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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자이어의 메시지, 플라스틱 시대

글 천수림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을 너머》 | 2.22~5.5 | 성곡미술관

 

크리스 조던, 〈미드웨이: 자이어의 메시지(Midway: Message from the Gyre)〉 연작 중에서 Archival Pigment Print_PLEXIGLAS. XT(UV100), 64×76cm, 2009~ ©Chris Jordan

 

방주형 우주선 ‘길가메시(Gilgamesh)’에는 냉동 처리된 최후의 인간이 실려 있다. 수천 광년을 항해할 수 있는 우주선은 죽어가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제2의 지구’를 찾아 나선 상태다. 인류라는 종족의 존속을 위한 수천 광년의 여행은 영국 소설가 아드리안 차이콥스키(Adrian Tchaikovsky)의 『시대의 아이들(Children of Time)』의 주요 서사다. 신(神), 메시아(Messiah),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외계인(alienness)과 같은 큰 주제를 다루는 이 소설은 SF판타지로, 길가메시는 지구를 떠난 수 세기 후에 우주정거장에 도착하고, 그곳엔 컴퓨터로 생명을 이어가는 과학자가 살고 있다. 『시대의 아이들』은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들과 테라포드 행성의 주민들에 대한 두 가지의 이야기를 평행선처럼 다루고 있다. 소설에서는 지능적인 거미류가 장악한 다른 문명이 등장하는데, 인간의 이미지를 본떠 만든 새로운 인류는 인류의 멸종 위기를 넘기고 새로운 문명을 일으킬 수 있을까. 전쟁과 환경파괴, 기후변화로 인해 멸망할 것이라는 ‘지구의 운명’에 대한 서사는 미술과 영화, 문학의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시대의 아이들』에서 수천 광년을 항해한다는 방주 ‘길가메시’는 바빌로니아 문학작품 중 남아있는 대표작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영웅인 ‘길가메시’와 가장 오래된 인류의 문명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신고고학’적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의미는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에 투영되는가? 그 의미는 유한한가? 끝이 있다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라고 물었다.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 문명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과거의 시간도, 수억 광년 뒤에나 도착한다는 『시대의 아이들』 소설 속 ‘우주정거장’의 긴긴 시간도 상상할 수 없다. 온 카와라(On Kawara) 작가가 〈투데이(Today)〉 시리즈와 병행하며 시작한 〈백만 년(One Million Years)〉을 연속해 낭독하는 프로젝트는 관객들에게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게 했다. 단색 배경에 흰색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달력이 알려주는 날짜를 그리는 작업이 오로지 개인적인 것이라면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니며 진행한 낭독 프로젝트는 남녀가 앉아 1996년부터 1,001,995년까지 또는 기원전 998,031년부터 1969년까지 순서대로 기록된 스무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시간을 공간 속으로 끌어들인다. 낭독자들은 실제 유리로 된 스튜디오(투명한 방주를 연상시킨다)에서 녹음하면서 예상치 못한 감정에 휩싸였다고 한다. 우리는 늘 지금처럼, 의심없이 ‘투데이’를 맞이할 수 있을까?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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