데니즈 브라운 헤어(Denise Brown Hare), 〈11번가 작업실의 〈에탕 도네〉(Étant donnés in the Eleventh Street Studio)〉, 젤라틴 실버 프린트, 1968, Philadelphia Museum of Art, Library and Archives: Étant donnés Records ©Association Marcel Duchamp/ADAGP, Paris–SACK, Seoul, 2018

제4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의 거장으로 널리 알려져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품을 선보이던 시기를 조명한다. 여러 미술관이 뒤샹의 작품을 소장했는데, 특히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1950년 루이즈와 월터 아렌스버그 부부가 기증한 현대 미술 컬렉션의 일부로 뒤샹의 전작 중 다수를 입수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뒤샹이 은퇴한 상태이며 그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는 20년에 걸쳐 아무도 모르게 최후의 예술적 선언에 힘을 쏟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1968년 그가 사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된 방만한 크기의 디오라마 작품 〈에탕 도네(Étant donnés)〉가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되며, 제작 과정에서 남긴 스터디 작품들도 살펴볼 수 있다. 예술가는 일상적인 삶과는 떨어진 영역에서 살며 창작을 하는 자이고, 관객은 작품을 해독하고 판단하는 자다. 예술가가 제 할 일을 끝내면 관람하는 자라고 말한 뒤샹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후대가 된다”며 모든 미래 세대를 의미하는 ‘후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시간적 요소를 강조했다. 뒤샹이 흥미를 가졌던 것은 미래의 대중이었다. 1968년 4월에 했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후대는 영원히 남을 것과 사라질 것의 차이를 알아볼 것입니다. (…) 언제나 50년이 지나야 작품은 형태를 갖춥니다. 그런 뒤 미술관이나 100년간 읽힐 책에 분류돼 들어가지요. 읽혀지지 않을 것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뒤샹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 저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자화상 No.29(Portrait No.29)〉 (이중 노출: 전면과 프로필[Double Exposure: Full Face and Profile]), photo: Victor Obsatz. 젤라틴 실버 프린트, 25.2×20.3cm, 1953 Philadelphia Museum of Art: Gift of Jacqueline, Paul and Peter Matisse in memory of their mother Alexina Duchamp, 13-1972-9(292).

다섯 번 사는 사람

김정현

 

뒤샹은 1963년 장 마리 드로(Jean-Marie Drot)가 제작한 〈마르셀 뒤샹과의 체스 놀이(A Game of Chess with Marcel Duchamp)〉라는 인터뷰 영상에서 1911년에 입체주의를 처음 접하고 나서 그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2)〉(1912)에 관해 설명하며 자신의 관심은 대상의 해체보다 반복에 있었다고 말한다. 큐비즘 양식으로 그려진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에서 동일한 형상이 반복되는 횟수가 다섯 번인지 여섯 번인지 분별할 수 없고, 심지어 형태의 단위가 도형으로 추상화되어 제목을 제외하고는 누드를 지시하는 기호를 찾기 어렵지만, 드로는 한 화면에 다섯 번 반복되는 인물의 이미지에 매혹되었는지 다섯 명의 뒤샹이 체스판 주위에 둘러앉은 합성 사진을 영상의 곳곳에서 여러 차례 보여준다.

딱 다섯 번은 아니지만 동일한 인물이 반복하여 등장하는 이미지는 이드웨어드 머이브릿지(Eadweard Muybridge)의 사진이 대표적이다. 열두 대의 카메라로 인간과 동물의 연속되는 움직임을 포착한 1878년경의 최초의 활동사진은 대상이 한 화면에 포개진 것은 아니지만 순간 포착한 낱장의 이미지보다 연속 촬영한 사진 12장을 이어서 감상하도록 제작되었다는 차원에서 하나의 화면으로 봐야할 것이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는 대상을 형태적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입체주의와 달리, 형태보다 움직임을 해체하거나 정지한 화면 안에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관심을 둔 미래주의의 방식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아직 미래주의의 작업을 알지 못했던 1912년의 뒤샹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미래주의의 기술적 유토피아니즘에 따라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마르셀 뒤샹》에서는 〈큰 유리(The Large Glass)〉를 영상 설치 작업으로 만날 수 있다. ⓒ김흥규

우리는 아직도 〈큰 유리〉라는 체스판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가

장서윤

 

뒤샹의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1915-1923, 이하 〈큰 유리(The Large Glass)〉)는 그가 뉴욕에 머물 당시 1915년부터 1923년까지 제작한 작업이다. 하지만 〈큰 유리〉에 등장하는 〈신부(The Bride)〉(1912)와 〈초콜릿 분쇄기 No.1(Chocolate Grinder No.1)〉(1913)과 〈초콜릿 분쇄기 No.2(Chocolate Grinder No.2)〉(1914), 〈금속테 안에 물레방아를 담은 글라이더(Glider Containing a Water Mill Neighboring Metal)〉(1913-1915)가 1915년에 앞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큰 유리〉에 대한 구상이 이미 오래전부터 축적되어 온 것임을 보여준다. 회화와의 절연을 선언했던 뒤샹에게 〈큰 유리〉의 구상은 전통적인 예술의 시각성에서 탈피하여 다른 차원의 예술, 즉, 개념으로의 세계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구심점이기도 했다. 납, 알루미늄 호일, 유리, 먼지 등 비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한 것, 유리 위에 그림을 그림으로써 작가의 터치를 최소한으로 환원시킨 것, 사실주의적 원근법이 아니라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투시도법을 사용한 것은 “인상주의 이래 모든 그림이 반과학적”이었던 것에 반해 “회화적 회화의 전통과의 모든 접촉”을 피하고 “과학의 분명하고 정확한 측면을 도입”하고자 했던 것이다. (...)

 

『블라인드 맨(The Blind Man)』 no.2에 수록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R. 머트의 샘(fountain by R. Mutt)〉, 1917

마르셀 뒤샹과 사진

박평종

 

1922년 5월 22일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에게 보낸 편지에서 뒤샹은 사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당신은 사진에 대한 저의 감정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진을 통해 사람들이 회화를 경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다른 무엇이 사진을 지긋지긋한 것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스티글리츠는 뉴욕에서 ‘291갤러리’를 운영하며 유럽의 모던아트와 사진을 소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미국의 ‘고루한’ 미술가들에게 유럽의 ‘전위미술’을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뒤샹은 문제의 레디메이드 〈샘(La Fountaine〉이 독립예술가협회가 주최한 “빅쇼”에서 출품 거부당하자 이 ‘스캔들’을 뉴욕 미술계에 알리기 위해 친구 만 레이(Man Ray)와 소변기를 들고 스티글리츠를 찾아갔다. 스티글리츠는 이후 20세기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놓게 되는 레디메이드를 촬영했고, 뒤샹은 그 사진을 단 2회만 발행된 잡지 『더 블라인드 맨(The Blind Man)』에 게재했다. 출품 거부 소식을 알리는 기사와 더불어서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 〈샘〉의 원본은 이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 작품의 존재는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통해서만 입증될 수 있었다. 실상 이 ‘원본’의 존재 여부는 뒤샹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뒤샹은 이 작품이 어떤 경로로, 정확이 언제 어디서 사라졌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더욱 정확히는 무관심했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레디메이드는 결코 유일하지 않으며, 복제품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인데, 따라서 “오늘날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레디메이드는 원본이 아니”라는 것이다. (...)

 

만 레이, 〈에로즈 셀라비로 분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as Rrose Sélavy)〉, 젤라틴 실버 프린트, 21.6×17.3cm, 1920-1921년경, Philadelphia Museum of Art. The Samuel S. White 3rd and Vera White Collection, 1957-49-1 ⓒ김흥규

마르셀 뒤샹과 엘사 폰 프라이탁 로링호븐: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체성

오경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종종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으로 언급된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작품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선택하고 그것을 명명하는 행위를 작품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즉 작가 주체성의 권위를 해체함으로써 예술가의 역할을 재정의하였다. 1940~50년대의 미국 예술과 비평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힐튼 크레이머(Hilton Kramer),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 등에 의해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같은 인물로 상징화되는 ‘모더니스트 회화의 영웅적 천재’의 계보 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이에 대한 저항의식이 앨런 캐프로(Allan Kaprow),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존 케이지(John Cage),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등의 작가군에 의해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공공연히 그린버그식 남성적 권위의 정치학이라는 작위적 미학론에 도전하는 자신들의 작업에 미친 뒤샹의 영향을 언급하였다. (...)

 

마르셀 뒤샹, 〈L.H.O.O.Q.〉,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컬러 인쇄, 연필 및 흰색 과슈, 30.1×23cm, 1919/1964, Staatliche Schlösser, Gärten und Kunstsammlungen Mecklenburg-Vorpommern), photo: Fotoagentur nordlicht ©Association Marcel Duchamp/ VG Bild-Kunst, Bonn 2018

마르셀 뒤샹의 반 언어로서의 언어

정연복

 

2014년 가을,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Paris)의 마르셀 뒤샹전. 마지막 전시실 한가운데에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La mariée mise à nu par ses célibataires, même)〉((1915-23, 이하 〈큰 유리〉)의 복제품이 놓여있었다. 아무리 봐도 뭘 나타낸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둥근 전시실 벽에는 〈큰 유리(Le Grand Verre)〉에 관한 뒤샹의 많은 메모와 크로키(croquis)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끊임없이 녹음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높이 3미터에 가까운 큰 크기의 작품,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메모들, 무한 반복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등은 제작된 지 백 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 앞에서 여전히 관람객을 당혹시켰다. (...)

 

마르셀 뒤샹, 〈빈혈 영화(Anémic Cinéma)〉 설치 전경 ⓒ김흥규

앵프라 맹스(infra-mince)의 역사적 두께: 뒤샹의 ‘지극히 얇은’ 유산과 현대 영상 설치 작업의 계보

곽영빈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주도로 일본, 호주와 함께 한국을 찾은 뒤샹의 전시가 뜨거운 호응 속에 순항 중이지만, 사후 50년이 넘은 지금까지 마르셀 뒤샹은―소위 ‘기출문제’화 된 〈샘〉(1919)을 제외하면―불투명한 존재다. 그 불투명성에 톡톡히 기여하는 ‘앵프라 맹스(Infra-mince)’, 영어로는 ‘인프라 씬(infra-thin)’이라 번역되는 자신의 독특한 개념에 대한 노트에 뒤샹은 다음과 같이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덧붙인 바 있다. “평평하거나/볼록한 거울 또는 유리로부터의 반영- 앵프라 맹스 분리-[가/이] 스크린보다 나은 것은 그것이 간극[을] 그리고/스크린을- [즉] 분리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개념과 설명은 두툼하기보다 얇고, 이어질 듯 끊어지다 끊어질 듯 이어지지만, 1968년 세상을 뜰 때까지 50년 넘게 지속된 뒤샹이란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게 만드는 아리아드네(Ariadne)의 실이기도 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개념이 뒤샹 자신의 것은 물론,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술 및 영상 작업의 어떤 중핵을 건드리기 때문인데, 뒤샹의 몇몇 대표작들이 갖는 함의를 통해 이를 살펴보려 한다. (...)

 

《마르셀 뒤샹. 100개의 질문. 100개의 대답》 전시 전경 ©Staatsgalerie Stuttgart

Are you ready for Duchamp? 레디? 메이드!

이정훈

 

현대미술의 이단아? 선구자? 아버지? 따르는 다양한 수식어만큼 20세기 미술사와 현대미술의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친 프랑스 출신의 작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을 조명하는 전시 《마르셀 뒤샹. 100개의 질문. 100개의 대답(Marchel Duchamp. 100 Fragen. 100 Antworten)》이 슈투트가르트 미술관(Staatsgalerie Stuttgart)에서 열렸다. 전시는 최초로 ‘레디메이드(Ready-Made)’ 개념을 미술에 적용하여 당대의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그의 주요 작업과 지난 생애를 조명한다. 그를 연상시키는 상징적인 작업 〈자전거 바퀴(Roue de bicyclette)〉)(1913/1964), 〈병 걸이(Porte-bouteilles)〉(1914/1964),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La Mariée mise à nu par ses célibataires, même)〉(1915-1923/1991-1992), 〈L.H.O.O.Q〉(1919/1964)등 다양한 작업을 소개하며 관객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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