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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꼭지점으로부터 여덟 씨앗들

글 박정인

박정인, 〈Untitled(windscreen wiper)〉, 종이에 연필, 120×160cm, 2019

0.

하루는 순간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종종 그것들을 엮고 있는 풍경의 접점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곤 어딘가에 붙잡아두려고 해. 연필의 끝에서, 종이의 끝에서, 가위의 끝에서, 그림자의 끝에서. 공간에 대체로 정지해 있는 사물들의 구획과 외곽 끝에서.

 

1.

가시거리로부터 익숙한 나머지 좀처럼 단숨에 얼려질 수 없거나, 눈에 담기지 않는 잔상들이 망막 너머로 맺혀지면, 어떤 호흡으로 그것들을 다시 담아볼 수 있을까. 시간을 들여 호흡을 고르면 선명해지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

 

2.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거나, 너무 짙거나, 너무 옅음의 정도. 그것들을 이 시간과 화면의 축 위로 올려볼 수 있을까. 빈 그림의 충분한 여지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면서도 형상에 다다를 듯 살짝 얼려질 수 있길 바랐어. 미세하게 약동하는 그림자만큼. 음영의 세계로 가득해 보이는 흑백 영화의 영상처럼.

 

3.

꽤 오랫동안 연필을 손에 쥐고 있었어. 연필을 가늘게 썼다면, 그건 쓰기의 영역에서 멀지 않고, 연필의 흑연을 넓게 폈다면, 면이 되기 전에 종이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멀지 않아.

 

4.

그림자 언어를 빌려 색의 영역에서 벗어난 명도와 완전한 검은 빛깔에 다다르지 않는 연필 끝의 흑연은 어디에 필적할 수 있을까.

 

5.

그림자가 망막에 촉각적으로 닿는 순간들이 있어. 그림자 상을 그림의 구획에 봉인하기 위해, 흑연의 입자로 그림자를 떠낼 때면, 형상에 다다르지 못한 면과 그림자의 얼룩들에 눈이 시려와. 하지만 가깝고도 먼 그 상들을 그림에 담아내게 되었을 때, 그림에도 지속시간이라는 게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해.

 

6.

그 모습이 얼핏 안개와도 같대.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안개가 드리워지면, 비로소 흑연의 입자가, 공기의 입자로 다가오게 될까. 안개가 짙게 낄 때면 대기를 가로질러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경로를 좀 더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건 우연일까.

 

7.

그림자 그림을 통해 주변 그림자들까지도 시야에 끌어오게 된다면, 그림자만 남은 찰나의 풍경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색에 익숙한 시야에서 그림자의 영상만이 남을 수 있다면, 시간의 모양은 조형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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