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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무진(Moojin)기행이 남긴 궤적(櫃迹)

글 김정아

《궤적(櫃迹)》 | 2018.12.7~2019.1.18 | 아카이브 봄

무진형제, 〈밤의 대화〉, 싱글채널 비디오, 설치, 흑백, 스트레오 사운드, 4분 30초, 2017, 이미지 제공: 아카이브 봄

궤를 열며

코 끝 시린 겨울이 무르익어 가는 연말연시, 때 이른 어둠이 전신주에 걸린 고요한 동네에서 무진형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빨간 불빛이 이글거리는 정체 모를 작품을 비추는 투명한 문에 적혀 있는 전시 제목 ‘궤적’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궤적(軌跡)이 아니라 ‘궤적(櫃迹)’이었기 때문이다. ‘궤적(櫃迹)’은 책과 물건이 담긴 상자를 뜻하는 ‘궤(櫃)’와 발자국이나 자취를 뜻하는 ‘적(迹)’을 합한 글자다. ‘궤(櫃)’는 평소 여러 책과 작업에 필요한 재료 등을 넣어두는 박스와 같은 것으로, 무진형제가 작업을 마친 뒤 어지럽게 널린 공구와 재료 그리고 온갖 메모들이 수두룩한 텍스트 자료들을 다시 정리해 보관하는 곳이다. 무진형제 작업의 시작점은 이 궤적이며 이는 작업의 시작과 끝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물리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궤적의 형상은 꼭 궤(櫃)가 아니어도 된다. 박스, 책장, 작은 서랍이나 수납함, 혹은 고대인들의 기억의 궁전처럼 머릿속에 지은 도서관이어도 된다. 타자의 기록이나 작품이 보관된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적(迹)’은 ‘궤(櫃)’로부터 시작된 자취 또는 흔적이다. 타인의 글과 그림, 목소리 같은 것이 ‘나’에게 남긴 것들을 뜻한다. 또는 타인의 기록으로부터 발견한 새로운 개념이나 어지럽게 널린 재료들로부터 생성된 기이한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타인의 작업 앞에서 ‘나’는 곧 단순히 보고 듣고 느끼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발견하는 자’다. 그렇다면 발견하는 자로서 나는 무진형제의 작품에서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군가의 텍스트나 이미지를 감상하며 드는 경외감, 의문, 낯설음을 느끼는 것은 나의 어떤 감각적인 조건 때문이다. 타인의 작품을 생경하게 받아들이는 내 인식의 구조를 자각함으로써 나를 새로운 경험으로 이끄는 무언가를 포착한다. 무진형제의 작품은 그들이 선택한 타인의 자리 ―신화나 전래동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 시공간에 대한 역사적 탐색, 고전 텍스트의 재해석― 에서 시작된 긴 호흡의 것들을 또 다시 타인의 영향 아래에 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다섯 가지 작품들은 2017년부터 작업해온 ‘궤적(樻迹)’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한시적으로 떠돌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타임라인 속 내용을 중심으로 한 언론과 SNS 플랫폼의 정보와 지식들은 동시대의 지형을 탐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고전 텍스트 속 시적 언어와 이미지는 빠른 정보에만 기댄 현재의 프레임을 벗어나 좀 더 다른 시대, 다른 배경, 그리고 더 먼 거리까지 가기 위한 무진형제의 선택이었다. 개념/형식적으로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이 텍스트들은, 다른 시대와의 조우를 통해 지금 여기의 시대를 좀 멀찌감치 떨어져서 볼 수 있게 해준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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