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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이 엔위저, 대항(counter)으로서의 큐레토리얼 실천

글 박가희

오쿠이 엔위저, 이미지 제공: ⓒ(재)광주비엔날레

 

3월 15일 접한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1963-2019)의 작고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에 추도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오쿠이 엔위저는 1994년 『Nka: 아프리카 현대 미술 저널(Journal of Contemporary African Art)』을 발행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1997년 제2회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 2002년 《카셀 도쿠멘타11》,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 2012년 《파리 트리엔날레》,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까지 굵직한 전시를 기획하며 서구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미술계의 지형을 재편함으로써 동시대미술의 ‘탈식민적 전환(postcolonial turn)’을 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편, 그에게는 항상 “최초의 아프리카인 큐레이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는데, 모순적이게도 그가 그토록 넘어서려고 했던 서구 모더니티가 생산해낸 경계의 개념이 되려 그의 정체성으로 호명된 것이었다. 이는 마치 그의 성과를 정체성 이데올로기의 투쟁으로만 환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그만큼 여전히 서구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미술계의 헤게모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제3세계 출신의 큐레이터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갖는 이중성을 인식하고, 활동의 전제이자 전술로서 탈식민주의 담론을 전면에 내세운 듯했다. 실제로 오쿠이 엔위저는 “탈식민주의는 오늘날 제가 큐레이터로서 다른 큐레이터들과 큰 차별성을 갖게 하기 때문에 제게는 아주 중요합니다. 탈식민주의는 언제나 제 주장의 출발점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실천이 갖는 차이는 탈식민적 접근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시에 탈식민적 접근은 출신지라는 정체성 규명을 통해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지구상의 모든 이들에게 당면한 주요한 의제이자 현상임을 주장했다.

이 글은 ‘대항(counter)’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탈식민주의 담론을 토대로 오쿠이 엔위저가 시도했던 큐레토리얼 실천을 검토한다. 대항은, 샹탈 무페(Chantal Mouffe)가 비평적이고 정치적인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 제시한 복수성을 주장하며 적대(antagonism)와 구분하여 언급한 경합(agonism)에 등장하는 관계항의 정의와 유사한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무페에 따르면 적대가 ‘적과 나’라는 이분법적인 대립을 전제하고 상대항을 전복 혹은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반면, 경합은 상대항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정치적 파트너라는 동등한 주체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 의미하는 대항으로서의 큐레토리얼 실천은 서구 모더니티의 과정에서 ‘서구는 현대, 비서구는 원시’와 같은 위계를 설정하면서 누락된 미술 실천의 양상을 회복하여 서구 중심의 미술 세계에 대항으로서 이를 드러내고, 그들이 공존하는 상태를 조성하여 동시대미술의 동시다발성을 통해 불균형한 미술계의 지형도를 재배치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양상을 살피기 위해서 그가 비교적 초창기에 기획한 두 전시, 1997년 제2회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 《무역로: 역사와 지리(Trade Routes: History and Geography)》(이하 《무역로》)와 2002년 도쿠멘타11 《플랫폼(Platforms)》(이하 《도쿠멘타11》)을 중심으로 그가 탈식민주의의 주요한 의제들을 어떻게 대항의 전술로서 그만의 큐레토리얼 개념과 방법으로 구체화했는지를 추적한다.

두 전시를 살펴보기에 앞서 당시 전 세계에 일었던 세계화(globalization)의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서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구축된 글로벌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하며, 미술계에서의 ‘동시대’ 개념과 떼어놓을 수 없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등장은 동시대라는 환영 속에서 서로 다른 지역에 있지만 마치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왔으며, 이러한 현상이 미술계에서는 초국가적 거대 전시의 양산, 특히 제3세계 국가에서 주최하는 비엔날레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초국가적 이벤트의 개최는 동시대 세계 미술 흐름에 동참한다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신식민주의를 답보하는 세계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탐색했던 탈식민주의 담론은 세계화를 투영한 동시대성이 전제하는 통합과 단일성이 결과적으로 지역의 고유성을 배제한다고 비판했다. 이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동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상황, 근대적인 식별 체계를 넘어서서 궁극적으로 집단적이지만 개별적으로 특수한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과 존재 의식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문화로의 전환을 내포했다. 하지만 결국 각 지역과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인식에서는 지역적 특이성을 다시 주입하고 확산할 전술적 개입이 필요한 모순 속에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 동시대미술의 탈식민적 전환은 서구 미술계와는 별개로 전개되는 동시다발적인 지역 미술계의 생태를 인식하는 것이었으며, 기존에 존재했던 서구와 비서구라는 관계항을 뛰어넘어 세계화의 결과로서 등장한 모든 체계와 관계를 정의하는 새로운 지정학적 관점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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