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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모두를 위한 세계-역사 저편의 역사

글 이진실

《모두를 위한 세계》 | 3.1~5.26 |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

 

윌리엄 켄트리지, 〈더욱 달콤하게 춤을〉, 7채널 스크린 설치, 사운드, 메가폰, 15분, 2015,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어떤 전시든 그 취지가 국가적·역사적 기념비를 세우는 선상에 놓이게 되면, 이미 출발선에서부터 일종의 딜레마를 엉거주춤 달고 출발한다. 큐레이터의 참신한 기획력이나 작품들의 적절성을 따지기도 전부터 어떤 명분에 봉사할 것이라는 짐작 때문에 전시에 대한 기대는 반쯤 꺾이기 마련이다. 때문에 하나의 전시로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목표, 공공미술기관에 부여된 이 공적인 사명은 어쩌면 시작부터 그저 하나의 제스처로 전락할 실패를 예견케 한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혁명과 인류의 보편사를 기념하는 전시들은 끊임없이 열려왔다. 최근 사례로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이 기획했던 《봉기(Soulèvements)》(2016.10.18~2017.1.15, 주드폼, 파리)와 같은 전시는 ‘혁명들’로 구성된 대문자 역사를 회고함에 있어서 이미지가 어떤 다른 이야기를 파생시킬 수 있으며, 각기 다른 시간을 겪고 있는 세계 각지의 봉기들에 대해 어떤 연대의 성좌를 그릴 수 있는지를 탐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3·1운동이라는 이름은 일제 식민 지배에 저항하기 위한 민족운동이라는 어쩌면 지극히 화석화된 역사적 기호인 것은 분명하다. 반세기 동안 권위주의·반공주의 국가체제는 ‘독립운동선언문’이나 ‘민족대표 33인’이라는 단어들을 반쪽짜리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이용했고, 신자유주의의 조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 세대에게, 더욱이 국가에게 기대할 것이 사라진 이 시대적 감성에게 이 숫자-기호는 별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낡은 유물에 가까울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오히려 이 굳어진 기호를 녹이고 해체하는 일은 ‘문화산업’에서 더 영리하고 다채롭게 벌어졌다. 특히 최근 영화들은 그간 주목되지 못한 여성· 학생·기층 민중의 주도적인 역할, 위안부 문제, 해외 유학생 및 디아스포라 동포들, 그리고 반공주의에 가려진 항일무장투쟁의 다양한 발굴로 그 시대의 형상에 풍부한 입체감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어떤 기념식이나 만세 운동에 참석하는 것보다 영화관에 앉아 영화 〈항거〉를 보는 것이 가장 3·1절을 생생하게 추체험하는 방도가 아니었는가 말이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는 우회로

이런 상황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공미술관의 전시가 시대착오적 상투형을 재생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 3·1절이란 기호 안에 짙게 깃든 반일정서, 민족주의, 순혈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란 어떻게 가능할까. 적어도 《모두를 위한 세계》는 그 지뢰밭을 우회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전시는 우회로의 전략으로 일단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을 꺼냈다. 보통 세계시민주의, 혹은 사해동포주의라고 번역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은 보편적 인류공동체를 주창하는 이념이다. 그러나 이 코스모폴리타니즘이 식민주의적 발상에서 나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1897년 대영제국의 교양 있는 독자들을 위해 발행된 잡지 『코스모폴리스(Cosmopolis)』는 빅토리아 여왕을 아우구스투스 황제나 알렉산더 대왕에 비겼으며, 19세기를 전후로 코스모폴리타니즘이란 슬로건은 야만 상태의 원주민을 이성적인 국가 개념 아래 계몽시킨다는 제국주의적 이념을 근간으로 했다. 이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는 기호는 시대적 의미 변환을 겪게 되는데, 냉전체제가 사라지고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 느슨해진 20세기 후반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넘어 전 지구적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기호로 재창안되었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이란 개념이 다시 대두된 가장 근래의 계기는 EU(유럽연합)의 결성이다. 코스모폴리탄적 유럽이라는 기획은 자의식적 민족들이 구성하는 새로운 국가 형성의 정치적 실험장으로 대두되었으며, 민족주의나 다문화주의의 배타성을 벗어나면서도 개별주의적 경향을 넘어 전 지구적인 세계시민권을 상정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간주되었다.

3·1운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 프레임을 시도하는 《모두를 위한 세계》는 이러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을 매개삼아 3·1운동을 일제 식민주의에 맞선 민족해방운동으로 보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범세계적 인권운동의 일환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물론 기획자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이 서구 중심주의를 기저로 하고 있기에 이를 식민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정의하는 것은 역설적이라는 점을 스스로 밝히며, 문화론적 연구를 보완적 방법론으로 표명하고 있다. 이 문화론적 연구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국가적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는 소수민족이나 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의 행동, 신념 등을 연구하는 문화기술지의 내재적 시선을 갖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전시의 프레임은 3·1운동이 조선의 독자적인 봉기가 아니라 해외 유학생들과의 조직적인 독립운동과도 연장선상에 있으며, 중국은 물론 인도, 필리핀, 동남아시아, 아랍 지역의 민족운동과도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하여 이번 전시는 한국과 일본의 이항대립을 넘어 국제적인 관점으로 3·1운동을 바라보며, “세계 각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는 미시적인 담론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불러 모은 것이라 한다. 이처럼 이 전시는 식민주의 하에서 각인된 피지배자들의 집단적 저항과 기억을 다양한 지형학적 좌표들(남아프리카 공화국, 터키, 일본, 대만, 베트남, 덴마크 국적을 지닌 작가들)에서 재구성하며 3·1운동이라는 기호의 껍질을 용해시키고 있다.

 

역사의 기호를 비우고 다시 채우기

전시 《모두를 위한 세계》는 ‘Zero Gravity World(무중력세계)’라는 영문명을 달고 있다. 결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보편적 인권의 세계는 모두가 중력과 같이 저항 불가능한 힘을 거스르고자 하는 시도 안에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역설을 내포하는 것일까? 관람객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아흐멧 우트(Ahmet Öğüt)가 설치한 경사진 공간을 올라가야 한다. 상당한 각도로 인해 버티며 서있기가 다소 힘든 경사로에서 중력을 거슬러 오르며 일련의 스케치들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공상적 환상의 물질 세계〉는 이렇듯 손쉬운 인식을 허락지 않은 채, 국가(nation-state)라는 공상적 범주가 실제적·물리적 신체들과 어떻게 상충하는지를 목도하게 만든다. 어떤 나라도 받아주지 않아 17년 동안 샤를 드 골 공항의 출국장에서 살았던 사나이, 50년 이내로 완전히 가라앉을 섬나라의 인구가 이주해야 할 땅,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건 탈출구로서의 가짜 여권이 1세계 어린이에게는 관대한 놀이와 미담이 되는 역설 등 결코 ‘보편적’이라 할 수 없는 이 세계의 민낯을 갸우뚱하게 마주해야 한다. 2층에는 올라설 수 없는 높이의 원형 트램펄린 주위로 콜라주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다. ‘1995년 7월’이라는 시간에 맞춘 기록 사진들은 일본의 옴 진리교 사린 테러나 체첸 반군에 의한 러시아의 검색과 긴장 등을 환기시키며 기이한 비현실적 콜라주로 접합되어 있다.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의 8채널 영상 설치 〈거듭되는 항거〉는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밝히고 알리기 위한 지속된 투쟁의 기록들과 시적인 제주의 풍광들을 교차시킨다. 국내에서 두어 차례 전시되었던 이 작품에 둘러싸여 다시 작가의 보이스오버에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제주 4·3항쟁을 알렸던 과거 맥락과는 또 다른 결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연구자, 유가족, 생존자의 증언과 기억, 무속인의 굿, 기념식 장면 등이 또 다시 근과거의 질감을 띨 때, 역사적 사건에 대한 명예회복이나 역사화라는 진보적 목표 달성을 넘어 여전히 국가라는 체제와 (자연을 비롯한) 생태공동체가 거듭 겪고 있는 모순과 상처를 조용히 환기하게 되는 것이다. 3·1, 4·3, 2·8과 같은 숫자들은 전승된 “역사의식의 기념비들”이며,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생애 마지막 텍스트에서 “어느 시대에나 전승된 것을 제압하려 획책하는 타협주의로부터 그 전승된 것을 쟁취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말하자면, 벤야민은 반복적이고 연속적인 패턴으로 매해 다시 돌아오는 기념일이라는 시간의 이미지들을 폭파하고 재구성하기를 요구한다. 히카루 후지이(Hikaru Fujii)의 〈2·8 독립선언서〉는 동시대적인 맥락에서 그러한 해체와 재구성을 가장 과감하게 보여준다. 식민제국의 한복판 도쿄에서 삼엄한 감시를 뚫고 300여 명의 한국인들이 감행했던 독립선언문이 100년 뒤 일본에서 거주하는 베트남인 유학생들에 의해 낭독된다. 피해민족의 자결권을 선포하는 선언문은 식민주의자의 언어로 번역되고, 또 다른 이방인/이주자에 의해 낯설고 서툴게 상연된다. 수행적인 연기를 통해 과거의 일이라고 여기는 제국주의 및 인종주의의 흔적들을 캐내면서 보이지 않는 정체성의 힘을 언어, 태도 등으로 가시화해온 작가는 이렇게 ‘민족자결’이라는 신념의 기호를 또 다른 역사적 가해자와 피해자, 모국어와 ―인정받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습득해야 하는― 이방 언어의 좌표 속에 재기입함으로써 일본이든 한국이든 내재화된 순혈주의와 차별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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