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TOP

WORLD ART

폴 세루지에, 저 나무는 어떻게 보이는가

글 최광수

《세루지에의 부적, 색의 예언(Le Talisman de Sérusier, une prophétie de la couleur)》 |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 2019.1.19~2019.6.2

 

〈부적(Le Talisman)〉, 패널에 유채, 21×27cm, 1888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의 과감하고 신비한 색채 그리고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와 에두아르 뷔야르(Édouard Vuillard)의 평면적이지만 화려한 일상을 그린 작품들은 나비파(Nabis)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하지만 나비파의 시작이 폴 세루지에(Paul Sérusier)의 작은 유화 〈부적(Le Talisman)〉에서부터였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1888년 여름, 폴 세루지에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Pont-Aven)에서 폴 고갱(Paul Gauguin)과 함께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창조했다. 세루지에에게 자연이란 정교하게 표현되어야 할 회화적 재현의 대상이 아니었고, 다양하고 순수한 색채로 이루어진 하나의 캔버스와도 같았다. 이후 파리로 돌아온 그는 고전적인 회화에 싫증을 느끼던 젊은 화가들과 함께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뜻하는 ‘나비(Nabi)’라는 단어로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세계를 알렸다. 문자 그대로 그는 그의 작은 유화와 함께 나비파의 부적과도 같은 존재가 된 것이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은 이러한 나비파의 시작을 알린 폴 세루지에의 작품, 〈부적〉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함께, 폴 세루지에와 함께 발전한 나비파의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리스 드니의 기억들과 함께 연대기 순으로 재조명한다. 2019년을 여는 오르세 미술관의 첫 특별전인 《세루지에의 부적, 색의 예언(Le Talisman de Sérusier, une prophétie de la couleur)》은 총 일곱 개의 섹션, ‘사랑의 숲에서의 미술 수업(Une leçon de peinture au Bois d’Amour)’, ‘부적: 작품의 물질성(Le Talisman de Sérusier: au cœur de sa matérialité)’, ‘종합주의의 탄생(L’écloison du synthétisme)’, ‘나비파의 성상화들(Les îcones de Nabis)’, ‘저 나무는 어떻게 보이는가?(Comment voyez-vous cet arbre?)’, ‘색으로 뒤덮인 평면(Une surface plane recouverte de couleurs)’ 그리고 ‘세루지에, 화가 그리고 이론가(Sérusier, peintre et théoricien)’로 구성되어 나비파를 집중적으로 해부한다.

폴 고갱의 수업

퐁타방에서의 즉흥적인 고갱의 미술 수업은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인상주의와는 조금 다른 노선으로 세루지에를 인도했다. 인상주의의 즉흥성과 더불어 주관적이고 순수한 색채가 가미되어 화려하고 장식적인 표현을 강조했다. 고갱은 바로 앞에서 보이는 것들을 표현하는 인상주의적 기법에서 나아가 ‘기억’을 통해 대상을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창조했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종합적인 인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종합주의(Synthétisme)’ 이론의 시작이었다. 세루지에의 작품인 〈부적〉에서 이러한 종합주의적 표현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을 완성시킬 당시의 고갱과 세루지에의 대화를 모리스 드니는 그의 저서인 ‘폴 세루지에의 작품과 그의 인생’ 속에서 이렇게 기억한다. “저 나무는 어떻게 보이는가? 초록색으로 보이는가? 그러면 초록색을 칠하라. 팔레트에서 가장 밝은 초록색을 칠하라. 그리고 그림자는 어떻게 보이는가? 푸르지 않은가? 그럼 두려워하지 말고 가장 푸른색으로 칠하라.”

세루지에는 이 같은 고갱의 지도 아래 가장 순수하고 밝은 색채들로 〈부적〉을 과감하게 완성해나가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은 단지 밝은 색깔의 평면들의 조합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요소들이 작품 속의 풍경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2018년에 프랑스 국립박물관 문화재 복원 및 연구센터(Centre de Recherche et de Restauration des Musées de France)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세루지에의 작품은 밑그림 없이 포플러 나무로 만든 패널 위에 바로 채색됐고, 각각의 물감들이 혼합된 흔적 또한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가끔은 붓이 아닌 손으로까지 채색을 하며 가장 순수하고 밝은 색감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종합주의의 도래는 그 당시의 젊은 화가였던,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와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에밀 베르나르는 세루지에와 함께 퐁타방에서 고갱에게 즉흥적인 수업을 받은 화가들 중 한 명으로서 이후에 종합주의 이론을 확실하게 정립하는 주축이 되었다. 대상의 단순화, 순수하고 밝은 색채의 사용 그리고 뚜렷한 윤곽선으로 대표되는 종합주의 이론은 기존의 자연을 모사하는 수준의 미술 관념을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대상에 관한 형상의 주관적 ‘재현’이라는 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인상주의 화가들을 뛰어넘어 순수한 회화가 추상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해방감을 가져다 준 것이다. 이렇게 폴 세루지에를 비롯한 퐁타방의 젊은 화가들은 자신들이 미술계의 ‘예언자(Nabi)’가 될 것임을 직감했고, 이것이 나비파(Nabis)의 시작이었다.

평면 위의 나비파

퐁타방에서 고갱과 함께 파리로 돌아온 폴 세루지에는 곧바로 자신이 발전시킨 예술 세계를 줄리앙 아카데미(L’académie Julian)의 화가들에게 소개했다. “1888년 10월, 그가 우리에게 고갱의 도움으로 그린 작품이라며 나무 패널 위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사랑의 숲의 풍경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종합적인 인상을 바라봐야 하는 작품이라고 했고, 그 작품을 ‘부적(Le talisman)’이라고 불렀다. 후에, 그 작품은 우리에게 하나의 성상화와도 같은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모리스 드니의 기억처럼 폴 세루지에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표현 방법은 아카데미의 젊은 화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큰 반향을 초래했다. 피에르 보나르, 에두아르 뷔야르를 비롯한 많은 젊은 화가들이 그 뜻을 함께했다. 그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각자의 작품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공유하며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나비파의 작품은 고갱과 세루지에의 목가적인 풍경화에서부터 모리스 드니의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작품들, 혹은 에두아르 뷔야르의 중산층의 일상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나비파는 이렇듯 다양한 주제의식에 따라서 나비파 안에서도 여러 가지 화풍으로 나누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의 미술이 단순히 대상을 복제하거나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형태의 단순화와 다양한 색채의 평면적 표현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념에 뜻을 함께하였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러하듯, 19세기 말의 나비파 화가들 또한 ‘우키요에’라고 불리는 일본 채색 목판화의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잘 알려진 가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의 작품처럼 일본 채색 목판화는 원근법에서 해방되어 각각의 색들이 섞이지 않게끔 차례로 찍어낸 작품이었는데, 이는 나비파의 순수한 색감의 사용과 그 간결한 표현이라는 그 목적을 함께하기도 하였다. 모리스 드니의 작품 〈녹색 나무들의 풍경(Paysage aux arbres verts)〉에서처럼 일본 채색 목판화의 영향은 작품 속의 평면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 채색 목판화의 영향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큰 파도(Sous la grande vague au large de la côte à Kanagawa)〉와 닮은 조르주 라콤브(Georges Lacombe)의 작품, 〈푸른 바다, 파도의 표현(Marine bleue, effet de vagues)〉에서 극대화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이들의 작품들은 풍경의 평면성을 극대화하여 전통적인 원근법과 깊이감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순수 회화의 추상적인 개념의 발견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나비파의 평면성을 일컬어 1914년, 모리스 드니는 “회화란 전쟁터의 말이나, 나체의 여인, 혹은 일련의 일상적인 것들을 표현하기에 앞서 근본적으로 일정하고 종합적인 규칙으로 채색된 평면일 뿐이다.”라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스스로를 ‘예언자’라고 표방하던 그들에게 모리스 드니의 이러한 공식적인 선언은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THIS DIRECTORY

THIS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