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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더 낮은 곳에서 품은 역사

글 한혜수

하늘광장 전경. 정현 작가의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서울역 뒤편의 청파로를 따라 시청 방면으로 올라가다 보면 칠패로라는 길목을 만나게 된다. 이 인근의 서소문 역사공원 내에 자리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지난 6월 1일 개관했는데, 이미 제37회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부러 박물관을 방문할 사람이 아니라면 그 입구를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박물관이 바닥을 파고 들어간 인그레이빙(engraving)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여 공원을 산책하다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라는 표지를 발견한다면, 그리고 문득 작은 호기심이 생겨 긴 통로를 찾아 조심스럽게 따라 내려간다면 이내 붉은 벽돌의 고아함에 둘러싸일 것이다.

 

서소문 밖 네거리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어 지금은 이름만 남긴 서소문은 본디 광희문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시신을 운반하던 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칠패로라는 이름을 남긴 서소문 밖 칠패시장은 어물전을 중심으로 하는 난전(亂廛)시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일설에 서왕모(西王母)가 지배하는 서녘은 죽음과 형벌의 땅이라고 일컬어진다. 당대 지배계층에게도 서소문 일대는 인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에 용이한 지역이라고 판단되어, 공식적인 처형장이 있었고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많은 이들의 머리가 서소문 밖 네거리에 걸렸다. 1801년 신유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통과하던 시기 왕후, 세도가, 대원군의 교령(敎令)에 의해 가장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 받은 곳 또한 서소문이다. 병인년에는 불과 몇 달 만에 8천여 명이 처형당한 적도 있었고, 그 중에는 신자가 아닌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전근대는 야만의 시대였기에, 사람 목숨이 쉬웠다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국가에 의한 대대적인 제노사이드(genocide)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이후 서소문성지에서 성인으로 시성(諡聖)된 이들은 44명, 시복(諡福)된 이들은 27명으로, 단일 성지로서는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순교 성인과 순교 복자(福者)가 되었다.


순례자의 공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내부 공간들을 잇는 통로들은 순례길을 닮아 있다. 지상 1층에서 지하 3층까지, 연면적 24,780.76㎡(약7,496평), 대지면적 21,363㎡(약 6,462평)에 지어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실로 적잖은 규모를 자랑한다.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과 기획소강당, 하늘광장과 하늘길, 콘솔레이션 홀, 정하상기념경당과 명례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외에도 누구든 방문하고 이용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도 겸비하고 있다.

그런데 박물관 내부는 여기서 저기로 단번에 이동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편의성과 효율성보다는 미적 체험의 공간에 더 가깝게 만드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인포 데스크가 있는 지하 1층의 로비에는 마치 십자가의 길을 연상케 하는 이경순 작가의 〈순교자의 길〉 연작 7점이 한쪽 벽면에 늘어서 있었다. 브론즈의 물성에서 오는 무거운 분위기는 관람자를 사색의 시간으로 이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곳곳에 현대조각 작품들이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었는데, 조각들은 지하 2층의 기획전시실로도 이어진다. 개관전에 이어 8월 한 달 동안 《몸의 기억-신형상 조각의 모험》(8.7~8.28)이 진행되었는데, 이환권, 안재홍, 천성명 세 작가의 작품들은 기획전시실에 집중적으로 배치되는 한편 지하 1~2층 곳곳에 설치되어 몸에 관한 조각적 탐구를 엿볼 수 있었다. 종교예술과 순수예술이 병존하는 풍경은 뜻밖에도 별로 이물감이 없다. 이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전시 부문을 책임지는 학예실의 존재와 함께 예술감독 김영호의 디렉팅 혹은 미술위원회의 참여와 자문 덕분일 것이다. 물론, 성지 특유의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도 작품에 집중하도록 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어찌보면 이곳은 미술관의 화이트큐브에 비견할 수 없는 권위가 작동하는 공간이니 자연스런 일이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하늘길 전경. 권석만 작가의 〈발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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