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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낭만 결핍증, 어떤 아름다움

글 이한범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리프로스펙티브(REPROSPECTIVE)》 | 성곡미술관 | 5.22–6.30

※ 제공된 사진들은 (사)서울특별시미술관협의회에서 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라자러스 롱(Lazarus long)〉, 청바지, 부츠, 금속, 유리, 시멘트, 45×40×160cm, 2012

1998년 DV 카메라로 촬영한 인터뷰 영상에서 그레고리 마스(Gregory Maass)가 故 박이소 작가에게 던진 첫 질문은 근래의 ‘성공’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성공’은 물론 보다 업적인 경력에 대한 농담 같은 것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박이소는 “낭만(romance)”에 있어서는 성공적이었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비엔날레를 위해 방문한 대만에서 서로에 호감이 일었던 여인과의 짧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어서 그레고리 마스는 질문한다. “당신은 낭만적인가?” 박이소는 대답한다. “낭만적이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으면 낭만적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낭만적이지 않다. 나는 나 스스로를 계속해서 낭만적인 상황 속에 있도록 만든다.” 인터뷰 가장 앞부분의 이 기묘한 대화는 유독 내게 오랫동안 꺼끌꺼끌한 것으로 남아 있는데, 성공과 낭만이라는 동문서답으로 인해 언뜻 진부해 보이는 예술과 낭만의 관계를 새삼스러운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낭만은 통속적인 드라마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맥락을 암시하고 있는 듯했다. 의식적으로라도 힘을 써서 자기 자신이 놓여 있어야 할, 혹은 성취해야 할 어떤 상태나 상황, 조건들. 그리고 나는 그 다른 맥락이란 것이 특정한 시공간적 조건 속에서 등장한 특정한 예술 실천이 추구하는 매우 한정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가치는 서로 다른 작가들에 의해 서로 다른 형상으로 등장하지만 한시적인 우정의 근원이기도 할 것이다. 즉 그것은 당대의 사회와 문화, 경제 구조라는 외적 조건과 그에 응대하는 예술적 주체들, 그들의 마음과 미학, 스스로에 대한 배치를 모두 함축한다. 《리프로스펙티브》의 두 번째 전시장의 제목이 ‘낭만 결핍증’인 것도 우연은 아닐지 모른다.

 

성곡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유사 - 회고전 《리프로스펙티브》는 지난 2004년 결성 이후 제작한 수많은 작품들 중 몇몇을 선별해, 마찬가지로 그들의 지난 전시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네 전시장(‘무아 자기도취’, ‘낭만 결핍증’, ‘시스템의 목적은 그 시스템이 하는 일’, ‘무감각의 미’)에 나누어 놓은 작업이다. 집의 미니어처와 분자 구조 모형이 나란히 놓인 〈부동산〉(2012-2019)이나, 도라에몽과 친구들 인형, 신라 시대 토기 복제본 등의 모형이 기울어진 좌대 위에서 다시 수평을 맞춰 서 있는 〈네가 알아내라〉(2012-2019) 같은 경우 작업을 구성했던 요소가 바뀌며 새로이 갱신되었다. 각각의 전시장은 양가적인 상태의 중첩과 충돌, 하위문화 양식의 변용, 체계에 대한 관심과 그에 대한사적인 수행, 미술의 역사에 대한 당대적 코멘트 등의 주제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작업들로 직조되어 미술이라는 것의 근본적인 기능을 강조한다. 이것은 미술제도로부터 주변적인 사물과 언어, 문화의 요소를 재배치함으로써 사물의 다른 역학을 위한 장(場)을 구성하고 세계에 대한 개념과 인식, 행동의 방식을 조정하려는 작가의 방법론이 자기 자신의 역사를 대상으로 삼은 위트이자 자기 자신의 픽션 만들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프로스펙티브》를 유사-회고전이라고 한 것에는, 작가의 작업 방법론에 비추어 봤을 때 지난 작업을 재사용하는 것이 회고적인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새로운 서사를 구성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전 작업들을 다시 전시 공간으로 불러들여 재배치하는 것의 의도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만화 작가 데즈카 오사무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서 개별 작품을 널뛰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예로 들며 “그 인물들은 작가와 작품 전체와 동고동락하며 관객과의 유대를 만드는 독특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작업 전체는 작품 단위의 사건을 가로지르는 일종의 영화적 공간에 가까우며 매번의 편집과 연출을 통해 새로운 서사를 구성한다.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많은 작품을 생산하는 그들의 작업 방식은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를 노마드처럼 이동하며 작업하는 삶의 양태 속에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기도 하지만, 서사의 재생산을 위한 요소들의 저장소 구축에 있어서 필연적인 충동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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