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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미, 여기와 저기의 경계를 허물다

글 김정현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안은미 작가 ©김흥규

무용가이자 안무가 안은미의 첫 미술관 개인전 《안은미래》(6.26~9.29)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을 무대로 펼쳐졌다. 특히 올해는 데뷔 30주년을 맞이하는 해라는 점에서 전시의 의미를 더했다. 그간 선보여온 작품들을 아카이브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한 회화,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무대를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전시가 열리는 3개월 동안 ‘몸춤’, ‘눈춤’, ‘입춤’ 등으로 구성된 퍼포먼스와 강연 프로그램 〈안은미야〉를 통해 관객의 참여를 적극 도모한다. 《안은미래》는 과연 포스트-화이트 큐브 뮤지엄 시대에 부합하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까? 미술관에서의 퍼포먼스, 관객과 미술관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퍼포먼스는 가능한 것일까?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안은미의 작업을 살펴본 김정현 필자의 글과 인터뷰를 통해 독자 스스로의 답변을 찾아가보자. 지면 한계상 인터뷰 현장에서의 흥미진진했던 분위기가 아쉽게도 다 담기지 못했으나,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자신의 예술 철학을 밝히는 안은미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안은미, 테크노 샤먼 여왕과 커뮤니티 팬(fan) 타자

전시의 메인 무대인 〈이승/저승〉 뒤에는 이진원 영상감독의 2채널 비디오 작업 〈대/심〉이 상영되고 있다

김정현 미술비평가

현재의 문화적 지형에서
한 편의 공연으로서의 전시란 어떤 것일지 종종 상상한다. 혼자만의 발상은 아니고 그간 교류해온 공연예술가, 주로 젊은 안무가들과의 대화 중에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약 한두 시간 남짓한 공연의 단편적인 시간성에 비해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지속하는 전시의 시간성은 공연의 개념을 재고해보는 계기가 될 만하다. 약 3개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는 안무가 안은미의 데뷔 30주년 기념전 《안은미래》의 전시 기간이 그렇다. 안은미는 전시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는 3개월을 할 수 있지만, 극장에서 공연은 절대 3개월간 못한다.”고 언급했다. 전시 형식을 빌려 그는 전시장을 댄스홀로 차려놓고 댄스 레슨과 강연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한 편의 기념 공연 대신 관객을 위한 무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전시장을 연습실과 강의실로 삼는다. 공연예술가들이 공연장이 아닌 곳, 전시장 등지를 점거하는 작업은 이제 그리 드물지 않고, 점거 행위의 콘셉트로 따진다면 그보다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다. 결국 《안은미래》전에서 가장 관심 가질 만한 것은 전시의 형식이나 세부 프로그램보다, 국내 국공립미술관 최초의 안무가로서 개인전을 가지게 된 안은미라는 인물의 문화적 의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안은미의 30년을 골고루 따져보는 일은 이 글의 관심이 아니다. 안은미의 1988년 첫 개인 작품 발표부터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까지 연대별로 구분하여 작업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 미술관 큐레이터 대신 임근준 평론가가 쓴(필자 명을 이정우라고 표기한) 전시 서문을 참조하면 되겠다. 또한 전시에 맞춰 현실문화 출판사에서 안은미 연구서를 발간하여, 안은미의 지난 이력을 꼼꼼히 기록하고 비평하는 글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풍부한 정보가 이미 제공되었다는 전제하에, 이 글은 한국 또는 서울에서, 현대미술 또는 미술 제도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맥락에서 안은미의 작업을 돌아보며 유효한 질문과 답변을 찾아보고자 한다.

유토피아 부조리극
주로 극장에서 활동해온 안무가 안은미의 작업이 현재 한국의 미술/관에서도 유효한 질문으로 떠오른 시점은 2011년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부터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안은미컴퍼니는 한국의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주친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고 즉석에서 춤 잔치를 벌였다. 이어서 2012년에는 특목고 학생들과 함께 〈사심없는 땐스〉, 2013년 중년 남성 즉 ‘아저씨’들과 함께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를 만들어 땐스 3부작을 완성했다. (모두 두산아트센터 상주단체 공연으로 연강홀에서 열렸다.) 이후 ‘땐스 3부작’ 중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지역문화재단의 유치를 받아 〈안은미의 땐씽마마 프로젝트〉(2011-2012)로 계속되었으며, 2013년 아름다운가게 10주년 기념공연으로 한부모 여성 가장들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당신을 위한 아름다운 땐쓰〉, 2016년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한 〈안심(安心)땐스〉, 2017년 저신장 장애인과 함께 만든 〈대심땐스〉(2017) 등 유사한 작업 관심을 지속해왔다. 안은미와 안은미컴퍼니가 지난 30년간 발표한 100여 편 이상의 크고 작은 공연의 초연 작품 목록을 주의해서 살펴보면, 90년대에는 ‘무덤’이나 ‘달’의 이미지가 들어간 제목이 많고, 2000년대에는 ‘please’나 ‘let′s’와 같은 제청형의 시리즈가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러한 제청형은 문학적인 표현일 뿐, 작품 제작 방식의 실질적인 측면에 의미 있게 관련되는 건 아니었다. 011년 이전과 이후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이러한 변화, 즉 2011년 이후에 비전문 무용수가 무대에 서게 되었을 뿐 아니라 공연의 말미에 관객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서 춤판을 벌이는 형식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Interview
안은미 작가

인터뷰 장서윤 기자

안은미래》 오프닝에는 안은미 작가가 직접 퍼포먼스를 선보여 많은 관람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장소로 서울시립미술관을 택하신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간 서 오셨던 극장이나 공연장이 아닌 미술관을 무대로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간의 작업을 아카이브하기 위한 공간은 미술관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카이브를 가지고 뭔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기도 했고요. 그동안 제가 무대 작품은 많이 해왔지만 미술관 한 층을 전부 사용해서 무대를 만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이제 참여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 보려고요(웃음). 저는 장르의 틀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샘플이 되고 싶어요. 이제는 장르의 구분과 경계가 없어지는 시대인데, 여전히 그런 관념과 경계의 잣대를 적용하다보니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노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인터넷이 과연 인간의 몸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대한 질문은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그냥 소비되고 사라져 버려요, 바람처럼.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경계가 없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미술만, 혹은 무용만 했던 사람들은 그 분야에 대한 관념이 있어서 이런 시도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그런 관념에 대해 별로 상관하지 않았어요. 50대까지는 내 돈으로 놀겠다가 목표였으니까요. 내 돈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가 없었어요. 몸을 자유롭게 해야 돼요. 그리고 몸에 때가 묻지 않은, 그래서 이상한 포효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쯤 나와야 하고요. 보통 젊었을 때 성공한 작가는 그대로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50대에 이르러 내려오게 돼요. 저는 반대로 가려는 겁니다. 50대에 첫 걸음을 떼서 신인이 된 다음에 그때서부터 세상을 점령하는 거죠(일동 웃음). 제 인생 프로젝트는 이제 ‘퓨어’한 애기동자에요(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미술관에서 전시를 풀어내는 방식과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방식은 다르잖아요. 그렇기에 이번 전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미술관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미술관 측과 조율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알아서 하도록 미술관에서 맡겨 주셨어요. 저를 믿으시니까요. 그래서인지 함께 한 전소록 큐레이터 뿐만아니라 유은순, 장해림 코디네이터, 박수지 큐레이터와 함께 조직적으로 전시를 꾸려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담당자인 한희진 큐레이터도 매일 전시장을 찾아와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다만, 제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전시를 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김동희 작가가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실현 가능한 예산을 체크해주었고요. 저는 제가 밤이고 낮이고 쏟아내는 아이디어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오히려 너무 아이디어가 많아서 김동희 작가가 그만 하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예산에 맞게 합리적으로 전시 아이디어를 다듬어갔지만, 한편으로 저는 예산에 별로 구애받지 않기도 합니다. 미술관에서 주신 예산은 고맙게 받고, 더 좋은 전시를 위해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은 스폰서가 있든 말든 제가 채우면 돼요. 그런 각오로 시작하면 돈을 기꺼이 빌려주는 사람들도 생기고, 공연으로 돈을 벌면 그때 갚아 나가죠. 그래서 저의 경영 철학은, 돈을 물 쓰듯 써라(일동 웃음). 돈에 구애받으면 정말 하고 싶은 작업을 못하니까요. 이번 전시도 명성미디어와 조명제이텍코리아, 사야문화재단의 협조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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