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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생애

글 박윤지

박윤지, 〈to the figure of life〉, Full HD, 컬러, 7분 37초, 2018

오래전 절벽 아래로 바다를 내려다본 일이 있었다. 그때 나의 눈앞에 발아래 바다의 크기와 깊이, 파도쳐 온 세월을 가늠할 수가 없었던 일. 그리고 그와 다른 날 나의 손등 위에 떨어진 땀방울인지 빗방울인지 알 수 없던 물방울에서 그때의 바다가 떠오른 적이 있다. 이 같은 연결이 나의 삶, 실존하는 세계와 그 안에서 시간의 존재를 더욱 의문스럽게 그러나 동시에 나의 탐구를 분명하게 했다.

얼마간 하루 중 낮과 밤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시간이 긴 그런 곳에 머물게 되었다. 나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어둠이 오지 않는 시간을 지켜봤다. 언제 어둠이 오는 것인지 정말로 오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거기 존재하는 움직임들을 지켜본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바람과 눈, 나 자신 말고는 주변의 무엇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 밤도 아침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일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내가 직면하게 되는 것은 변함없는 현재이며, 나는 시간의 형태를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찾는다. 긴 겨울 강과 호수가 얼고 녹기를 반복했다. 한번 녹고 부서지는 형태와 새롭게 얼어가는 물결에는 방향이 없고 변화만 있다. 강과 호수로부터 멀리 내가 낸 물길은 자국을 남기지 않고 빛과 어둠 속에서 길이 흐를 때만 모습을 드러냈고, 결국에는 그 빛도 어둠도 물길도 사라진 곳에 예측할 수 없는 시선이 남는다.

나는 내가 이미 지나온 과거와 직면하는 현재 그리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의 관계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속하지 않고 존재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그것은 나의 시선과 타의 시선이 공존하는 현상에 대한 호기심, 무수한 가능성의 순간을 서로 다른 독립된 세계들이 공유하는 것에 대한 나의 오랜 탐구이기도 하다. 나의 삶과 타의 삶은 하나의 밝혀질 수 없는 미지의 움직임과도 같고 이 움직임이 가진 고유함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그때의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지나온 세월도 알 수 없는, 난생 처음 보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바다와 나의 땀방울 혹은 눈물, 그리고 내 일생에 빈번히 존재해왔던 빗방울에 대해 생각한다. 처음이지만 이 중에 가장 분명하고 가장 새로우며 동시에 가장 오래되었을 움직임을 마주한다.

 

박윤지(b.1985) 작가는 영상 및 사진을 주된 매체로 사용한다. 2018년 아카이브 봄에서 첫 번째 개인전 《white nights》를, 2019년 공간사일삼에서 두 번째 개인전 《tomorrow》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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