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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ART CRITIQUE & RESEARCH PROJECT

잘라라, 평론하는 그 손을 : 미술과 글쓰기에 관한 다섯 해의 기록

글 문정현

“꼴사납게도 정보에 토실토실 살이 찌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비평가가 될 것인가, 초라하게 자기 진영에 틀어박혀 비쩍 말라가는 전문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각 자리에 어울리게 그 두 개의 가면을 재빨리 교체하며 살아갈 것인가.”

 


필자가 미술비평과 학술지면을 번갈아가는 매 순간 빈정거리는 마귀의 꼬임처럼 결연한 의지를 갉아먹는 위의 문구는 『야전과 영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저자이자 사상가인 사사키 아타루(佐々木中)가 우악스럽게 질문하는 대목이다. 그가 진술한대로 최신 이론의 겉핥기에 유능한 면모를 갖추어가며 요란하게 왕왕 떠들어대는 것이 비평에 종사하는 일이라면, 반대편에서는 미시적 구멍으로 밑도 끝도 없이 침잠하며 수척해져가는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꼬락서니의 전문 종사자가 주어져 있다. 또 한편에서는 두 가면을 시기적절하게 번갈아가며 지적 유능함을 과시하는 방법도 강구할 수 있겠다. 가령 오늘날에도 철학자가 가능한지 반문하며 설령 그렇다면 그 역할은 명배우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니체의 문구를 그가 직접 인용하는 까닭은 이와 같은 자조적인 지적(知的) 배경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물론 현장에 비평가와 전문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그곳은 발 빠른 기자와 저널리스트가 우르르 오가기에 안성맞춤인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사소한 가십거리도 남김없이 취재 대상으로 포섭하는 기자와 엄숙한 표정의 학자들 사이에 끼어서 어정쩡하게 자리하고 있는 비평가의 역학관계는 명배우와 다른 방식으로 재상정되어야만 한다. 본 글의 목적 또한 전문가와 여타의 직군은 논외로 하고 미술비평의 현황으로 초점을 한정하여서 불협화음의 비평행위를 조율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에 있다. 비록 그곳이 임시적인 정박지더라도 좌우로 흔들리는 비평의 노선을 끊임없이 조정하며 지향해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비평이란 이론과 확연히 다른 결을 지닌 성질로 비유하는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서술처럼 서재 안의 이론에 온전히 기댈 수도, 그렇다고 현장에서의 상주로만 도출하기에도 빈약한 비평의 어려움은 여러 차례 논해진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의 고언들을 다시 한 번 감안할 때 비평가란 존재는 현장과 학술연구 사이에 낀 채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무엇이든 가능한 동시에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절뚝발이에 가까운 행색으로 그려짐을 보게 된다. 명민한 저널리스트도 아닐뿐더러 뚝심 센 학자의 근엄한 의자를 탐내서도 곤란한 이초라한 존재자는 매 순간 좌초하는 자신의 신체를 지탱할 수 있는 지푸라기를 허겁지겁 요하는 것이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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