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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T

커다란 세계가 대표하는 쪼개진 세계

글 이해빈

《테이트 브리튼 커미션 2019, 마이크 넬슨: 자산 탈취자들 (Mike Nelson: The Asset Strippers)》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 듀빈 갤러리(Tate Britain, Duveen Galleries) | 3.18~10.6

〈자산 탈취자들〉 설치 전경, 테이트 브리튼, 2019, Photo: Tate(Matt Greenwood)

이미지 제공 테이트 브리튼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미술관은 ‘테이트 브리튼 커미션’을 통해 매해 영국 출신 작가 한 명을 선정한 후 그가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오고 있다. 이렇게 커미션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새로운 작업들은 테이트 브리튼 건물 중앙의 긴 회랑 공간인 듀빈 갤러리(Duveen Galleries)에 설치되어 대중에게 선보여진다. 현재 듀빈 갤러리를 채우고 있는 전시는 영국 작가 마이크 넬슨(Mike Nelson, b.1961)의 설치작품 〈자산 탈취자들(The Asset Strippers)〉이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하절기에 열리고 있는 전시만 해도 상설전을 제외하고 네 개나 된다. 현재도 한 미술 기관에서 고흐와 구이아나 출신 영국 작가 프랭크 볼링(Frank Bowling)의 회고전이 함께 열리고 있는지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이 두 회화 전시에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너무 쉽고 빠르게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페인팅들 틈에서 넬슨의 전시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적게 받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마이크 넬슨은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니다. 지난해, 2018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현장 중 하나였던 구 국군광주병원 부지 내의 교회에서 당시 쓰였던 부속품들을 재조립한 설치 작업 〈거울의 울림〉을 선보이면서 한국의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공간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사물들을 수집하고 재구성한 후 예술적 오브제로서 특정 역사의식 속에 위치시키는 그의 방법론은 이번 전시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커미션을 받고 넬슨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폐업 위기의 기업들이 중고 설비를 사고파는 영국 온라인 경매 사이트들을 뒤지는 일이었다. 해당 사이트들을 통해 농기구의 엔진, 직물 공장의 재봉기계, 굴착기의 일부 장비 등, 기능은 하지만 더 이상 이윤을 낼 수 없다는 이유로 분해되어 저렴한 가격으로 매입되는 중고 장비 혹은 기구들을 한데 모아 재조립한 결과물이 현재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긴 회랑 공간을 산발적으로 채우고 있는 거대한 공업 장비들이 만들어내는 산업적 스펙터클은 마치 폐허가 되어버린 고대 도시가 지닌 숭고하고 비장한 기운마저 자아내지만, 다른 두 회화전으로 통하는 통로 역할을 하다 보니 지나가며 슬쩍 눈길만 줄 경우 조금 더 확장되고 확대되었을 뿐인 단순한 레디메이드 양식의 설치작품들로 비춰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의 작업들은 조각가 앤서니 카로(Anthony Caro)의 해체적 철골 구조물, 폐품을 압축·변형시켜 만든 존 챔벌린(John Chamberlain)의 추상 조각들, 대표적으로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도구나 공업 용품을 주 재료로 삼는 미니멀리즘 조각이나 레디메이드 작품들을 차례로 떠올리게 만든다. 이들이 대개는 후기 산업사회 시대의 추상 조각이 어떤 형식과 양식으로 발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시였다면, 이를 자연스레 연상시키는 넬슨의 이번 시도는 브렉시트(Brexit) 이후 유럽의 산업 지형을 상상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넬슨의 이번 전시는 근현대 조각사와의 연관성을 넘어 여러 의미의 아이러니 속에서 작동하고 있기에 더욱 다각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둡게 녹슬어버린 거대한 장비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각기 다른 기계적 아우라를 내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시각적 독해를 요구하는 단순한 예술적 오브제로 자리잡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개별 오브제의 작품명, 연도, 재료, 출처 등의 정보를 명시해줘야 할 캡션의 부재는 다분히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선택이며, 정해진 자리 없이 대형 공간을 부유하듯 설치된 작품들은 그저 〈자산 탈취자들(Asset Strippers)〉이라 이름 붙여진 하나의 거대한 산업적 풍광을 만들어내는 구성요소일 뿐이다. 개별 작품들에 이름을 부여하길 거부하고 그것들을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게 하는 정보들을 철저히 차단한 작가의 의도는 분절되고 나뉘어져 다른 구획 속에 남겨진 사물들 그 자체만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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