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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간송과 숭고의 그림자

글 한혜수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 | 1.4~3.31 | 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

국보 제74호, 〈청자오리형연적〉, 높이 8.1cm, 12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3·1운동 100주년과 연동해 미술 영역에서 불러들일 수 있는 인물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만한 인물도 없지 않을까. ‘문화보국(文化保國)’, 즉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는 위창 오세창(韋滄 吳世昌, 1864~1953)의 가르침이자 간송 정신의 요체인 만큼 2014년 DDP에서 열렸던 간송문화전 제1부의 제목이기도 했다. 간송은 3·1운동 100주년이라는 기념적 상황과 맞물려 겨레와 민족에 대해 환기하기 좋은 소재다. 물론 저 옛날 기미년에 일어난 봉기와 간송의 관련성은 ‘민족’이라는 열쇳말로 연결되는 정신성의 영역에서만 머무르고 있다. 국민국가에서 3·1운동을 소환하는 맥락은 언제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이루어져 왔는데, 실상 100년의 시차만큼이나 새삼스럽게 2019년에 민족정신을 환기하는 일의 효과는 공허하지 않은지,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하 《대한콜랙숀》)은 그런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전시였다. (또한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즈음의 이 운동에 대한 인식 지형에는 민족정신과 더불어서 다양한 결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간송을 민족주의 서사에서 끄집어내는 작업이 이제는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대한콜랙숀》을 본다면 매우 착잡한 기분이 될지 모른다. 《대한콜랙숀》에서 보여주는 간송은 신화화된 구국 영웅 그 자체이며, 전시된 내로라하는 고미술품은 그러한 간송의 민족 영웅적 신화에 그저 봉사하는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되는 고미술품 뒤에는 언제나 간송 전형필이 미소 짓고 있다. ‘알리다’, ‘전하다’, ‘모으다’, ‘지키다’, ‘되찾다’. 《대한콜랙숀》을 나누는 이 다섯 섹션의 동사들에 생략된 주어는 단연 간송일 것이다. 전시는 작품들이 어떤 경위로 간송의 손에 들어왔는지에 관한 ‘히스토리텔링’ 중심의 편안한 분위기로 꾸려졌다. 하마터면 양반가에서 불쏘시개로 불타 없어질 뻔한 겸재 정선(謙齋 鄭歚, 1676~1759)의 〈해악전신첩〉 같은 스펙타클한 일화부터 간송이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 참가해 터무니없는 가격을 외쳐 가며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손에 넣은 이야기, 일본 주재 변호사인 존 개스비(Sir John Gadsby)의 컬렉션을 사들이기 위해 만 마지기(약 200만 평) 전답을 팔아치운 이야기 등. 기실 간송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대부분 익숙한 레퍼토리이나, 간송을 처음 접한 관람객에게는 친절하고 재미있는 전시일 것이다. 첫 번째 섹션인 ‘알리다’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고, ‘전하다’부터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되지만 미술품은 마지막 두 섹션인 ‘지키다’와 ‘되찾다’에 집중되어 있다. ‘전하다’에 해당하는 앞부분은 간송이 보성학원을 인수한 이야기와 그 산하의 인쇄소인 보성사가 3·1운동의 중추가 되었던 이야기, 그리고 보화각과 같은 배경 설명에 할애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대를 모은 고려청자의 얼굴마담 격인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모으다’ 섹션에 전시되어 5년 전 간송문화전 1부 이후 두 번째로 만났다. 다만 그때만큼의 감동과 아우라를 느끼지 못한 건 매병과 내가 구면이어서가 아니라 전시장 분위기 때문이었다. 구석구석까지 간송 전형필이라는 큰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피로감 탓에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기가 힘들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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