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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Abstract saga

글 이주희

백현진 |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 | 2.15~3.31 | PKM 갤러리

정석우 | 《회베당》 | 2.23~3.4 | 갤러리도스

 

백현진,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PKM갤러리

 

백현진의 꼬리잡기 혹은 잘라내기

이번 전시는 “신작 페인팅 60여 점과 설치작품이 공개되고, 퍼포먼스 〈뮤지컬: 영원한 봄〉이 매주 펼쳐진다.”고 하지만 그 수치가 크게 와 닿지 않을 만큼 백현진은 지난 시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계의 공간을 채워왔다. 적당히 알아볼 수 있는 그림과 ‘K팝’적인 소리(작가의 표현을 빌려), 단편영화 혹은 비디오아트로 불리는 동영상과 이런저런 것들이 한데 모인 공간까지, 여러 계열의 각각에 통용되는 결과물들을 미술계의 공간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그이기에 이번 전시 역시 특정 장르의 작품에 대한 기대보다 백현진의 ‘백현진스러운’ 공간 구성이 먼저 주목을 끌었다. 백현진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면 ‘짓거리들의 끊임없는 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내적인 동기와 흥을 꺼내 ‘-짓’ 혹은 ‘-질’로 표현하는 것이 그동안 그가 해온 일이다. 소리를 매만지는 소리질과 붓을 움직이는 붓질, 몸을 쓰는 몸짓을 한데 엮어 예술질을 해대는 것. 다시 말해 그의 흥에 맞춰 하는 짓거리와 제스처가 멋과 예술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의 회화들 역시 미술을 근간으로 바라보기보다 백현진을 근간으로 전시 안의 백현진을 바라보게 된다. 물론 회화적 ‘〈수련자〉(2010-11)’의 입장에서도 밀도 높은 화면 구성과 붓놀림을 수행해왔던 그다. 하지만 이번에 선보인 평면에서는 비교적 간소해진 내용과 더불어 남겨놓기 위해 남겨진 것들만을 담은 화면들이 주를 이룬다. 백현진이 이번 전시를 위해 남겨놓은 것은 패턴이다. 〈패턴 같은 패턴〉(2018) 시리즈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회화 중에서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특정한 기호이자 반복되어 익숙한 것이라는 의미로 패턴에 대한 접근을 시작한다면, 백현진의 〈패턴 같은 패턴〉들은 눈에 잡히지 않는 조형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 익숙한 패턴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반복적 행위가 수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면 꼬리잡기를 거듭하며 반복된 것들의 면면을 살피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덧붙여 이번 전시 제목의 키워드인 ‘노동요’는 “적막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또 다른 노동요를 뜻한다.”고 한다. 스스로의 꼬리를 잡거나 혹은 잘라내기 위해 자처한 노동이라면 다른 것보단 다소간의 적막이 노동요로 잘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일반화될 수 있는 형식을 변주해온 그다. 미술의 영역에서 살펴보건대 페인터의 행로에 어떠한 전후와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워진 것〉(2018)들을 이어 붙인 화면조차 하나의 의미로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남긴이가 백현진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스스로가 표현의 근간이 되는 것. 이것 또한 백현진이 이어가는 짓거리들의 진화 과정이 될 것이다.

 

정석우의 전도와 전복

이번 전시 《회베당》1은 정석우가 2018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서식지〉 프로젝트와 연계해 볼 수 있다.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회화를 논과 밭, 수풀 등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곁으로 이동시켰고 그곳에서 회화는 종종 공간의 요소가 되었다. 이로 인해 작품만을 감각해야 했던 구도는 전도되어 작품은 보다 넓은 단위 속에 자리하게 되었고, 앞서 언급한 종종의 경우엔 작품을 풍경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같은 진행은 작가 스스로 사변적 공간이라 불렀던 것들을 높은 단계로 구체화시키는 과정 중에 나타났다. 이로 인해 평면 안에 머물던 것들 평면의 바깥으로, 추상적이던 것들은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평면 위의 정석우는 요동치는 본능과 그것을 아우르는 서늘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러한 두 영역을 〈사슴에서 표범〉(2017)이라는 범주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포식자와 그렇지 못한 생명체가 지닌 옅은 차이 정도가 될 것이고 〈reverse〉(2019)에서 찾는다면 내가 외면하고자 하는 또 다른 내가 어울려 나타나는 양상이 될 것이다. 작가에게 회화의 평면은 다차원의 공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때의 평면은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여러 양상을 환유하는 곳이자 붓질의 물리를 빌어 잡히지 않는 것들을 잠시 붙들어 놓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이러한 공간을 인간이 지닌 야수를 불러내고 보다 더 내면으로 침잠하는 정신을 놓아두기에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공간의 존재를 가늠해나가며 다차원적인 공간의 의미를 불러들이는 것이 지금까지 정석우가 해온 작업이다. 이러한 행로 중에 정석우는 또 한 번의 전도를 시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루소의 간격〉(2018), 〈체제의 성인들-포식자〉(2019) 등의 키워드를 참조한다면 그들이 모두 무언가를 기원했던 이들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이 진리이든 어떤 믿음의 방법이든, 정석우 역시 무엇인가 기원해 온 자이다. 그가 기원해 온 것은 “존재가 무엇인가를 향할 때 발산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한 아름다움의 표현을 위해 작가가 시도한 방법은 타인의 기원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타인의 기원을 가늠해 나가는 일은 결국 자신의 기원을 인지해 나가는 일과 맞닿아 있다. 또한 상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며 되돌아오는 질문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회화적 표현을 되풀이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예상하기 힘든 결과이지만 끊임없는 의미부여의 반복과 함께 추이를 지켜보며 흐름을 발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견한 흐름과 동행하는 것은 수많은 존재와 마주서는 일이다. 그들의 굴곡과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혹여 그것이 전복에 이르더라도 미적인 행위를 통해 존재와 마주서고 자신을 더욱 열렬히 감각하는 것. 그것이 정석우가 이어갈 표현 방식이 될 것이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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