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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UNG ART 1979~1994

1987년, 걸개그림

글 김종길

최병수 주필과 문명미, 김경고, 김태경, 이소연이 공동제작한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1,000×750cm, 1987 1989년 6월 9일 이한열 열사 3주기 추모집회를 위해 연세대 대강당 외벽에 설치되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 2학년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의 동료 이종창이 피 흘리는 그를 부축하자 당시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은 그 장면을 촬영했고, 다음날 언론은 그 사진을 머리기사로 타전했다. 일용직 노동자로 살다가 1986년 정릉벽화사건에 연루되어서 경찰조사를 받던 중 졸지에 ‘국가공인’ 화가가 돼 버린 최병수는 그렇게 신문에 실린 이한열을 판화로 새겼다. 그러나 작은 판화로는 그 사건이 촉발한 6·10항쟁의 민주화 물결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는 이한열이 활동했던 ‘만화사랑’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그 장면을 다시 거대한 걸개그림으로 창조했다. 1980년대 초반 미술동인 ‘두렁’이 실험하고 탄생시킨 걸개그림은 최병수에 의해 광장의 미술로, 혁명의 미술로 재탄생되었다.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민중미술이 소집단 미술운동에서 변혁의 미술로 탈바꿈하게 된 상징적 작품이다.
1969년 ‘현실동인’은 4.19혁명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하다 대학과 정보당국에 의해 불발되자 「현실동인 제1선언문」을 남겼다.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며, 참된 예술은 생동하는 현실의 구체적인 반영태로서 결실되고, 모순에 찬 현실의 도전을 맞받아 대결하는 탄력성 있는 응전 능력에 의해서만 수확되는 열매라고 주창했던 그들의 ‘현실주의 미학’ 선언문은 10년 뒤인 1979년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이하 ‘광자협’),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의 결성에 하나의 자극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신군부의 무참한 학살극인 광주 5.18민주항쟁은 그런 현실주의 미학이 미술계 내부를 뒤흔들면서 넓게 확장하는 뜨거운 사건이 되었다. ‘광자협’은 남평 드들강변에서 제의의 진혼굿으로 창립전을 대신했고, ‘현발’은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운영위원들에 의해 전시가 취소되자 촛불을 켠채 개막일을 밝혔다. 1982년에는 ‘지금 여기, 이 땅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이하 ‘임술년’)라는 그룹이 떴고, 애오개소극장에서 미술동인 ‘두렁’이 결성되었다. ‘임술년’ 작가들은 사회 현실의 문제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의제화한 회화 작업들을 200호 크기의 대작으로 선보였고, ‘두렁’은 서구미학을 내려놓고 전통연희와 민화 그리고 불화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았다.
그랬다. 민중미술사의 서막은 유신의 70년대를, 서구미학으로 점철된 근대 미술사를 뛰어넘기 위한 스스로의 자각이었고 몸부림이었으며, 시대정신의 표출이었다. 작가들은 사회와 대중문화 전반의 시각언어를 문제 삼기 시작했고 그동안 잊었던 판화, 민화, 만화, 불화, 벽화, 걸개그림, 생활미술, 그림슬라이드 등의 형식을 실험하고, 노동·여성·민족·민중·해방·교육 등의 문제를 첨예하게 인식했다. 그런 인식이 《한국현대미술의 모색》전, 《젊은 의식전》, 《실천그룹전》, 《시대정신전》, 《삶의 미술전》, 《토해내기전》, 《반고문전》, 《문제작가전》, 《여성과 현실》전 등의 전시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터진 1985년의 《한국미술, 20대의 힘》전 탄압은 소집단 활동을 ‘민족미술인협의회’(이하 ‘민미협’)의 조직으로 응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미협’은 사회변혁의 한복판에서 미술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숙고했고, 많은 작가들이 거기에 투신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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