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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T

공간 철학의 문턱에 서서

글 이정실

《루치오 폰타나:문턱에 서서(Lucio Fontana: On the Threshold)》 | 1.23~4.14 | 멧 브로이어(The Met Breuer)

 

루치오 폰타나, 〈공간 개념, 기대(Spatial Concept, Expectations)〉, 캔버스에 유채, 90.8×90.8cm, 1959 ©Olnick Spanu Collection, New York

 

현대미술의 애호가로서 칼로 캔버스를 베어낸 단색조 작품을 제작한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오랜 세월 ‘공간’이란 개념 하나에 일생을 바쳐왔는지, 그리고 그 개념이 얼마만큼 개인의 예술적 관심과 정치적 맥락을 아우르는 복잡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 봄 메트로폴리탄의 멧 브로이어 전시관에서의 폰타나 회고전은 칼로 베어낸 캔버스가 탄생한 배경과 그의 공간 철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전시는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혼혈인 작가 폰타나가 40년 동안(1929~1968) 두 대륙을 오가면서 작업한 돌, 금속, 세라믹, 조각, 설치, 드로잉, 회화, 100여점과 공간에 대한 6개의 선언서를 총망라하여 전시하였다. 또한 폰타나의 설치작품 3개를 재현하여 폰타나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의 공간 개념을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결합하려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46년에 발표한 「첫 번째 공간주의 선언문(The First Declaration of Spatialism)」에서 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사용하여, 작품을 사차원의 영역 즉 시간성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은 이후 움직이는 조각 또는 비디오 아트까지 길을 터주는 중요한 개념인데, 그가 3년 뒤 밀라노에서 선보인 네온등을 사용하여 빛과 공간을 설정한 3개의 ‘공간 환경’(Spatial Environments, ‘설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전까지는 특정한 장소에 한시적으로 설치되는 삼차원의 구조물을 환경 또는 ‘해프닝’이라고 불렀다.) 설치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대기적으로도, 작품 주제별로도 잘 배치되어 있는 전시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공간에 대한 탐구가 한층 더 와 닿는다.

 

조각가로서 폰타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폰타나는 조각가로서 경력을 먼저 시작했다. 그는 1920년대 중반에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무덤 비석에 조각을 새기는 작업을 했던 아버지를 도우면서 조각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 아카데미에서 전통 조각을 공부하기 시작한 폰타나는 조각보다는 점토 등을 손으로 만져서 형태를 만들어내는 모델링 작업에 점차 흥미를 느꼈고, 1930년경 이탈리아에서 조각가로 자리를 잡게 된다. 에트루리아(Etruscan) 석관에 새겨진 고대 조각에 영감을 받아 금색을 비롯해 다른 색으로도 채색한 형상들을 조각하던 그는 결국 동시대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의 신념과 기술을 받아들인다. 고전적 전통 조각 개념과 혁명적인 미래주의를 모두 표현하고 싶었던 절충주의자 폰타나의 의지가 잘 드러난 것은 도예 작품이다. 미래주의자들의 산실인 도예 공장을 경영하던 툴리오 알비솔라(Tullio D’Albisola)와 작업하면서 폰타나는 지중해 해안의 주요 미래주의자가 되었고, 바닷속 형상들을 그만의 독특한 방법의 도예작품으로 만들어냈다. 바다에 서식하는 생물들을 밝은 녹색이나 푸른색 톤으로 채색하여 이탈리아 전통 채색 도예인 마이오리카(maiolicas)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제작하는 반면, 동시에 바다에서 인양한 산화된 청동색을 연상시키는 도예를 제작하기도 했다. 폰타나는 이 청동색과 채색 점묘, 그리고 뒤틀린 듯한 형태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도예작품을 통해서 전통과 현대, 예술과 장식품, 구상과 추상, 조각과 회화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캔버스에 구멍을 내다

폰타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아르헨티나에 머물면서 194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미술학교를 설립한다. 그는 아르헨티나 최초의 추상 그룹인 ‘아르테 콘크레토 인벤시온(Arte Concreto -Invención)’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불규칙적인 캔버스 프레임을 사용하거나 네온등 같은 새로운 재료를 작품에 도입하는 등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이때 공표한 선언문인 「백색 선언(White Manifesto)」에서는 학생들에게 제한된 캔버스를 벗어날 것과 빛을 공간에 투사하는 등의 새로운 방법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였다. 1949년 다시 밀라노로 돌아간 폰타나는 구멍 시리즈(Holes Series)를 시작하면서, ‘공간 개념(Spatial Concept)’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이는 추후 폰타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최초로 구멍을 낸 캔버스는 전기가 통과하기 위한 스크린을 연상시켰는데, 초기에는 벽에 걸지도 않고 공중에 매달아 놓는 방식으로 설치하기도 했다. 이차원의 평면으로 마무리되어야 하는 캔버스는 구멍들로 인하여 비어 있음(void), 무한함, 사차원의 세계로 가는 문턱으로 구현되었다. 회화의 평면성을 넘어서서 캔버스를 마치 루치오 폰타나, 입체물처럼 삼차원으로 다룬 것은 물론 제한된 인식의 세계 너머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시기 폰타나는 미술에 무한이라는 시간성을 도입했을 뿐 아니라 물질적인 조형예술을 비물질적인 대상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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