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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ESSAY

미술잡지에서도 블랙홀 이야기를 해야 할까?

글 권태현

사건 지평선 망원경을 통해 얻은 M87 은하 중심부 블랙홀의 이미지, 2019 ©Event Horizon Telescope Collaboration

 

지난 4월 10일, EHT(Event Horizon Telescope, 사건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가 찍은 최초의 블랙홀 사진이 공개되었다. 전 세계의 언론들이 블랙홀 이야기를 대서특필하며 온 세상이 떠들썩했다. 미술잡지도 뒤처질 수 없으니 블랙홀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니다. 블랙홀 이야기는 여기에서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뿐더러 지면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블랙홀 ‘사진’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슈가 된 사건이 블랙홀 자체가 아니라 블랙홀의 이미지,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블랙홀의 그림자 사진이라는 점에서 생각하면 시각적인 것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중대한 사건이 된다.

 

우선 4월 10일에 공개된 사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부터 따져보자. 먼저 짚어야 할 것은 그 사진이 블랙홀의 존재를 최초로 증명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 사진을 통해 분명히 밝혀졌다고 할 수는 있지만, 천문학자들은 이미 수년간의 관측을 통해 블랙홀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밝혀낸 바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은 블랙홀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블랙홀의 ‘이미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것이다. 수많은 과학적 증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어떠한 것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백문이 불여일견’ 같은 구태의연한 말로 끝낼 것이 아니다. 이미지와 존재의 문제는 시각적인 것을 탐구하는 문제의 가장 근원적 주제 중 하나이다. 애초에 이미지는 부재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에 있다. 이미지는 지금은 없는 것의 흔적, 혹은 그것이 존재했다는 징표로 작동해왔다. 우리가 쉽게 ‘재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기원을 살펴보자. 동굴벽화 같은 것들을 통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신화가 오히려 문화사적 근원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물지(Historia Naturalis)』에서 플리니우스(Plinius)는 고대 그리스의 도공 부타데스(Butades)와 그 딸의 이야기를 전한다. 전쟁터에 나가게 된 연인 앞에서 부타데스의 딸은 비탄에 잠기기를 잠시 멈추고, 촛불에 비친 애인의 그림자를 벽에 그려 남긴다. 그렇게 최초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 존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존재를 대신하기 위해, 혹은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이미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미지의 지표적 성격, 다시 말해 어떠한 이미지가 그 이미지와 연관된 다른 것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근본적인 속성은 절대적이지 않다. 오늘날에는 이미지가 너무도 쉽게 만들어지고, 또 조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지금, 이미지의 위상은 그 근원적 위상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와 존재의 문제는 보편적 승인이라는 측면에서 일종의 사건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블랙홀의 이미지-사건은 블랙홀이라는 존재의 증거로 기능하기보다는 블랙홀의 존재가 소수의 전문적인 영역을 넘어 보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지와 존재에 대한 사유를 지표성(Indexicality)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 보자. 어떠한 존재에 대한 강력하고 확고한 믿음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결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 존재의 문제가 가장 첨예한 종교를 예로 들어 이야기해보겠다. 신은 표상될 수 없기에 관념으로만 존재했다. 서구 문화에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신이라는 존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이미지가 요구되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구약 성서에서조차 신이 ‘불타는 떨기나무’의 이미지로 나타날 때에 결정적으로 존재가 증명되고 승인된다. 예수 이후에는 그가 신의 육화이기 때문에, 사실 예수가 그 자체로 신의 이미지이다.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존재와 이미지의 관계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서구 문화의 뿌리에 있는 기독교 문화와 시각중심주의, 그리고 이미지의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블루마블〉, 1972, 사진: Apollo 17 crew(Eugene Cernan, Ronald Evans, Harrison Schmitt) ©NASA Johnson Space Center

블랙홀 이미지에서 출발했으니, 다시 현대의 우주 과학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통해 더 이야기해보자. 둥근 지구가 돌아간다는 명제는 인간이 지구 밖으로 나가기 훨씬 전부터 상식이었다. 그것은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에서는 문제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영역에서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다 1972년, 나사(NASA)의 아폴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찍힌 〈블루마블(Blue Marble)〉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의 행성으로서의 지구를 보게 되었다. 블랙홀 사진이 찍혔을 때보다 더 넓고 강력하게 그 이미지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며 퍼져 나갔다. 그 이미지-사건은 집단적 기억에 방점을 찍었다. 오죽하면 한국에는 ‘부루마불(Blue Marble)’이라는 보드게임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나의 둥근 지구를 본 사람들은 우리의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70년대 이후 소위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자본주의의 변화가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그 과정에 〈블루마블〉이라는 이미지의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블루마블〉, 2012 ©NASA/NOAA/GSFC/Suomi NPP/VIIRS/Norman Kuring

또 하나의 문제는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과 시각성이 교차하는 문제이다. 나사의 사진을 하나 더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2012년에 또 다른 블루마블이 공개되었다. 이때 공개된 지구 사진의 흥미로운 점은 사람이 지구 밖으로 나가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 (1972년 〈블루마블〉은 아폴로 17호에 탑승했던 3명의 우주인들이 70mm 필름 핫셀블라드 카메라와 80mm 칼자이스 렌즈로 촬영했다.) 새로운 블루마블은 지구에서 인공위성 사진들을 합성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점은 기술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하나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시점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조합해 세상을 보게 된 오늘날의 시각성 자체를 환유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돌아와 인류 최초의 블랙홀 사진을 보자. 이번에 공개된 블랙홀의 사진은 블랙홀의 존재를 우리에게 유의미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만든 이미지-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극소수의 천문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지평이 아닌, 보편적인 영역에서도 블랙홀의 존재가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나아가 블랙홀의 사진을 찍기 위한 과정과 그 기술을 살펴보면 또 다른 방식으로 오늘날의 시각성을 반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HT의 블랙홀 사진은 전 세계 곳곳 8개의 전파 망원경이 돌아가는 지구 위에서 관측한 다방면의 신호를 조합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온 세상의 주목을 받은 우주 프로젝트가 미국의 나사가 아닌 13개 기관의 연합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고무적인 변화이다. 여기에는 한국인도 8명이나 개입하였다. 또한, 그 신호들을 조합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것에 젊은 여성 과학자 케이티 보먼(Katie Bouman)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소식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EHT 프로젝트의 215명 중 약 40명 정도만 여성이라고 하니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이렇게 하나의 이미지-사건을 통해 우리는 이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인류가 다시 한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함께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미술잡지에서도 블랙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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