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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근, 한국 근현대 미술에 다양성을 더하다

글 백지홍

천병근, 〈한라산〉, 캔버스에 유채, 44×59.5cm, 1978

이미지 제공 천병근유작전추진위원회

천병근(1928~1987) 작가의 32주기를 기념하는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천병근 1928~1987》(조선일보미술관, 6.5~6.17)과 《천병근: 제주, 40년 만의 재회》(소암기념관, 6.22~8.11)로 이어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오광수 뮤지엄 산 관장이 새롭게 평론을 작성하였으며, 조선일보미술관 전시의 개막식이 개최되는 6월 5일에는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세미나 ‘천병근의 생애와 예술’이 진행되어 서성록 안동대학교 교수와 이애선 독립큐레이터의 발표가 이어졌다. 전시 이후에는 김복기 평론가가 아카이브 정리를 진행하여 화집을 발간할 예정이니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작가 천병근은 이제 잊혀진 작가에서 벗어나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천병근 작가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살펴볼 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근대성을 구성하는 대표 요소들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의 기독교인이자 항일 인사인 천세광(1904~1964) 성결교회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에게 기독교와 민족주의는 평생을 함께한 중요한 가치였다. 삼천포 일출진상소학교 졸업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일본 유학을 떠난 그는 1940년부터 1946년까지의 도쿄 생활 동안 유럽 근대 미술사조를 압축적으로 수용했으며, 1947년 귀국 이후에는 교직활동을 시작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다양한 형식을 넘나들면서도 기독교 정신과 향토성을 추구했다는 점은 그의 작업 전반에 공통되는 특징이다. 오광수 관장은 「꿈과 현실의 교향곡」에서 작가의 이러한 특징에 대해 “기독교적인 주제와 민속적인 정서가 때때로 융화되어 나오는 독특한 내면은 기독교가 외래적인 종교가 아니라 이미 토착화되었음을 시사해주는 경이로운 해석”이라고 평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특정 양식에 천착하기보다는 유학 시기 공부했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미술 사조를 넘나들며 작품을 제작했고, 이 작품들을 발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와 같은 이른바 주류의 흐름과 무관하게 활동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병근은 앵포르멜이나 단색화 등의 추상화 흐름과 1970년대 말부터 활기를 띤 민중미술 운동에서 벗어난 독특한 구상회화를 제작해왔다. 그러나 무에서 유가 생할 수는 없는 법. 천병근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도 앞서 살펴본 당대 한국 미술계를 둘러싼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었다. 본문에서는 천병근 작가가 품은 면모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기독교 미술가로서의 면모다.

천병근, 〈자애〉, 캔버스에 유채, 193.5×130cm, 195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기독교인으로서의 미술가
천병근의 사후 첫 번째로 개최되는 회고전의 개막식에서 서성록은 「천병근, 예술적 감각과 영적 감각의 총화」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한국 초기 기독교 미술사에서 천병근 작가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렇듯 천병근 작가를 논할 때 종교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해방되었으니 조국으로 돌아와 일하라는 아버지의 전언에 도쿄에서 미술 공부를 하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천병근 작가는 아버지의 목회지인 목포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였으니,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종교 관념이 그의 삶에 얼마나 주요한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퇴임까지 3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교직 생활에 충실히 임한 성실한 교사였던 것 이상으로 열정적인 화가였고 독실한 신자였던 그는 평생에 걸친 작업에서 기독교적 의미를 빼놓는 일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천병근 작가의 화업을 논할 때 가장 이른 시기 작품으로 언급되는 것은 〈기독의용사〉다. 6.25전쟁의 비극이 시작된 1950년, 부산 미국문화원에서 개최한 《문총종군미전》(미국문화원, 9.7~9.9)에 출품한 〈기독의용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의 상황과 기독교 정신을 결합한 작품으로 미국대사관에서 구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어 1951년에는 《3.1절 기념미술전》에 〈세례〉를, 《8.15 기념미전》에 〈어린 양〉을 출품하였으며, 1952년 《8.15 기념미전》에는 〈이사야서의 권위〉를 출품하며 기독교 정신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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