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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T

님이 세우지 아니하시면(Nisi Dominus): 파괴와 재림

글 김수아

《BMW 테이트 라이브: 안느 임호프: 섹스(BMW Tate Live Exhibition: Anne Imhof: Sex)》 | 테이트 모던 탱크(The Tanks, Tate Modern London) | 3.22~3.31

 

퍼포먼스 중인 안네 임호프의 퍼포머들(Nomi Ruiz, Frances Chiaverini, Mickey Mahar, Enad Marouf, Josh Johnson, Eliza Douglas, Maoro Bultheel, Billy Bultheel),  ©Nadine Fraczkowski,
Courtesy Galerie Buchholz, Berlin/Cologne/New York

 

어둠이 내려앉은 사우스 탱크 안, 번쩍이는 섬광을 향해 경사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탱크의 깊은 곳에 도착한다. 알파벳 대문자 T 형태의 이 길(구조물)은 수평선을 향해 쭉 뻗은 부둣가의 다리처럼 넓은 탱크 안을 가로지른다. 이 길의 끝에 다다르면 하얀 구조물 위에 놓인 하얀 매트리스와 그 위에 앉아있는 안네 임호프(Anne Imhof)의 뮤즈, 엘리자 더글라스(Eliza Douglas)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마이크를 들고 의식을 거행하듯 엄중한 목소리로 음파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퍼포머들은 이 시그널(소리와 빛)을 향해 하나 둘 모여든다. 상반된 성별과 인종으로 짝지은 네 명의 퍼포머들은 서로를 한 몸처럼 부둥켜안은 채 레슬링과 왈츠의 경계를 오가는 춤을 추기 시작하고, 중앙으로 집결한 퍼포머들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관객들의 눈을 삼켜버릴듯 응시한다. 그렇게 관객은 안네 임호프의 세계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다.

 

안네 임호프는 지난 2017년 《제 57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후 독일 미술계는 물론 최근 유럽 미술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독일의 시각예술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이다. 그는 페인팅, 사진, 음악,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데 그중에서도 스케일 큰 페인팅과 설치, 음악 작업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한 장시간의 퍼포먼스로 잘 알려져 있다. 2년 전 그에게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겼던 퍼포먼스 작품 〈파우스트(Faust)〉가 장장 5시간 동안 관객을 신선한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면, 이번 〈섹스(Sex)〉에서는 약 4시간에 달하는 격렬하고 도발적인 퍼포먼스로 테이트 모던의 ‘탱크(The Tanks)’를 그야말로 불구덩이로 만들었다.

 

관계의 전복

안네 임호프의 퍼포먼스는 다양한 시각예술 매체와 동시대 과학 기술 적용, 시청각 메타포 사용 등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작품의 코어는 전통적인 형식과 개념에 충실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1960~70년대 퍼포먼스 아트의 특징인 동시성, 일시성과 같은 ‘시간적 요소’와 예술가와 관객의 상호적인 관계 자체가 예술적 상황, 작품이 되는 ‘관계미학’에 기반한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퍼포먼스 내내 관중 속에 섞여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퍼포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실시간으로 작품을 컨트롤한다. 이때 작가가 메세지를 전송해 일련의 행동을 지시하는 대상은 퍼포머들이지만, 열린 공간에서 자유로운 이동이 허용된 점, 작품의 동시성과 일시성, 즉흥성은 결국 관객을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며, 이는 작용-반작용의 효과처럼 다시 작품의 즉흥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 메시지의 최종 수신자는 관객이며, 작품 창작 프로세스의 일부로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 역시 관객이다. 같은 이유로 그 누구도 (안네 임호프조차도) 퍼포먼스의 전체를 보거나 파악할 수 없지만, 세 공간의 구석구석에서 이 모든 행위를 실시간으로 찍고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는 관객의 시선과 행위를 통해 작품은 재생산되고 확산된다. 따라서 안네 임호프의 세계에서 관객은 작품을 관망하는 관람자가 아닌 작품의 일부이자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제2, 제3의 기여자(contributor)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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