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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ART CRITIQUE&RESEARCH PROJECT

작은 매니페스토-수락과 거부

글 김정현

〈퍼포먼스 연대기〉(기획·연구: 김정현, 연출·무대미술: 송주호),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2017, 사진: popcon

사적인 전야제

어릴 적부터 언어의 마법에 매료되어 소설가들을, 그리고 차차 평론가와 시인들의 글쓰기를 동경하면서도 정작 스스로 그중 하나가 되어보려 하지 않았던 한 사람을 상상해 보자. 2015년 12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제1회 ‘SeMA-하나 평론상’ 시상식이 열리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감을 발표하던 순간에도 그는 자신이 비평가는커녕 평론가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미술계에 유독 많은 동명이인 사이에서 새로이 필명을 만들지 않고도 알아볼 만한 글쟁이가 되겠다는 시상식에 어울릴법한 포부를 긴장한 나머지 뒤엉킨 문장으로나마 희미하게 밝혔음에도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수상 이전에 미술에 관해 쓴 글은 미술사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년간 채 열 편이 되지 못했는데 그중 9할은 『계간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에 기고할 심산으로 삼 개월에 한 번씩 다가오는 마감을 손꼽아 기다리며 천천히 써 내려간 글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전혀 비평가의 자의식을 갖고 쓴 게 아니라는 점이며 한때 포스트 마르크시스트 문화연구자를 꿈꾸었다가 미술사에 발을 들였으나 주로 방법론에서 재미를 찾던 신진 연구자가 생존 작가의 작품이나 활동의 메커니즘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철저한 외부인의 시각에서 현장과 안락하게 거리를 둔 채로 또는 파편적인 경험의 기록을 위해 썼다는 사실이다.

소정이나마 원고료를 받는 드문 글쓰기의 기회는 전시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무기한 휴가를 즐기려는 소진된 정신에 재활의 기회가 되기도 하여 잔고가 허락하는 한 기꺼운 마음을 불러일으켰지만 수입 활동 없는 생활에 잔고는 어김없이 바닥을 드러내 보이게 마련이다. 밤낮으로 보초를 서듯 일하다 밤낮으로 무수히 많은 전시와 공연과 영화와 책을 들여다보며 방학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긴 휴가를 보내고 나서 조금 더 많은 글을 쓰고 더욱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치밀어 올랐던 시기에 한가한 일자리를 찾다 모집 기한이 한 달도 남지 않은 평론상 공고를 발견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상금이었다. 수중에 2천만 원이 생긴다면 한 2년은 그동안처럼 경제적으로 무책임하게 오직 관람자이자 독자로서 매일을 보내며 감상의 기록을 이런저런 문체에 실어보는 열정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비평이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에서 비롯되는 유희적 글쓰기라면 그토록 충실했던 때도 없을 것이다.

 

수상(受賞)하고 수상(殊常)한 경험

일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수상은 감지덕지했지만, 공동 수상으로 상금이 절반이 되었고 앞으로 이 년의 전망이 일 년의 전망으로 줄어들어 그는 주제넘게 시무룩해 있었다. 시상식 뒤풀이 자리에서 연륜 있는 평론가 선생이 돈과 유희적 태도의 중요성에 공감해준 일은 위로가 되었지만, 새해부터 시작될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과 위험성 어느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미숙한 젊은이에게 한 조언으로서는 아직 암시적으로 남아있었다. 2016년부터 글쓰기의 기회는 상금과 여유 시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다양한 지면의 원고 청탁으로 들어왔다. ‘등단’의 자연스러운 수순마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는 비평가로서의 희박한 자의식과 더불어 국내 미술글 독서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서 지면의 종류를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반성하거나 아쉬워할 틈도 없이 수상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 2016년부터 다양한 지면을 집중적으로 경험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제1회 SeMA-하나 평론상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2014년 이후 미술계 내 세대교체 담론 및 페미니즘의 부상과 더불어 만 30세에 성급히 등단한 신인 여성 비평가는 과분한 기대를 받았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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