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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참여하는 예술가를 위한 비평 모색

글 오정은

오늘날 예술가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참여예술인’, ‘퍼실리테이터 예술인’, ‘예술가 교사(TA)’, ‘생활예술매개자(FA)’, ‘청년예술단’, ‘유망예술가’, ‘차세대 예술가’, ‘신진예술가’, ‘전담 예술가’, ‘거리 예술가’ 등. 문화예술기관 및 지자체, 지역문화재단에서 예술가는 ‘참여자’로서 각 사업 특성에 따른 역할로 분화하며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시행하는 ‘2019년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퍼실리테이터 예술인으로 ‘참여’하는 경우, ‘참여기업·기관의 이슈를 진단하고 참여예술인의 예술적 역량 · 경험과 기업·기관을 매개하여 예술적 협업구조를 마련하고 프로젝트를 기획·운영 및 성과관리 등을 진행하는 예술인’으로 정의되며, 소통 능력과 인성, 성과 관리에 필요한 능력과 태도, 문제 대처 방식과 성실성 등의 항목을 경쟁 심의 받는다.1 창작가의 예술관보다는 기업의 이상적 인재상을 묘사한 명문 같이 보이지만, 기금사업 의존과 경쟁이 심화된 예술가의 현실을 비추는 일각일 뿐이다. 

예술가의 사회 참여는 예술을 사회적 생산물로 보는 사회학적 관점이나 문화이론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그리 낯설거나 정박된 개념이 아니다. 주지하듯, 80년대 민중미술과 90년대 포스트민중미술을 경유하며 노동자와 농민, 도시의 살갗에 파고든 예술가의 실천적 행위가 고리를 이어왔다. 전위적이고 비판적이던 현장의 ‘운동’은 공공미술 담론의 확장과 함께 점차적으로 국가 ‘정책’에 수용되기도 했다. 이는 문민정부의 탄생과 문화부 설립, 민선지방자치단체장의 등장, 그리고 대중사회로의 진입에 이르는 시대 이행을 그 배경으로 한다. 정치·경제는 예술을 빈번하게 호출했고, 따라서 주민 참여, 마을 만들기, 생활문화지원 사업과 예술의 성장 간에는 일련의 상보관계를 그릴 수 있다. 이는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은 아니나, 공공 의존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예술가가 맞을 본말전도의 상황을 예단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2019년, 작금의 현실은 경계해오던 추의 불균형을 피하지 못한 위기로 점철되고 있다. 사회참여적 예술의 주역이었던 예술가는 사회가 명목화한 사업에의 ‘참여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행정의 감식을 받는 입장으로 도치되었다. 특히, 흔들리는 배의 후미에 탑승해 내일을 전두할 부담을 진 청년세대에게 전해지는 요동은 가장 큰 진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 글은 이 같은 국면에서 비평이 취하고 있는 불감증을 짚으려는 시도다.

 

활발한 민원, 정체된 담론

지난 3월, 서울문화재단은 예술지원사업 정기공모의 선정 결과 발표를 예정보다 한 달 이상 미루기로 공지하면서 현장의 공분을 샀다. 지난해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에서 예술가가 작업 시간과 내용을 증빙하는 보고서 내용이 허위 기재되었거나 판명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약 200명에게 한 달 활동비가 미지급되어 논란이 인 바 있고, 그에 앞서서는 복지기금 선정이 접수 선착순으지난 3월, 서울문화재단은 예술지원사업 정기공모의 선정 결과 발표를 예정보다 한 달 이상 미루기로 공지하면서 현장의 공분을 샀다. 지난해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에서 예술가가 작업 시간과 내용을 증빙하는 보고서 내용이 허위 기재되었거나 판명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약 200명에게 한 달 활동비가 미지급되어 논란이 인 바 있고, 그에 앞서서는 복지기금 선정이 접수 선착순으로 된다고 해 지원자 다수가 일시에 몰려 전산이 마비된 경우도 있었다.2 사업 발표가 연기되거나 심의에 탈락하면서 예술가의 일 년 농사를 망치고 당장의 생계가 곤란하게 되었다는 진언이 빈번하게 들리는 동시대 항로에서 새로운 미술의 좌표는 어디에 찍을 수 있을까?

 

이 중에서 누군가는 청년 대표로 불러 나갔지만 대표자가 아닌 누군가는 그럴 기회조차 없이 유령이 되기도 했다. (…) 같은 작가의 전시를 대체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3

 

기성 대안체제와의 거리두기를 화두로 ‘신생’의 대표성을 획득한 누군가가 역으로 참여 경쟁의 불쏘시개가 된 증상은 소위 ‘사심없음의 전략’을 통해 생존하는 예술의 숨겨진 작동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느슨한 연대로 형성된 청년세대의 약동이 2016년 《서울바벨》4 등을 통해 ‘신생공간’이라는 하나의 전위적 표상으로 제도에 성급히 참여하게 되었다는 시각에 동의한다면, 이후 특별히 변화된 쟁점 없이 동어반복격인 ‘포스트 신생공간’의 움직임으로 일부 굿즈 시장 정도가 언급되는 비평의 현상 진단도 가능할 것이다. 비평의 좁은 시야는 단일한 담론을 복제하며 특정의 전형이 소비되는 결과를 피해 나가지 못한다. 이에 누군가는 전형의 소비재로서 세대를 열변하며 참여에 참여를 거듭하게 된다.

비평 역시 제도의 승인을 생사의 요건으로 둔 오늘날, 체제의 첨탑을 겨냥한 글쓰기란 꽤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지원사업이 예술의 심해에 뿌리내리고 피라미드로 서열화시킨 정황을 생략한 채, 순수예술의 도상 감별사로써 초대되는 직무에 응하는 것은 마땅하거나 가능한 일일까. 지금까지 말하는 비평은, 비단 비평가의 책무를 읍소하는 일이 아니다. 현 상황을 위기로 놓고 촉구해야 할 일을 짚어보는 것이며 우선, 예술이 사업과 제도에 결합되면서 소거되었던 바를 복기하려고 한다.

 

무명의 비평에게

지원기관은 예술 활동을 진지하게 비평하고 어떻게 후속지원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전문가를 요청해야 한다. (…) 그 가치를 매개할 줄 아는 평가와 환류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5

 

오늘날 예술가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예술가는 호명되는 ‘참여자’로서 지원기관의 특성을 의식해 작업하고 생업을 이어간다. 과거 미술사에서 후원자와 시장이 했던 주문과 평가, 보수 지급의 역할 상당량이 신자유주의 기관에 일임되었다. 그러나 기관의 평가란 예술의 미학적 가치와 현장의 비판 의식을 격려하는 데에 있기보다는 행정의 오점과 성과 달성의 유무 검증에 생리적인 목적을 두기 마련이다. 때문에 현장과 평행선을 달리는 제도에는 미학비평이 빠져있고, 제도를 기반으로 수행되는 현장에는 ‘○○사업 선정작’이라는 영예 이상의 제도비평이 누락되어 있다. 양분된 비평 논리, 부재하는 비평의 장(場)은 청년 개인의 다층적 서사에 인내를 갖고 주목하기보다 가변적인 움직임을 유형으로 포착해 시스템의 먹이로 포섭하는 현상을 낳았다. 자생을 도모할 수 있는다음의 대안은 무엇인가? 경쟁의 파고 속에 신음하는 미학적 주체와 과로하는 행정 직원을 매개하고 무너진 중심축을 바로 잡는 일, 신속 아닌 신중으로 신생의 좌표를 찍어나가는 일, 그리고 지난한 정치적 소동 속에 있었던 직업적 열패감의 잔불씨를 소등하는 일, 묵언의 관찰자로 무명이었던 비평에게,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혹자에게 지금의 과업을 전한다. 

 

 

 

1  「2019 예술인 파견지원-예술로(路) 사업」 퍼실리테이터 모집공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8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2017 창작준비금 3차 사업」에서 있었던 논란.

3  안대웅, 「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 2019.02.12. PERFORMANCE REVIEW (https://www.artscene.co.kr/1680)

4  《2016 SeMA Blue 서울 바벨》,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16.1.19~4.5.

5  백기영, 「관료주의적 지원의 범람, 익사하는 예술」, 『미술세계』, 2019.3. pp.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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