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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UNG ART 1979~1994㉚

시월모임Ⅱ 노동하고 창조하는 우주여자

글 김종길

그림패 둥지, 〈함께 사는 땅의 여성들〉, 광목에 아크릴, 걸개그림, 500×300cm, 1987

뿌리와 줄기와 잎, 꽃과 씨앗의 어머니인 흙, 땅, 자연.
땅은 살아있는 자연의 숨 쉬는 유기체이다.
여자가 아기를 임신했을 때 여자의 몸은 자연의 리듬과 생명
의 질서에 따라
별과 행성과 달빛까지 포함하여 우주 에너지를 몸에 담아 아
기를 기르고 출산한다.
- 김인순, 『느린 걸음으로 - 김인순』, 2005년 도록에서


시월모임에서 ‘여미연’과 ‘둥지’로
1980년 10월에 창립전을 가진 소그룹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에 김건희, 노원희가 참여했으나 그들의 문제의식은 선언문에서 볼 수 있듯이 비판적 현실주의 미학에의 탐색으로서 네 개의 핵심의제인 ‘현실이란 무엇인가?’, ‘현실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 ‘발언이란 무엇인가?’, ‘발언의 방식은 어떤 것일까?’에 집중되어 있었다. 1982년에 결성하고 1983년 애오개소극장에서 창립예행전을 치룬 뒤, 1984년에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창립전을 가진 미술동인 ‘두렁’에는 이기연, 이연수, 오경화, 김우선, 성효숙, 이정임, 양은희, 정정엽, 박영은, 조선숙, 김혜정 등 많은 청년 여성작가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렁’이 주창하는 ‘산 미술’로서의 민중적 현실주의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선언문 「병든 미술에서 산 미술로」에서 “소비문화, 고급문화, 퇴폐·향락적 문화가 해외 선진자본과의 경제적 불평등 관계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것”과 “사회는 점점 인간 소외·계층적 불화·비인간적 질서로 병들어 가고 있”음을 지적했고, 그에 맞서는 ‘민중적 현실’의 변화를 추구했다.
‘현발’과 ‘두렁’에 참여했던 여성작가들과 달리 ‘시월모임’의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은 직접적으로 여성의 문제를 다뤘고 그 파장은 만만찮았다. 참여 작가들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 전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문제 담론을 촉발시켰다. 특히 대학의 학보사에도 실리는 등 여성학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신호탄이 되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보』에는 「여성의 왜곡된 모습을 고발하는 미술작품전-반에서 하나로」의 제목으로 글이 실렸다. 이 기사는 “여성의 사회적·문화적 현실고발을 과감하게 화폭에 담은 전시회”라고 소개하면서 “《半에서 하나로》라는 제목 아래 여성해방운동을 지향하면서 마련된 이번 작품전에는 ‘시월모임’ 회원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 씨의 작품 30여 점이 전시되었는데 이들은 〈손이 열 개라도〉와 같이 빈민층 여성에게 주어지는 과다역할을 지적하는 작품에서부터 성의 상품화를 고발하는 〈음모〉, 학사모를 쓴 여성이 신문을 읽는 남편의 발을 닦고 있는 모습을 그린 〈현모양처〉 등 여성의 왜곡된 모습을 폭로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특징”이라고 적고 있다. 그 외 기사가 실린 언론사 목록은 다음과 같다. 『동아일보』(1986.10.24), 『매일경제』(1986.10.24), 『조선일보』(1986.10.25), 『중앙일보』(1987.3.2), 『한성대학』(1986.10.30), 『외대학보』(1987.3.10).
그들은 1985년의 민족미술협의회(이하 ‘민미협’) 발기에 참여했고, 1986년에 《半에서 하나로》전을 끝낸 뒤에는 더 큰 여성미술의 확대를 위해 발전적 해체와 더불어 그해 12월 ‘민미협’ 내에 여성미술분과를 만들었다. 그들은 분과를 만들기 위해 젊은 여성작가들을 규합했는데, 여성미술을 지향하던 그룹 ‘터’ 동인의 작가들이 이에 동참했다. 당시 미술계에서는 ‘여류화가’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었을 뿐 ‘여성화가’니 ‘여성미술’이니 하는 것은 매우 생소했다. 그렇게 20대에서 40대 후반까지의 여성작가들이 모여 여성미술분과로 자를 잡게 되었고, 1987년 6월에는 분과 내에 ‘여성미술연구회’(이하‘여미연’)를, 그리고 그림패 ‘둥지’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참여 작가는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 정정엽, 문샘, 구선희, 김민희, 최경숙 등이고 1990년까지 김인순이 대표를 맡았다. 1990년에 미술평론가 유홍준과 ‘민미협’의 공동대표가 되었을 때 김인순은 ‘여미연’ 대표직을 수행하지 않을 바엔 공동대표직을 맡지 않겠다고 주장해 여성미술에 대한 그의 애정이 매우 컸음을 짐작케 한다.
『중앙일보』 1989년 3월 2일자 「여권신장 그림으로 표현한다」를 보면, 1987년 1월부터 여성미술분과의 회원 11명과 ‘그림마당·민’을 운영하던 민혜숙이 스터디 그룹을 결성하여 김진숙의 화실에서 매월 두 차례 정기모임을 갖고 여성문제를 연구하고 작업 방향에 대한 토의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여성미술분과는 연례기획전으로 1987년 9월 ‘그림마당·민’에서 제1회 《여성과 현실》전을 기획했다. 참여 작가는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 정정엽, 최경숙, 구선희, 문샘, 김선희, 김종례 등 총 38명이었다. 이 전시는 서울, 부산, 전주, 공주, 청주를 순회하면서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민혜숙은 1989년 9월 22일의 세 번째 전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지난 9월 22일 저녁 인사동의 ‘그림“지난 9월 22일 저녁 인사동의 ‘그림마당·민’에서는 신나는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올해로 세 번째가 되는 《여성과 현실》전인 「민족의 젖줄을 거머쥐고 이 땅을 지키는 여성이여!」라는 상당히 문학적인 제목의 전시회 개막일이었다. 마침 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 이우정)이 「평등한 삶의 새날을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주최하는 ’89한국여성대회도 그날 시작되어서 화랑 안에는 굵직한 여성운동가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그럴 듯하게 차려놓은 제사상을 향해 여성해방을 염원하는 남녀인사들의 절이 끝나고 몇 사람의 선창으로 여성해방가가 화랑을 꽉 메울 때 이제까지 고사상 앞에서 굿판의 진행을 맡아보던 결코 젊어 뵈지 만은 않은 여자가 연신 팔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결코 젊어 뵈지 않은 여자”가 바로 김인순이었다. 1994년까지 이어진 이 전시에 그는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참여했다. 이 전시는 그에게 늘 ‘신나는 굿판’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늘 그와 동료들의 활동이 ‘한판의 굿판’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2007년 미술사가 박계리와의 인터뷰에서 “80년대에도 그림 그릴 때 굿판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현실이 더 급하게 나한테 왔어요. (…) 손끝의 리듬을 타고 신명으로 춤을 추었어야 했는데, 그때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은 너무도 크고 급박했어요. 여유가 없었”다고 했고, 또 “80년대에는 붓질의 아름다움에 대해 주목하지 못했어요. 최근에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붓질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있습니다. 리듬을 타며 굿판을 벌입니다. (…) 이곳에서 벌써 10여 년째. 이제야 대상과 하나가 된 상태에서 리듬을 타며 굿판을 벌이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1985년 ‘시월모임’과 함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인순은 바로 그해 결성된 ‘민미협’에 참여함으로써 여성미술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마흔 다섯이었고 그 열정의 시간들은 ‘시월모임’(1985~1986)에서 여성미술분과(1986~1989)로, ‘여미연’과 그림패 ‘둥지’(1987~1990)로, ‘민미협’ 공동 대표(1990~1993)로 이어졌다. 그뿐 아니라 그는 1990년 2월 ‘민미협’ 산하에 노동미술위원회(이하 ‘노미위’)가 새로 발족되자 그는 여미연 회장에서 ‘노미위’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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