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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이미 부서졌지만 여전히 부서지기 쉬워 결코 부서질 수 없는 바닥의 함성

글 남웅

《권세정: 아그네스 부서지기 쉬운 바닥》 | 4.19~5.18 | 인사미술공간

권세정, 〈1/2 커뮤니티〉, 카페트, 가변크기, 이미지 제공: 인사미술공간

너무 가까이 있어 볼 수 없거나 날카로워 멀리하거나 망각하게 되는 이들이 있다. 해일 앞에 목숨 걸고 조개 줍는 이들로 축소되고 조리돌림 당하고 낙인찍히고 귀찮거나 피해야 하는 무언가가 되고야 마는 이들은 기실 안위와 평온의 이름을 뒤집어쓴 권력과 젠더 규범 아래 착취되고 부서지고 정화되어야 한다고 낙인찍힌 몸들이기도 하다. 문제를 직시한 당사자들은 익명성을 빌어 게토를 만들고 자신에게 통용되었던 타인의 문법을 그대로 반사시켜 낄낄대는가 하면 욕망을 발화하고 바닥의 일상으로부터 거시적 지배구조를 관통하는 집단의 함성으로 만들어낸다. 반복적으로 그들의 응시와 목소리는 불편하고 불온한 것으로 지목되지만, 가스라이팅(gaslighting)과 백래시(backlash)에 눌리고 부서져도 부서지고 눌린 채 끝까지 살아낸다.

사방에 강간과 추행과 폭력이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부터 돌출하는 발화와 욕망의 표현은 유독 날카롭고 민감하게 의미 부여되고 곧잘 무시된다. 고발의 용기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들이 평안하다 믿어왔던 일상의 청결함을 더럽히는 이가 고발의 발신자가 아닌 당신일 수 있음을 가리키기에. 하여 생존과 희생이 나눠지지 않는 불투명한 삶의 표상은 시야에 얼룩을 남긴다. 이들은 증발 가능한 소비재로 착취되고 부서지고 버려지기 쉽지만 누군가는 이들의 버려진 모습을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포착하고 얼룩으로 각인한다. 권세정 작가의 전시 《아그네스 부서지기 쉬운 바닥》은 ‘인형의 집’에 가둬지고 부서져 온, 부서진 채 밖으로 버려지거나 제발로 바닥을 부수고 나오거나 아예 부서진 바닥의 모습이 되어버린 여성들의 면면을 수집하고 가공한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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