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TOP

COVER ARTIST

강용면, 인간학으로서의 전통

글 백지홍

강용면 작가

『미술세계』의 2019년 5월 표지 작가는 조각을 매체 삼아 전통문화를 현대적 조형으로 풀어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온 강용면(b.1957) 작가다. 전라북도 완주의 아원고택에서 개최 중인 작가의 22번째 개인전 《전통을 품다》(4.1~8.31)는 한옥과 작가의 대표작들이 어우러져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하고 있다. 1980년대 작가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린 목각 작업부터 2014년 공개되어 근래 강용면 작가를 대표하는 〈현기증〉, 2018년 서울 전시 《응고》(공간41, 8.29~9.9)에 선보인 〈응고〉 연작까지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나보자.

현대 미술의 장으로 들어온 채색 나무 조각

강용면, 〈온고지신-만인보〉, 나무에 채색, 각 5×5cm, 2004250년 된 한옥을 종남산 산자락 오성마을에 옮겨온 문화 공간 아원고택에서 강용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전시가 열린다는 점은 퍽 흥미롭다. 30여 년 조각 작업을 지속해온 강용면의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있다면 전통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실내 갤러리 공간뿐만 아니라 아원고택의 야외 공간 곳곳에 자리 잡은 작가의 작업은 산자락의 곡선, 그리고 한옥 지붕의 곡선과 어우러져 기존에 선보인 적 있는 작업들도 새로운 작업처럼 다가온다. 《전통을 품다》에서 선보인 작업들을 바탕으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강용면, 〈역사원년〉, 나무에 채색, 각 9×17×45cm, 1997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 중 목조각 〈역사원년(歷史元年)〉은 강용면 작가의 다채로운 작업들의 뿌리라 할 만하다. 나무를 조금은 투박한 듯 깎아내고 채색한 인물상은 정감 어린 느낌을 준다. 이 채색 목조각 연작 〈역사원년〉은 그의 작품세계 초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조각에 색을 입히는 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동서를 막론한 오랜 전통이다. 그러나 미술교육이 새로이 자리 잡던 시기 한국에서 완성된 조각에 채색하는 것은 일종의 암묵적 기준에서 벗어난, ‘괜한 짓을 해서 다 완성된 작품을 망치는 일’이었다. 꼭두각시 조각의 미감을 재현하기 위해 1980년대 말부터 제작한 〈역사원년〉은 1991년과 1992년 두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강용면이라는 이름을 미술계에 각인시켰고, 이로써 채색 조각에 대한 선입견도 깨졌다.

성완경 평론가는 1994년 금호미술관에서 개최된 《강용면 조각전: 역사원년》(11.25~12.4)에 대해 평한 「민속적 고졸미의 현대적 변용」에서 “한국적 전통에 착안한 작품이되, (중략) 부드럽고도 친근하며 신선한 작품”이라며 세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정립된 그의 목조각을 호평했다. 이러한 호평은 1990년대 내내 지속되어 『월간미술』이 선정하는 젊은 작가에 선정되는가 하면 199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1991년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1995년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 초대전》 대상을 수상하고 《98 한국미술 독일순회전》(베를린, 아헨)을 통해 독일연방TV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이는 작가로서 자신이 탐구하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존재함을 인정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전통을 품다》 전시 전경. 〈현기증〉을 배경으로 전면에 〈역사원년〉이 보인다.

 

 

전통의 현대화

보다 추상화되고 패턴화된 후반기 목조각 작업이 등장한 2000년 전시의 서문 「溫故知新-강용면 조각展」을 작성한 최두수 작가는강용면 작가가 “단절된 우리의 전통과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날의 삶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고 표현했다. “강용면 세대에 있어서 바로 이 전통과 새로움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특히 민족사의 질곡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 세대들은 남한의 현대사에 있어서 전통이 얼마나 버거웠는지에 대해 몸으로 직접 느낀 세대들인 것이다. 19세기적 사고로 20세기를 살며 두려운 마음으로 21세기를 맞이해야 했던 세대가 바로 강용면 세대였다.”라며 세대론으로 귀결되는 글의 마무리 부분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전통에 대한 특정 감각을 세대의 특성이라 말하는 것은 디테일들을 놓칠 위험이 있지만, 실제로 1950~60년대생 미술인들에게서 전통의 문제는 주요 논제로 등장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강용면 작가 역시 2019년 4월 8일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미술의 자존심을 지키고, 우리 사고를 바탕으로 평가해야 문화가 다양해지고 인간의 삶이 풍부해진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며 ‘우리 것’에 대한 생각이 여전히 작업의 중심에 있음을 밝혔다. 전시의 제목도 《전통을 품다》이지 않는가.

강용면, 〈응고(凝固)〉, 스텐인리스, 철골, 에폭시, 유화물감, 150×150×210cm, 2018

너무나 많이 언급되어 사실상 그 의미가 퇴색되었음에도 ‘전통의 현대화’는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독자적인 문화와의 극심한 단절을 겪었어야 했던 곳에서는 강한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한국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우리 것 혹은 우리 미술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내려오는 전통미술이 큰 의미를 차지할 것이나, 겉으로 보이는 외양적인 면이나 기법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강용면을 비롯한 작가들이 말하는 우리 것은 보다 ‘정신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강용면, 〈불안〉(부분) 레진, 먹, 판넬 180×360cm 2014강용면 작가가 말하는 우리 것의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보자. 그는 창작의 기저에 성장기에 접한 유교 문화와 샤머니즘이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사회 규율로는 한학(漢學)의 전통이 이어져 왔으며, 일상생활에서는 샤머니즘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는 전북 김제에서 나고 자라, 현재도 전북 군산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좁게는 자신에 몸에 밴 지역의 문화를 작품으로 승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넓게 본다면 그가 표현하려고 하는 ‘우리 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풍습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전통을 자리 잡게 하는 원동력, 다시 말해 전통이라는 ‘뿌리의 뿌리’인 것이다. 다양한 문화와 전통이 지키고, 전달하고자 한 이 근원적인 정신은 작가의 성장과 함께하였으며 현재의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 문화의 단절과 급격한 변화 속에 묻혀 버린 것들이기에 전통을 찾아내고 계승하는 작업은 일종의 현대의 고고학이라 부를만한 것이 되었다. 강용면 작가와 같은 이가 없다면 전통 중 일부는 곧 그 존재가 잊힐 것이다. 이 고고학적 작업을 위해 그는 자신에게 가장 강렬한 영감을 주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작업을 이어왔으리라.

강용면 작가의 작업처럼 전통의 형식과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작업들은 개념은 남았지만 형식은 사라진 것, 또는 형식은 남았지만 왜 그러한 형식인지 내용이 사라진 수많은 전통이 적절한 의미를 부여받고 가치를 평가받도록 돕는다. 그의 첫 번째 대표작 〈역사원년〉이 상여를 꾸미는 꼭두각시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미술애호가와 작가들에게 채색 목조각의 아름다움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전통을 품다》 전시 전경. 좌측에 〈4월의 눈물〉이, 우측에 〈현기증〉이 보인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THIS DIRECTORY

THIS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