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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키스 해링, 불멸을 자신하며 부르던 80년대의 랩소디

글 구지훈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 2018.11.24~2019.3.17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키스 해링, 〈무제〉, 종이에 실크스크린, 106×127cm, 1983 ⓒKeith Haring Foundation

전설적인 영국의 록 밴드 ‘퀸(Queen)’의 보컬리스트였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일생을 다루었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 본토만큼의 흥행성적을 거두었을 정도로 한국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 찾아본 이런 저런 기사들을 참조하면 비공식적(?)으로 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은 무려 ‘50회(!)’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필자의 지인 중에서도 프레디의 열광적인 팬을 자처했던 한 전직 방송 PD가 5회를 보았다는 ‘간증’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각종 언론들은 이러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광풍에 대한 기사를 내놓았고, 그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현재 50대에 들어선 80년대 학번 세대와 퀸의 전성기가 비슷하여 이들에 대해 느끼는 향수가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자신들이 한창 젊고 정열적이며 뜨거운 무언가를 갈구하던 80년대의 그 분위기, 자유와 불만, 저항이라는 키워드 하에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그들의 청춘 시대에 듣고 자랐던 음악들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들은 매우 자유로웠다. 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고 또 시대적인 분위기가 그것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편이었다.

이러한 1980년대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80년대에 들어서 일어난 몇 가지 매우 중요한 변화들을 언급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보는 것’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물론 70년대에도 TV는 있었다. 미술 역시도 다양한 카탈로그가 있었고 미술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대부분의 예술 영역에서―이것은 대중예술이든 순수예술이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바로 ‘비주얼 스타’의 등장이었다. 80년대를 주름잡았던 ‘퀸’을 비롯해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같은 인물들은 매우 화려하게 치장하고 비주얼적 요소들을 강조한 ‘글램 록’이라는 장르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마돈나(Madonna), 프린스(Prince)등 새로이 떠오르는 스타들도 MTV라고 하는 새로운 채널을 통해 속속들이 ‘비주얼적인 요소들’, 그리고 ‘뮤직 비디오’를 내세워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바야흐로 ‘보는 것’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그리고 더 나아가 ‘물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술계에 있어서도 70년대 혁신의 아이콘 같았던 앤디 워홀(Andy Warhol) 마저도 아주 특별한 예술적 진보는 보여주지 못한 채 표류하는 느낌마저 주었던 80년대에 들어서면, 새로운 물질, 새로운 도구,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아 열정과 불만, 저항을 표현하던 이들이 나타난다. 이들이 찾아낸 새로운 캔버스는 바로 ‘길거리 낙서’, 즉 ‘그래피티(Graffiti)’였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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