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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글 김정아

김현진 예술감독 ©김흥규

《2019 베니스비엔날레》가 오는 5월 11일, 이탈리아 베니스 시 자르디니 공원 및 아르세날레 일대에서 그 성대한 막을 올린다. 작년 6월 《2019 베니스비엔날레》 제58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예술감독에 선정된 김현진 큐레이터는 ‘동아시아 근현대를 탈주하고 재구성하는 수행적 여성 서사들’을 주제로 전시를 선보일 예정으로,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 3명의 여성작가가 참여한다. 『미술세계』는 작품 설치 준비에 한창인 김현진 예술감독을 만나 전통, 근대성, 역사적 아카이브, 여성과 젠더 복합성 등 이질적 영역을 관통하는 세 명의 여성 작가들의 작업들을 통해 어떠한 담론적 풍요로움을 풀어낼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19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공모에 지원한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작년 상반기는 휴식 시간이었어요. 2017년 하반기에 공연 〈십년만 부탁합니다〉가 끝나고 나서 좀 지쳤고 건강 상태도 안 좋아 일부러 쉬고 있었는데, 공고가 났다는 걸 알려주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원을 한다는 것은 되던 안 되던 관심이 있다는 표명이기도 하니 안 되도 한 번 지원해보는 것은 괜찮겠다 싶었어요.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오랜 전통이 있는 큰 국제행사라 좋은 기회라 생각해 시도를 해 보고 싶었던 거죠. 또 제 세대 큐레이터가 충분히 맡을 수 있는 행사라는 생각도 들었고, 베니스 국가관을 맡을 정도의 준비는 충분히 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관 예술감독 선정회의 심의평을 보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운영 방향에 있어서 지구촌 문화에 대한 ‘지리정치학적인 차별화’가 여전히 유효하며, ‘다름과 차이의 존중’이 필요하다는 시각에서”였다고 최종 선정 이유가 공개되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강조하셨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실 심사라는 게 운도 따라줘야 하지만, 국제 현장의 세부를 파악하고 있는 큐레이터로서의 판단과 저의 오랜 프랙티스(practice)의 내용으로 기획 방향에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제안한 점은 있습니다. 국제 현장의 지형도와 각 큐레이터들의 위치나 그 정치성의 차이점을 이해한다면, 현 총감독의 맥락을 받아들여야 할지, 그에 대한 다른 스테이트먼트를 가져갈지에 대한 판단도 가능했습니다. 랄프 루고프(Ralph Rugoff) 감독은 성공적인 큐레이터지만, 런던의 헤이워드 갤러리라고 하는 주류 미술관의 서구 남성 디렉터로, 저는 그 위치에 대한 카운터 파트인 아시아의 여성과 젠더 타자들의 서사를 제안했고, 이것은 지난 십년간 제가 다루어 온 근대성에 대한 반성을 살피는 여러 전시와 프로젝트들의 맥락을 다시 젠더를 통해 연장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서구 근대성이 캐논(canon)으로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지역의 특수성이나 이곳의 전복적인 역사적 서사들로 캐논을 흐트러뜨리며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재설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명확하게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그간의 일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유럽 미술 현장에 대한 친숙함이 있습니다. 특히 베니스는 2년마다 거의 매번 방문하고, 2015년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때는 아르코미술관에서 관장으로 일하면서 총감독의 한국작가 리서치를 도왔고, 당시 그 계기로 김아영, 남화연, 임흥순 작가가 본전시에 참가한 바있습니다. 임흥순 작가의 은사자상 수상식 현장에도 제가 들어가 소감을 통역했고요. 《베니스비엔날레》를 속속들이 경험한 적도 있고, 이미 다른 국가관 행사를 맡았던 가까운 해외 큐레이터 동료들이 여럿 있어 그들을 통해 베니스 현지의 어려움이나 필요한 정보도 많이 가지고 있는 등, 나름 잘 아는 곳이라서 개인적 편안함이
있는 필드입니다. 이런 부분도 국제 현장인 만큼 고려가 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독님은 동시대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로서 국내외 다방면으로 활동해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술관 관장 경력도 있고 공연 기획·제작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으신데요. 여러 분야에서의 경력이 예술감독 지원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양한 분야의 결합은 경력이라기보다 내용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는 미술, 퍼포먼스, 공연적 결합을 종종 ‘다원예술’로 분류하지만, 저에게 카테고리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2010년대 이후 문화이론이 결부된 리서치 기반 작업을 더 심화해왔고, 매체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작가들이 갖고 있는 요소들을 장르의 구속을 넘어 내용을 가장 잘 드러내고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확장해 보려고 노력해왔어요. 특히 동시대 미술에서 연극적(theatrical)인 것, 퍼포먼스나 비디오 등의 비물질적인 방법들에 관심이 많은데,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정은영, 남화연 작가의 경우도 이러한 측면이 두드러지죠. 그 외에도 조각적이고 3차원적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들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번 한국관 전시에 그런 것들이 모두 녹아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관 전시 주제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로, 재미동포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에서 빌려왔습니다. 이 소설이 영미권에서는 크게 주목받았다고 들었는데, 한국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소설의 어떤 부분에 영감을 받았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예술감독 선정 발표가 난 후 예정되어 있던 리서치를 위해 뉴욕 바드 컬리지에 다녀왔는데, 그때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이라, 이 소설이 전시 기획 내용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닙니다. 『파친코』는 스토리텔링이 잘 되어 있고, 문학성뿐만 아니라 대중성도 있어서 전미 비평가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입니다. 우선 첫 문장이 너무 강렬했어요. 부산 영도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하층민 계급의 이야기인데,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세파에도 굴하지 않는 삶에 대한 단단한 태도를 보여줘요. 일종의 서발턴(subaltern)인 인물들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간명하고 힘 있는 문체로 쓰여 이들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드러내는 것이 좋았고, 소설의 첫 문장인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그런 힘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감적으로 우리 전시가 가지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 느껴졌고요.

 

언론간담회 때 전시 기획력과 완성도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관의 특징을 말씀하셨는데요. 예술감독으로서 진두지휘하며 주력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스스로 완벽주의에다 구조적으로 계획을 짜서 진행하는 편이고 나름의 기준도 높은 편입니다. 내용적인 단단함과 디테일의 차이 이 두 가지가 잘 살아있는 전시를 만들고자 그간 단계적으로 일해 왔고, 동시에 이러한 작업 과정이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통해 완성되는 공동체적 모델을 지향합니다. 90년대 이후 좋은 교육을 받으며 글로벌 환경에서 성장하고 확장되었고 입체적인 경험을 가진 저희 세대와 이후 세대에서 집합적 지능으로 함께 이룰 수 있는 영역을 추구해 보는 것 역시 일의 과정에서는 중요했고 의미가 있었습니다. 작가들이 작업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 나머지 업무는 각자의 영역에서 가장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전문 인력들로 팀을 구성해 일하고 있어요. 또 베니스 현장에서는 영상 설치를 위해 현지 경험이 많은 독일 기술팀이 함께 작업하고 있고요. 이러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꼼꼼한 준비를 통해 한국관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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