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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T

어두운 시대에 대한 노래

글 강유진

《BMW 테이트 라이브: 안느 임호프: 섹스(BMW Tate Live Exhibition: Anne Imhof: Sex)》 | 테이트 모던 탱크(The Tanks, Tate Modern London) | 3.22~3.31

 

퍼포먼스 중인 안네 임호프의 퍼포머(Josh Johnson) ©Nadine Fraczkowski, Courtesy Galerie Buchholz, Berlin/Cologne/New York


지난 3월 23일, 런던 도심에서는 브렉시트(Brexit) 철회를 위한 국민투표 시행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시위에는 약 100만 명이 참가했으며, 이는 지금까지 열린 브렉시트 반대 시위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그 시위대가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은 영국의 이런 상황보다는 훨씬 멋진 작품을 선보였다. 그날은 독일 작가 안네 임호프(Anne Imhof)의 새로운 퍼포먼스 작품 〈섹스(Sex)〉를 보기 위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날이기도 했다.

매 공연에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약 4시간의 종교의식과 같은 긴 라이브 작업은 회당처럼 보이는 탱크(Tanks)에서 공연되었다. 테이트 모던의 제일 아래층에 위치한 시멘트로 만들어진 공간 탱크는 큰 원형의 사우스 탱크(South Tank)와 이스트 탱크(East Tank), 사각형의 트랜스포머 1, 2(Transformer I, II) 및 드럼 갤러리(Drum Gallery)로 구성된다. 임호프는 탱크가 만들어진 이래 최초로 이 광활한 공간을 모두 사용한 작가이다. 전시 큐레이터인 캐서린 우드(Catherine Wood)는 한 인터뷰에서 탱크라는 공간이 화이트큐브나 블랙박스가 아니어서 운이 좋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탱크는 시멘트로 된 회색의 영역이다. 그것은 이 공간을 기존의 예술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과 같은 감상법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이 활용하는 공간들은 각 방에 설치된 목재와 철재의 구조물로 상·하 공간이 나뉘는 실제 공간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다양한 채널들을 활용하는 인터넷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이 공간들은 퍼포머들만 이용 가능한 몇몇 물리적으로 좁은 통로와 안네 임호프가 왓츠앱(WatchApp,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으로 즉흥적인 지시문을 통해 공연에 개입하는 디지털 메시지가 마치 보이지 않는 탯줄처럼 모든 공간을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다.

오후 여섯시 반이 되고, 사우스 탱크의 무거운 문이 열리면 관람객들은 낮은 활주로를 따라 어둠 속으로 향한다. 스태프들과 구조물들은 관객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안내한다. 관객은 이 활주로에만 머물 수 있어서 거리를 두고 퍼포머의 움직임을 감상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탱크의 나머지 공간에서는 퍼포머와 관객이 함께 뒤섞여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전시장 안에 모든 오브제와 장면들에 일일이 사족을 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사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관람해야 하는 이 작품은 관객의 선택에 의해 진행되며, 어느 정도 관람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처럼 보이나 작가가 설정한 특정 상황 아래 철저히 컨트롤된다. 탱크 밖으로 이동한 퍼포머들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필사적으로 다른 탱크에 모여 들지만 스태프에 의해 저지된다. 관객들은 퍼포머들이 행하는 성서의 기적처럼 보이는 퍼포먼스를 체험하고자 탱크 문 앞에 모여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 몇십분씩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같은 날 같은 시간을 할애하더라도, 관객들 각자가 본 것과 각자의 경험이 매우 다르다.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다양한 퍼포먼스가 일어나고, 관객은 작가가 설정한 제약과 다른 관객들로 인한 물리적인 지연 안에서만 최대한의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특별하게도 안네 임호프는 공연자와 관객 사이에서 역동적인 촉매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계속해서 관객 무리에 섞여 우리의 반응을 살피고 왓츠앱으로 지시하여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작품에 개입한다. 퍼포머 그룹은 작가의 실시간 지시문에 따라 관중과 어울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매 회 공연에 따라 작품 속 각각의 상황이 강조되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여섯시 반에 시작한 공연은 열시 반을 훌쩍 넘기기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처럼 〈섹스〉는 탱크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도 예측하기가 무척 어려운 작품이다.

큐레이터 캐서린 우드는 공간 탱크가 역사적이고 산업적인 기능을 재수행하면서 테이트 모던의 최하단부를 흔들어 연료를 공급하는 일종의 ‘발전기(원동기)’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테이트를 대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탱크와 그곳에서 선보이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갖는 고유한 성질은 축제도, 전시도 아니며 예술가들이 공간과 시간을 통해 실험할 수 있는 복합적 상황에 놓인 장소이다. 이곳에서 예술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실험하고 관객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테이트 모던은 예술가의 관행과 비전에 최대한 일치하는 방향으로 관객에게 라이브 작품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이 테이트가 추구하는 실용적 학문으로써의 큐레토리얼 방식이다.

테이트는 빅토리아 시대부터 말해오고 있는 ‘쓸모 있는 예술’을 비전으로 삼는 영국의 예술기관 중에 하나이다. 프란시스 모리스(Frances Morris) 관장은 3년 전 ‘새로운 테이트 모던(New Tate Modern)’에 대해 “연대기로 볼 수 없는 것은 삭제하되, 일반적 의미의 연대기와 맥락(context)을 재조명하겠다.”고 밝혔다. 테이트가 말하는 ‘연대기와 맥락의 재조명’은 제작 시기가 다른 작품들이 서로 영향을 주거나, 특정 작품이 어떤 시공간 안에서 결정적 공명을 갖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역사적 작품과 동시대 작품의 “짝 맺음(pairing)”을 통해 테이트를 다양한 관객에게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열린 장소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가령, 바실리 칸딘스키(Vassily Kandinsky)의 〈코사크(Cossacks)〉와 같은 작품이 쿠바 예술가 타냐 브루게라(Tania Bruguera)의 〈타틀린의 속삭임 #5(Tatlin’s Whisper #5)〉과 같은 작품의 유효성을 감지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거나, 초현실주의 화가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이나 프란츠 베스트(Franz West) 전시가 진행되면서 동시에 안네 임호프의 공연이 열리고, 다음 날 다른 장소에서 넷 아트(Net Art) 강연을 진행하는 운영 방식이 테이트의 비전과 선언을 따른다. 테이트는 큐레이터를 비롯한 뮤지엄 종사자들로 하여금 중앙집권적이고 일방적인 전달 시스템에서 벗어나 주요 소셜 네트워크 채널들을 통해 온라인 전시나 교육, 서비스와 커뮤니케이션 영역 전반을 아우르며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도록 장려한다. 테이트에게 있어 관객이 없는 공간은 유효성을 상실한 공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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