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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ART CRITIQUE&RESEARCH PROJECT

리처드 세라와 버스터 키튼 사이: 다시, 근원적인 혼동과 분산 사이에서

글 곽영빈

리처드 세라, 〈조: 비틀어진 나선(Joe: Torqued Spiral)〉, 2000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한 것이 벌써 4년 전 일이 되었다는 걸 깨달은 건, 사실 얼마 전의 일이다. ‘1회,’ ‘최초’라는 표현이 주는 신선함 혹은 생경함이 다소 누그러진 만큼 기고문과 강연, 발표와 비평의 기회는 때론 벅차게 느껴질 만큼 늘어났고, 덕분에 지새워야했던 수많은 밤보다는 적지만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때론 내가 쓴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재미있는 분들을 만나게 된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그만큼 재미있진 않다 해도,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흥미롭다 생각해온 한두 가지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일단 호칭에서 시작해보자. 이제는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외부 강연이나 발표, 혹은 기고의 자리에서 요즘도 만나게 되는, 나를 규정하는 여러 가지 이름들 말이다. 그중 떠오르는 것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미술비평가,’ ‘영화비평가’, ‘영화학 박사’, ‘미디어 아트 비평가’, 그리고 (무려) ‘예술비평가.’ 이들 중 몇몇이 섞여 있을 때도 있는데, 일단 부분적으로 이는 내 책임(?)이다. ‘SeMA-하나 평론상’ 수상 이후, 공식적으로는 ‘미술비평가’로 활동해 왔지만, 못지않게 ‘공식적으로’ 나는 더들리 앤드류와 릭 알트만 같은 미국 영화이론학계의 1세대가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 매리앤 도운, 데이비드 보드웰 같은 대표적 영화 학자들을 배출한 산실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 영화와 비교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실지로 서울 아트시네마와 같은 ‘영화계’에서 강연을 자주 했고 ‘서울국제실험영화축제(EXiS)’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으며, 대학(원) 강의 역시 미대나 미술원은 물론 영화과와 영상원,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학과에서 동시에 한 경우가 많다. 이는 미국에서만 5년을 가르친 영화사와 영화이론/비평사를 포함,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즈 야스지로, 알프레드 히치콕에 대한 수업과 함께 현대사진이론과 예술사회학을 가르쳐 왔다는 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미디어와 아트, 디지털, 미학이라는 단어들이 순서와 자리만 바꾸는 일련의 세미나를 거의 매학기 가르쳐왔다는 말이기도 하다.1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는, 내 책임만은 아니다.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Twelve Years a Slave)〉(2013)과 〈헝거(Hunger)〉(2008)를 논의하면서, 이 영화들의 감독이기 이전에 영국 최고의 미술상으로 간주되는 터너 상(Turner Prize) 수상자였던 그의 〈카리브들의 도약/웨스턴 딥(Caribs’ Leap/Western Deep)〉(2002)을 언급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혹은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 논의의 대표적 사례로 간주되는 〈기울어진 호(Tilted Arc)〉(1981)의 작가 리처드 세라와 그의 육중한 ‘쇳조각’들이 지난 50여 년간 다종다기한 방식으로 변주해온 대담하고 때로는 위태로워 보이는 기울기가, 자코메티나 브랑쿠시, 또는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이나 한스 샤룬과 같은 미술/건축/조각사적 참조점 이전에, 실은 〈스팀보트 빌 주니어(Steamboat Bill Jr.)〉(1928)와 같은 영화에서 버스터 키튼이 강풍에 맞서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유지하던 아크로바틱한 신체의 (불)균형과 닮아있다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단, 세라의 작업실 조수로 일하며 그에게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 세계를 처음으로 소개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작곡가 필립 글래스였다는 사실을 이 ‘조각가’의 독특한 전기적 일화 정도로 괄호 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때 우리는 〈버스터 키튼을 위해 주조된 두 개의 둥근 조각(Two Forged Rounds for Buster Keaton)〉(1991)이라는 세라의 또 다른 쇳조각 작업은 물론, 화면 위에서 떨어지는 납덩이를 잡으려 끊임없이 애쓰는 손을 보여주는 그의 단순하고도 난해한 영상작업 〈납을 잡는 손(Hand Catching Lead)〉(1968)이, 실은 키튼 못지않게 위태로운 평형을 “잡거나 못 잡”는 이항대립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선 네 개의 육중한 철판 구조물인 〈1톤짜리 지지대(카드로 만든 집)[One Ton Prop(House of Cards)]〉(1969)에 대한 (미니멀한) 설명이라는 것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2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45분짜리 줌’으로 요약되는 실험영화사의 대표작인 〈파장(Wavelength)〉(1967)의 감독으로(만) 기억되곤 하는 마이클 스노우가 사실 젊은 시절부터 피아노와 드럼, 신시사이저와 퍼커션을 연주하며 실험음악과 프리재즈를 가로지르던 뮤지션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라디오 안테나를 조정할 때 수신되는 다양한 채널의 음악과 소리, 노이즈를 약 39분간 테이프로 녹음한 그의 사운드 작업인 〈짧은 파장(Short Wavelength)〉(1980)에 대한 이해를 보다 내재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상 이러한 설명들은, 대개 ‘해당 분야 이외의 영역에 대한 교양이 많을수록 논의는 풍성해질 것’이라거나 ‘(순수) 미술 바깥에도 시야와 마음을 여는 자유로운 영혼’의 지표로 오해되곤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몇 년 전 한글로 꼼꼼히 번역된 데이비드 조슬릿의 『Feedback : Television against Democracy』(2007)를 예로 들어보자. 『피드백, 노이즈, 바이러스: 백남준, 앤디 워홀 그리고 이미지 정치에 관하여』(2016)라는 제목으로 의역된 이 책을, 나는 그 사이 몇몇 대학원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은 바 있는데,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경우 너무나 전통적인 의미의 ‘미술사’ 서적으로 환원되는 상황을 자주 목도하곤 했다.

 


1 공간과 지면의 한계상, 아래에서는 예를 들어 박사 논문의 한 챕터를 차지한 소설가 김훈의 작품에 대한 40여 쪽의 분석이나 소설가 정지돈과 김태용의 소설에 대해 청탁을 받아 발표했던 작가론들은 물론, 보르헤스 소설과 영화의 관계를 논했던 외부강연들에 대한 논의, 더불어 유학 전에 몸 담았던 음악 작업의 계보가 당대의 미술 및 오디오 비주얼 작업 일반에 갖는 함의에 대한 논의는 제외했다.

2 할 포스터, 『콤플렉스』, 김정혜 옮김, 현실문화, 2014, p.342.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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