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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예술로 실패하기

글 유혜인

류현민, 〈바람이 불어오면…〉, 매트지에 안료, 100×150cm, 2019

《류현민: 바람이 불어오면…》 | 4.30~8.11 | 포항시립미술관

이미지 제공 포항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2018년 장두건미술상 수상 작가 류현민의 작업에는 실없는 농담, 그리고 그와 모순을 이루는 듯한 미묘한 낭만성이 담겨있다. 전시 팸플릿 표지엔 작가의 신작 사진이 실려있다. 흐릿한 벚나무들이 배경을 이루고 눈을 감은 한 여인의 옆모습이 보인다. 벚꽃 잎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함께 바람에 흩날린다. 전시 제목이 서정적이다. 《바람이 불어오면…》 반으로 접힌 팸플릿을 펼치자 뒷면에 숨겨진 바람의 실체가 드러난다. 삐죽이 프레임을 뚫고 등장한 누군가의 손에는 분홍색 휴대용 선풍기가 들려있다.

전시실 하나를 가득 채운 신작은 11개의 선풍기다. 서로 다른모양의 선풍기들에는 번호가 붙어 있고, 7번 선풍기가 유일하게 작동 중이다. 벽에는 번호 별로 설명문이 붙어 있다. “선풍기 1: 작가는 잠을 자고 있다. 선풍기 2: 작가는 걷거나 달리고 있다. 선풍기 3: 작가는 배변, 배뇨활동을 하고 있다. 선풍기 4: 작가는 성행위 혹은 그 유사행위를 하고 있다. 선풍기 5: 작가는 식사를 하고 있다. 선풍기 6: 작가는 씻고 있다. 선풍기 7: 작가는 돈벌이를 하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사물인터넷(IoT) 기능이 장착된 선풍기를 통해 수면, 섭취, 배설 등 자신의 몸이 행하는 물리적인 활동을 실시간으로 보고한다. 선풍기 바람이 피부에 와닿듯, 전시실 바깥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가의 사적 일상은 연상을 통해 보는 이에게 접촉해온다. 11대의 선풍기 중 ‘문화적’ 혹은 ‘예술적’이라 일컬어지는 활동을 지시하는 것은 단 3대뿐이다. “선풍기 9: 작가는 독서를 하고 있다. 선풍기 10: 작가는 인생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선풍기 11: 작가는 전시장에 있다.” 작가는 예술작품을 매개로 연상되는 예술가라는 신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통과해 온 오늘날에도 끈끈히 붙어있는 그 신화를 떼어내려 자꾸만 관객의 의식을 전시장 바깥으로, 비루한 삶의 공간으로 이끈다.

류현민, 〈바람이 불어오면…〉, 11대의 선풍기 설치, 가변 설치, 2019

맞은편 전시실 모서리에는 가지런히 개어 쌓아올린 색색의 낡은 수건들이 조명을 받고 있다. 언뜻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사탕더미를, 혹은 솔 르윗(Sol Lewitt)의 적층된 색채 드로잉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작가는 이 수건 더미에 그리움의 은유라든가, 수열적 반복의 조형성 같은 것들을 투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 라벨에 쓰인 제목 “집에서 가져온 모든 수건”은 곧장 작품에 달라붙은 갖가지 ‘미술적’ 연상들을 훅 불어 날려버린다. 그리곤 일언반구 없이 집에서 쓰던 수건들을 모조리 가지고 온탓에 작가의 가족들이 겪는 불편에 관해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화이트큐브로 대변되는 미술제도에 대한 작가의 비평적 관심은 2014년 《대구현대미술제》 당시 기록한 사진 한 점에 선명히 드러난다. 흰색 합판으로 제작된 영어 문장 “ARTWORKS WERE HERE”이 잔디가 깔린 축제 현장의 풍경, 거꾸로 보이는 풍경을 점유한다. 이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술행사, 전시, 축제들. 숨 가쁘게 탄생하고 또 사라지고 마는 이벤트의 향연 뒤에 남아 역사화되는 예술 작품, ‘기록’의 형태로 남아 영속성을 획득하는 예술의 운명에 관한, 그리고 제도와 문화라는 불가항력적인 조건들에 관한 진술이다. 사진, 도록, 뉴스 기사로 남아 박제가 될 예술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다고, 종국에는 역사가 될 예술의 허무를 “예술작품이 여기에 있었다.”라는 자기 지시적 기호로 선제 표명한 것이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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