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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아시아 미술관의 아시아적 언어

글 안소현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 1.31~5.6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미술관의 탈국가주의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세상에 눈뜨다 :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 -1990s》 전시는 국가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기획 의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가가 주관하는 미술관에 기대하게 되는 묵직한 기본 역할에 매우 충실한 전시였다. 사실 그것은 모순이 아니다. ‘국립’이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가장 흔한 착각 중 하나는 ‘국가가 설립한’을 ‘국가가 소유한’으로, 더 심하게는 ‘국가를 위한’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국립미술관들이 함께 만든 이 전시가 그 흔한, 소위 ‘국가 간 교류전’의 형식을 벗어나려 애쓴 것은 단순히 덜 식상한 전시를 만드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국립’이라는 이름이 본래 의미해야 하는 것, 즉 ‘국가에게 비국가 주체가 할 수 없는 역할을 하도록 위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국립미술관에게는 사립미술관이나 비영리 공간, 상업 화랑이 할 수 없는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념적으로는 한 사회의 미술의 역사를 기록하고,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체제 비판적인 미술들도 끌어안는 역할이며, 실질적으로는 비국가 주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미술들을 수용하는 역할이다. 국가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하겠는가, 라고 반복해서 말해도 국가는 좀처럼 그러지 않아 왔다. 어쨌든 이번 전시는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말로만 듣던 아시아의 격동기인 1960~1990년대 사회와 연결된 예술의 흔적들, 흔히 알던 서구에 주눅 든 아시아를 넘어서는 예술들이 선험적 분류나 계보 없이 왁자지껄 소리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작품에도 발화법이 있다면 여기서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외치고’ 있다).

 

큐레토리얼 방법론으로서의 ‘비교접근법’

국립현대미술관과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에서 공동주최한 이 전시는 국가 간의 예술을 비교하기보다는 ‘아시아 아방가르드’라고 명명된 변화를 다룬다. 각 미술기관의 기획자들은 애초에 “단일 개념으로 지역성을 논의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하면서, “뻔히 보이는 유사성만 강조하면서 차이점들을 무시해버리는 전시 기획에 대한 주제적 접근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시에는 도입부와 더불어 ‘구조를 의심하다’, ‘예술가와 도시’, ‘새로운 연대’라는 세 개의 소제목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규정하는 방식은 극히 느슨해서 작품들을 묶기보다는, 작품들이 알아서 충돌해 파장을 일으켜 키워드들을 수면 위로 띄워 올리게 하는 일종의 웅덩이의 역할을 하는 것같았다(기획자들은 그것을 세 개의 “궤도”라고 불렀다). 예를 들면 두 번째 궤도인 ‘예술가와 도시’에서는 도시화를 문제 삼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도시 삶을 둘러싼’ 자본주의, 환경, 매스미디어를 비롯한 온갖 정치경제적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예술을 다룬다. 이런 구분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현대사회 문제는 도시화 이후에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때문에, 그런 구분은 사실 ‘물고기가 물에 산다’와 다르지 않은 주장인 셈이다. 따라서 이런 비교접근법은 아시아 예술에 대한 뾰족하고 밀도 높은 통찰을 제공한다기보다는 묽지만 자양분 넘치는 액체처럼 아시아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서둘러 비쩍 마르지 않게 해주었다. 관객들은 정리된 지식을 알려주지 않는 전시 방식에 당황할 수 있지만, 국립미술관이 내놓은 이런 해법은 서두에서 밝혔듯 국립미술관의 전시를 국가주의의 틀 안에 가두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는 나름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아방가르드’라는 문제적 이름

하지만 이렇게 느슨해서 풍성한 구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핵심 개념을 벼리지 않고 사용한 것은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이 전시에서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탐미주의적 요소를 버리고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예술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는데, 그것은 때로는 형식의 파격으로, 때로는 직설적인 사회비판의 경향으로 설명되고 있다. 사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라는 기간은 특정하는 것이 어색할 만큼 동시대 미술의 대부분의 시기를 아우르는 긴 시간인데(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화하기 용이한 대부분의 시기를 가리킨다), 그 시기에 등장한 온갖 급진적인 움직임을 아방가르드라고 통칭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규정 정도는 있었어야 옳다. 예를 들면, 그 이름이 부르주아 미술 형식의 급진적 파괴로 특징지어지는 서구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에서 기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제4집단’의 파격적 매체 실험과 민주화의 갈급함을 외친 ‘민중미술’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지 설명했어야 한다고 본다.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등장한 미학적 급진주의”라는 표현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나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주제이며, 여전히 예술가들은 사회비판적 예술에 관련된 재현의 윤리학에 대해 고민하고 조심스러워한다. 물론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이 이제 고유명사화된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두루 쓰인다고 논쟁적 지점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막연하게 모든 관습적인 것에 대한 도전으로 아방가르드를 설명하면, 전시에서 밝혔듯 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탈추상과 탈모더니즘의 경향도 설명하기 어렵다. 소위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들도 형식 실험을 통해 관습에 도전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들 중 몇몇은 자신들의 유미주의적 형식이 사회 문제를 ‘은유’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개념 규정의 회피로 인한 혼란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본격화했을 때 단색화 계열의 작가도, 현실 참여적인 작가도 모두 스스로를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규정하면서, 결국 논쟁은 현실 이데올로기에 준한 진영 논리로 귀결되어 버린 예가 있었다. 결국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이 아시아의 특수한 맥락에서 관습적 미술 형식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하여 왜, 어떻게 정치적 행동주의로까지 확장되어 나갔는지, 그리고 이 외래어가 어떻게 서구 중심의 미술에서 벗어나려는 탈식민주의 경향을 대표하는 정체적 용어로 바뀌었는지, 개념의 확장과정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이 전시의 의미는 탈색될 위험이 있다. 아시아에서 아방가르드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전시의 의도와는 반대로 아시아 미술이 뒤늦게 서구 아방가르드의 형식 파괴를 답습한 것이라는 흔한 식민주의적 결론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시에는 이미 아시아 아방가르드 개념의 확장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여러 작품들이 있다. 1989년의 《차이나/아방가르드》 전시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웬 푸린(Wen Pulin)의 〈일곱 가지 죄〉(1989)는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예술을 원했던 예술가들이 현실의 규제에 부딪히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샤오 루(Xiao Lu)의 권총 퍼포먼스가 상징적인 정치적 행위가 된 것은 작가의 의도였다기보다는 자유로움 자체를 두려워하는 체제의 규제 때문이었던 것이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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