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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 자유와 질곡이 시작하는 곳 : 김영미의 근작 《심상》이 시사하는 ‘자기치유’의 몸짓

글 김복영

김영미, 〈심상의 너머〉, 캔버스에 혼합재료, 116.8×91cm, 2019

1.
화가 김영미가 돌아왔다! 《김영미, 영성과 은유 - ‘퇴적된 형상’에서 ‘심상’까지》(갤러리 미술세계, 7.3~7.15)에서 그녀를 만났으니, 필자가 첫 개인전의 글을 쓴 지 25년 만이다. 작가는 1998년 개인전을 끝으로 18년여의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 근년에야 세상을 다시 본다고 한다. 그녀의 근작 〈심상〉을 대동하고, 20대 후반이던 그녀가 50대 초반의 중년 여인이 되어 나타났다.
작가는 애초 자신의 첫 개인전의 주제를 당시 대학원 논문이었던 「한국선사암각화의 형상에 관한 연구」(1994)에서 시작했다. 이 테마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건 선사 이래 우리 민족의 집단의식이나 종교적 상징들의 근원을 찾는 데 있었다. 당시를 회고하는 그녀에 의하면 그 주제의 핵심적인 질문은 “선사인들은 왜 그처럼 그렸고 나 또한 왜 이처럼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다.
작가는 이 둘을 별개로서가 아니라 하나라는 데서 작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 그래서 역사 이전 시원(始原) 시대의 애니미즘 내지는 토템 형상과 자신의 시대의 암울한 상황들에 주목하고, 이것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역사합(歷史合, sum over the history)’을 시작한다. 이 방법의 일환으로 김영미는 우리나라 고고학계가 1970년대 초에 발견하고 이를 학계에 공식 보고한 울주군 천전리 퇴적층의 암각화의 형상들은 물론,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BC 4000~BC 2000)의 빗살무늬(櫛文) 토기의 그것들을 병합하고 여기에 자신의 시대사적 감성을 융합하는, 이른바 역사합의 기법을 시도한다.

김영미, 〈심상의 너머〉, 캔버스에 혼합재료, 260.6×324.4cm, 2019
중요한 건 주소재인 빗살에 자신의 시대사의 실존을 엉김하는 일이었다. 앞서의 시원 형상들을 원본으로 여기에 자신이 체험한 질곡의 이미지를 융합하는 게 근작의 성공 열쇠였다. 이 문제는 그녀가 그간 삶에서 체험한 생의 질곡으로 충분했다. 그 단서는 1995년 첫 개인전 이래 〈퇴적이미지〉에 등장시키고 있는 산과 나무·나비·새·달과 태양·성혈(性穴)·새와 집, 그리고 같은 해 〈사랑나무〉에 등장시키고 있는 산과 새·알과 둥지·달과 나무, 나아가 최근작 〈심상의 너머〉에서 볼 수 있는 빗살과 얼룩, 그리고 둥긂 혹은 반원이나 타원의 실루엣에서 엿볼 수 있다. 이들 감성재(材)는 모두 그녀가 그간의 인고의 세월 속에 간직했던 은유적 품목들이다. 이를 직유(直喩, simile)로 하지 않고 은유(隱喩, metaphor)로 풀어낸 건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역사합의 기법’을 상징의 수준에서 효율화하는 한편, 20대 후반 이래 겪어온 삶의 질곡(桎梏)들을 좀 더 적나라하게 언술하려는 데 있다. 작가는 이들 소재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해서 말을 하게 해서 이들의 음성을 곁에서 듣고자 함에서였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았던 시대, 나는 모든 굴욕, 권력과 현실에 짓눌려 작아져 있었다. 그래서 시원 시대의 저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길 바랐다. 빌딩(집)이 없으면 어떻고 차가 없으면 어떠랴! 30~40대는 나의 인생을 내가 아닌 타자를 위해 살아야 했다. 힘이 없어 휘둘려 살았다. 수도 없이 빼앗겨 살아야 했다. 18년을 정신병자처럼 살아야 했다. 이제, 내 자신을 찾고자 한다. 근자의 4년은 이처럼 밀려오는 욕구를 캔버스에 쏟아내는 시간이었다. 그리는 게 아니라 용솟음이었다. 그린다는 말보다 캔버스에 쏟아내고 힘을 가한다고 말하는 게 옳다. 이 힘으로 순수하게 선을 긋는다. 조각칼과 나무나이프로 긁고 그 위에 색을 입히고 다시 긁어낸다. 반복되는 무수한 선에서 안식과 평온을 찾는다. (「작업노트」 2019에서 번안)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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