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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WWW 30주년

글 편집팀

1989년 3월, 33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팀 버너스리(Timothy John Berners-Lee)가 발명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이하 WWW)은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사용하던 인터넷을 전 세계인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장(場)으로 변모시켰다. WWW가 보급된 1990년대 ‘새로운 것’으로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인터넷은 불과 삼십 년 만에 ‘일상’의 풍경이 되었고, 인류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연결하는 방식은 혁명적으로 변화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하게 된 인터넷은 현대인의 삶 깊숙이 스며들었고, 트위터가 촉매가 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혁명 ‘아랍의 봄’처럼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이미지 지각·생산·소비 방식 또한 변화함에 따라 인터넷은 미술에서도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새로이 등장한 인터넷을 작업의 주제 또는 소재로 적극 끌어들였으며, 어떤 이들은 사회의 모습을 작업에 반영하던 중 부지불식간에 인터넷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기민한 어떤 이는 이미지 유통 환경으로서의 인터넷에 대해 메타적으로 논하기도 했으니,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인터넷의 영향력은 작가, 관람자, 기획자, 비평가의 활동 속에 녹아들었다. 이렇듯 삶의 양상을 바꾼 인터넷에 대해 팀 버너스리는 WWW 30주년 기념 인터뷰를 통해 “웹이 몰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수많은 부작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사회를 극단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전망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넘나든다. 그리고 현재는 그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사이에, 혹은 그 둘이 중첩된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술세계』는 WWW 30주년을 맞이하여 국내에서 개최된 몇몇 전시들을 살펴보며 인터넷이 우리의 삶과 미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조망해보고자 한다.

 

 

 

특집목차 

 

인터넷과 함께 살아가기 / 백지홍

인터넷, 여전히 대안의 근거지인가? / 이광석

‘기술복붙시대의 예술작품’과 죽은 저자의 부활 / 안진국

발작과 유보 사이, 또는 ‘여기’가 ‘거기’일 때: 포스트 인터넷 시대 예술작품의 위상학적 변위 / 곽영빈

포스트 매체론의 계보와 논점들 / 최종철

 

 

 

인터넷과 함께 살아가기 / 백지홍

"WWW 발명 이후 30년, 인터넷은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컴퓨터 기술과 통신 기술의 발달은 인터넷의 사용을 점점 편리하게 만들었고,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한 채 살아가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의식적으로 사용해야 할 무언가였지만, 2019년 현재 인터넷은 우리의 삶의 기본 조건이다. 인터넷이 일상화 된 이후의 시대라는 의미에서 현재를 포스트(post) 인터넷 시대라 부른다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세상은 이미 변화했다.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 이후 또 다른 대 전환이 아니라 3차 산업혁명이 완료된 세상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3차 산업혁명』을 발간한 2011년은 3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시기일뿐이었던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정보처리 기술이 이룩되어야 완성된다는 의미로 말이다. 인터넷의 등장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함께 웹아트를 선보였던 예술인들은 이제 인터넷이라는 주어진 환경 자체에 대해 논하기 보다는 그것이 초래한 변화들, 그것을 둘러싼 욕망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근 몇 년간 보이는 수많은 전시가 증명하듯 말이다."

 

인터넷, 여전히 대안의 근거지인가? / 이광석

"오늘의 인터넷 상황은 90년대 중반 존 페리 바를로우(John Perry Barlow)를 위시한 디지털 자유주의자들이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던 시절의 처연함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자본 욕망과 국가 통제로부터 벗어나 형제애와 협력의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자유주의 선언은, 마치 오늘 인터넷이 어찌될지 예상했던 전주곡 같아 보인다. 현실 권력에 잘 숙성되어 거대 잡종의 괴물처럼 커버린 동시대 인터넷은, 비정한 자본의 연장처럼 보일 정도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감조차 잡기 어려워보인다. 이 글은 일군의 철학자와 창작자들이 ‘포스트 미디어’란 미사여구를 동원해 대중매체 이후에 태동한 초기 인터넷을 바라보던, 낙관주의적 경솔함을 바로잡고자 한다. 우리는 인터넷이 인류에게 줬던 역사적 카타르시스의 격정이 그저 아득한 역사의 유적처럼 느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가령, 멕시코 라깡도나 정글의 사파티스타 농민해방군(EZLN)이 벌였던 ‘말의 전쟁’ 혹은 인터넷 게릴라전, 이집트 등 소셜미디어가 매개한 ‘재스민 혁명’, 한국의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에서 광우병 파동에 이르는 인터넷 행동주의의 사회문화사, 이념의 깃발을 둘러싼 이념 이후 유럽에서 예술 창작자와 운동가를 중심으로 일었던 ‘전술 미디어(tactical media) 운동 등이 역사의 박물관에 박제될 처지에 놓였다. 마크 피셔(Mark Fisher)의 책 제목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빗대어 본다면, 우리는 ‘인터넷 리얼리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의 인터넷’ 말고는 도무지 그 바깥을 찾기 어려운 절망의 온라인 격자망으로 둘러싸인 우리의 현실 말이다. 피셔 책의 부제처럼, 나는 되묻는다. 이 지독하게 오염된 인터넷 한가운데서 정말로 ‘대안은 없는가’라고."

 

‘기술복붙시대의 예술작품’과 죽은 저자의 부활 / 안진국

"1928년 제작한 미키마우스는 여러 번 저작권법을 개정한 끝에 현재 2023년까지 저작권 보호를 받게 됐다. 어린이의 친구 미키마우스는 그 자신의 이미지를 통제하고 사적으로 전유하여 온·오프라인을 통해 저작권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은 기술복붙시대에 이미 죽은 저자를 부활시켜, 더욱 엄격히 복제와 변형을 통제하며 이윤을 챙긴다. ‘저자의 죽음’에 의해 등장한 ‘사용자- 생산자(user-producer)’는 복제와 변형을 통제하는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이 만든 퇴행적 복제의 스펙터클 상품 미학에 의해 다시 ‘사용자’로 주저앉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저작권은 좋은 것’이라는 단편적 생각을 벗어나, 플랫폼 자본주의 지대이윤으로 악용되고 있는 저작권에 대해 문제의식을 품고, 데이비드 건켈(David J. Gunkel)이 제시했던 것처럼 ‘프톨레마이오스화(Ptolemization: 현행 패러다임을 개정하려는 시도)’와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 완전히 재구성, 변형)’을 동시에 고려하며, 복붙문화와 저작권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구동희, 〈더블(Double)〉, 박스, 사운드, 가변크기, 2018, 사진: 박수환, 이미지 제공: 토탈미술관

 

발작과 유보 사이, 또는 ‘여기’가 ‘거기’일 때: 포스트 인터넷 시대 예술작품의 위상학적 변위 / 곽영빈

"눈앞에 얌전히 있을 때조차 운동을 머금은 구동희의 박스, ‘그림’처럼 보이지만 전시장에 걸려 있어도 전통적인 그림으로 작동하지 않는, 그래서 여전히 쓸 만한 ‘재고품’들처럼 행거와 웨어하우스로 아예 자리를 옮겨버린 노상호의 그림들은, 온갖 디지털 기기들로 뒤범벅된 김희천의 평평한 ‘유보적’ 영상들과 함께, 김웅현과 돈선필, 지우맨이 따로 또 같이 체현하는 ‘3D 프린팅의 위상학’ 속에서 각기 다른 자리를 점유한다. 그들은 들뢰즈(Gilles Deleuze)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흘러내리는 고깃덩어리’ 그림들에 대해 지적했던 핵심,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이뤄지는 움직임으로서의 발작(un mouvement sur place, un spasme)”을 통해 포착된 시간의 힘, 다시 말해 미세하나 매 순간 끊임없이 우리의 육체와 형상을 변형시키는 근원과 정확하게, 단 ‘시차’를 가지고 공명한다. 이러한 ‘발작’과 ‘유보’ 사이 어딘가에 우리는 서서, 혹은 앉아 있지만, 우리가 정말 “같은 자리”에 있다고, 아니 당신과 나는 분명히 “우리”라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데리다(Jacques Derrida)와 고다르(Jean Luc Godard)를 경유한 의미에서, “여기(Ici)”는 종종 “거기(ailleurs)”인 것이다."

 

포스트 매체론의 계보와 논점들 / 최종철

"‘포스트’라는 접두사를 공유하는 동시대 매체론들은 크게 두 가지 상이한 문맥으로 전개되는데, 하나는 기술 지향적이고 낙관적인 ‘포스트 미디어(post-media)’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주의적이고 비판적인 ‘포스트 미디엄(post-medium)’ 이론(미국의 현대미술 이론가 로잘린드 크라우스로 대표되는)이다. 포스트 미디어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독일 ZKM의 디렉터이자 지난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 《포스트 미디어 조건(The Postmedia Condition)》을 통해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확장을 주도한 피터 바이벨(Peter Weibel)을 들 수 있다. 바이벨은 이 전시의 서문에서 오늘날 맥루한(Marshall McLuhan)적 미디어(신문, 라디오, 텔레비젼)의 뒤를 잇는 “포스트 미디어/컴퓨터(postmedia computer: the universal machine)”는 스스로의 “종합적 적용성(total availability: 모든 매체를 재구현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모든 문화적 생산물을 아우르는 “보편성(universal impact)”을 지니며, 이 보편성 아래 “모든 예술은 포스트 미디어 아트”임을 천명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는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와 같은 보다 본격적인 미디어 이론가들의 긍정주의가 깔려 있다. 『뉴미디어의 언어(The Language of New Media)』(2001)에서 마노비치는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21세기 미디어 혁명이 과거 유사한 미디어 혁명들(출판미디어/사진미디어 혁명)과 확연히 구별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과거의 미디어 혁명들이 각 매체 내부의 고유한 가능성(출판-텍스트/사진–이미지)에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데 반해, 컴퓨터 미디어 혁명은 “텍스트와 이미지, 소리 그리고 공간의 구축 등을 포괄하는 모든 종류의 매체”에 고루 관계함으로써 매체 경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마노비치는 특히 『포스트 미디어 미학(Post-media Aesthetics)』(2001)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통적인 매체 유형학의 범주로 파악하려는 시도(회화, 사진, 설치 등등 처럼 인터랙티브 아트, 디지털 아트, 인터넷 아트 등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오늘날 미디어 아트에 대한 이해는 전통적인 미학적 범주의 반복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보 경험이 발생하고 변주되며 유통되는 과정에 대한 사회경제적 고찰을 통해 가능하리라고 주장한다. 마노비치는 예술사를 양식의 발전사로 보지 않고, 정보행위의 역사로 본다. 예컨대, 지오토(Giotto di Bondone)나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이 이루어낸 것은 회화나 영화의 진보적 양식이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혁신성”이었으며 바로 이 기술적 혁신성이 장르의 역사적 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

"그런데, 이처럼 정보 행위의 질적 위상을 새로운 미학적 토대로 규정하려는 미디어 이론가들의 노력이 특정한 매체와 양식의 유효성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한다면, 이러한 시대에 예술의 형식적 전통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다. 마노비치 자신이 예견하고 있는 것처럼, 수용자의 정보 경험을 이끌어내기 위해 “예술가들이 어떤 물리적 대상을 만들 필요는 점점 더 없어지고 있으며,” 이 물리적 대상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리믹스(remix)”하고 “인용(quoting)”하는 디지털의 혼성적 문화 생산 양식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포스트 미디어 시대는 디지털 기술에 의해 견인되는 예술의 역사적 진보의 시대가 아니라 예술의 관습과 전통이 더 이상 불필요한, 그리하여 이론가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주장하는 것처럼, 예술의 전통은 단지 “참조”될 뿐이고 형식은 “네트워크를 위한 일시적 정거장”으로서만 유효하며 작가들은 “(마치 DJ이나 프로그래머처럼) 정보의 벼룩시장에서 소재의 재활용과의미의 변주에 몰두”하는 “포스트 프로덕션(postproduction)”의 시대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 포스트 프로덕션의 전략 속에서 “작품의 물리적 현존은 정보화 시대의 공식들 속으로 용해”되고, 작가의 “독창성과 창조성은 인터넷의 절충주의(eclectism: sharing/programing and deejaying)를 위한 희생양”이 된다. 포스트 미디어는 작가/매체/형식과 같은 창조의 범역사적 동인들을 디지털적 보편/일반주의라는 모호한 낙관주의에 매몰시킨 채 예술을 역사적 지평의 불온한 ‘이후’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매체론의 또 다른 맥락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의 포스트 미디엄 이론이 주목받는 순간은 바로 이와 같이 디지털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미술이 스스로의 반매체/반역사주의의 모순 속에서 어떤 위기의 징후를 드러낼 때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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