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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ART CRITIQUE & RESEARCH PROJECT

A/S - 시대착오적 지원동기와 그 후기

글 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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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미술세계』 2017년 3월호 특별기획 ‘미술비평진단 ①-비평실천’에서 권혁빈의 평론은 한국사회 ‘비평의 위기’의 시원을 1993년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둘러싼 외설 시비에서 찾는다. 성적 표현과 사회의 도덕적 가치에 비평이 별다른 역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분명 지금도 유효성 있지만 곧장 동의하기에 이물감이 생긴다. 작품의 언어로부터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의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라는 전제는 비평이 항상 사회적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인가?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비평은 사회에 화두를 던질 수 있는 공론의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가?

이어지는 비평가들의 논의 테이블은 저마다 ‘비평의 위기가 없던 적이 있었는가’의 자조적인 질문을 비롯한 잔가지를 낸다. 일테면 질문이 함의한 ‘위기’가 가리키는 현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위기를 진단하는 관점은 비평의 생산과 유통의 환경변화를 어떻게 읽는지, 비평의 주체들은 위기를 어떻게 감각하는지, 위기가 비평 주체만의 책임인지 등 저마다 입장차를 확인하며 가능성을 찾는 시도는 ‘비평의 위기’라는 관념에 가시를 세운다.

구체적인 내용과 저마다 다른 얼굴을 지닌 ‘위기’의 수사는 고유명사처럼 배회한다. 많은 지적 중 하나는 생산되는 많은 비평이 인상비평과 축사비평 내지 특정 이론과 사조의 계파로 작업을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인상비평의 파생일 뿐 확실히 근거를 두지는 않는다. 아니, 그러한 일반화는 위기의 통념을 회복 불가능한 체념으로 재생산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펜을 들 때부터 위기의 담론에 둘러싸여 있었기에 ‘비평이 위기를 겪기 이전을 알지 못한다’는 서술은 위기 이전의 온전한 역할을 가졌던 시절을 전제한다고 할 수 없다. 이미 제도와 기관이 비평과 비평가를 근시안적 행정에 의해 도매금으로 취급하는 현실은 위기 이전이라고 해서 온전한 비평 지원 제도가 자리 잡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나 ‘이전에는 좋았지’ 식의 과거 회귀론이 상상 불가능함을 간파하기에. 하여 비평의 위기는 이전과 이후가 부재하는 동시대의 풍경이거나 적어도 전후의 시간성이 사후적으로만 구성될 수 있는 당대의 영구적 현상이 아닌가를 물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평의 위기’라는 기표는 위기의 현실과 맥락을 짚는 노력을 제대로 숙고하지 않은 채 그 자체로 무동력 기관처럼 비평의 생산과 비평 생산을 위한 인프라와 제도 구축을 촉구하고 추동한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위기의 조건까지 부재한 것은 아닌 바, 위기의 구체적 현실을 읽고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시도들이 곳곳에서 이뤄진다. 비평상이 신설되고 자력갱생의 플랫폼과 콜렉티브를 만드는가 하면, 최근에는 비평을 살리기 위한 비평가 프로그램과 레지던시와 같은 응급수혈이 시도된다. 기실 위에 소개한 미술잡지의 기획 또한 위기 진단과 더불어 근래 비평 환경의 변화와 그로부터 비평을 실천하는 비평가들의 태도와 시도들을 살피기 위함일 터. 적어도 우리는 위기를 감지하는 이들이 시도하는 응급조치들로 부터 위기의 구체적인 윤곽을 가늠하고 재차 의의와 한계를 설명할 수 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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