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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ESSAY

어디에나, 어디에도

글 민유정

민유정, 〈그날 밤의 불꽃 #1〉, 캔버스에 유채, 35×32cm, 2012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면서 범람하는 이미지에 대한 시각적인 경험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시간과 거리를 초월하여 전달되는 수많은 이미지들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지만, 순간순간 단순히 구경꾼의 입장에서 스쳐가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작업에서 주된 소재로 삼는 것은 매체를 통하여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재난이나 사고, 폭력의 장면들이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일수록 그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훨씬 온전하게 볼 수 있다는 수잔 손택(Susan Sontag)의 말처럼, 인터넷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고통은 윤리적 죄책감이나 감정적 이입에서 벗어나서 바라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전쟁이나 자연 재해, 대규모의 사건·사고들은 화면 속 작은 프레임 안에 존재한다. 재난을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미지들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사실상 그 이미지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의 장면임과 동시에 나에게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혹은 도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하는 어떤 것이다. (설령 그 믿음이 부질없는 것일지라도) 사건 자체는 여러 사정이 얽혀있어 복잡한 층위를 가지고 있지만, 이와 관련된 이미지들은 이러한 구분을 마비시키며 단편적인 순간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은 일상 속에서 잠깐의 흥미를 끌지만 또 이내 스쳐가게 된다.

나는 이런 찰나의 흥미 이후의 무기력한 잔상을 화면에 남긴다. 수집한 이미지들을 형상이나 사고 형태의 유사성에 따라 홍수, 폭발, 비행기 추락 등 큰 주제로 분류한다. 그림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이미지의 사진적 형태를 따라가면서도,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을 만한 특징들은 제거한다. 거대한 사건의 장면들은 비슷비슷한 이미지들과 묶이면서 각각의 이야기들은 휘발되고, 서로 유사해 보이면서 동시에 파편적인 그림이 된다. 작업에서 보여지는 멀리서 조망한 구도, 작은 캔버스에 단순하게 그려진 형상들, 파스텔톤의 색조 등은 담담한 풍경화처럼 이미지를 더욱 서정적이고 관조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나아가 이미지 너머의 현실이 은폐된 모호한 작은 그림 앞에서 관객은 공모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민유정(b.1986) 작가는 서울대학교 서양화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재난의 장면들을 관조적인 풍경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개인전 《어디에나, 어디에도》(공근혜 갤러리, 2012), 《멀고, 낯선》(서울대학교 우석홀, 2010)을 비롯하여 《재난》(서울대학교 미술관, 2019), 《The Recycling Plant》(신한갤러리 역삼, 2013), 《언어놀이》(성곡미술관, 2010)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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