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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숙, 새로움과 전통 사이, 새로운 아름다움

글 백지홍

손인숙 작가 ⓒ김흥규

 

예원(藝園) 손인숙 작가가 스위스 제네바의 극동박물관(Musée des Arts d'extrême-orient)에서 프랑스 작가 마리 게리에(Marie-Laure Guerrier)와 2인전 《흙과 실크(DE TERRE ET DE SOIE)》(2019.9.18~2020.1.19)를 개최했다. 한불 수교 130주년 ‘2015-2016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하여 작가의 개인전 《한국의 안채(Intérieur coréen)》를 프랑스의 대표적인 동양박물관인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이하 기메박물관, 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Guimet, 2015.9.18~2016.3.14)과 국립니스동양미술관(이하 동양미술관, Musée des arts asiatiques de Nice, 2016.5.30~2017.2.28)에서 개최한 이후 그의 작품에 쏟아진 관심이 또 다른 해외 전시라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르몽드』가 말한 “한국 자수의 문화적 침략”이 스위스에서도 이어질까. 『미술세계』는 《흙과 실크》와 시기를 같이하여 손인숙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작가론과 함께 스위스 전시 현장,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를 함께 만들어온 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의 전통 깊숙이 뿌리 내리되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히 변용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어가는 손인숙 작가를 만나보자.

 

실그림의 세계와 만나다

서울 강남구에 자리잡은 아파트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눈앞에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손인숙 작가가 임시 작품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틀리에가 바로 그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아틀리에는 소피 마카리우(Sophie Makariou) 기메박물관장의 제안으로 진행된 프랑스 전시 이후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 장뱅상 플라세(Jean-Vincent Placé) 프랑스 상원의원 등 해외에서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부터 한국까지 여정도 기꺼이 감내하게 하는 매력은 바로 작가의 ‘실그림’이다.

손인숙 작가는 자신의 자수 작품을 ‘실그림’이라 부른다. 이는 전통 자수 기술을 기반으로 창작하되 그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실그림은 자수의 사전적 의미인 ‘옷감이나 헝겊 따위에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수놓는 일’을 품으면서 이를 자신의 작업 스타일에 맞게 변형시킨 단어라 할 수 있다. 스케치와 염색, 도안그리기와 면 채우기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자수 제작 과정은 그의 작품세계에서는 보다 유연하게 이뤄진다. 특히 회화성을 강조한 작업들의 경우에는 특정한 본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스케치도 하지 않는다. 수틀에 씌운 빈천에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옮겨가며 즉흥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틀에서 벗어난 자유다. 물론 감정에 몸을 맡긴다고 해도, 그 과정이 일필휘지일 수는 없다. 하루 다섯 시간씩, 전시를 앞두고는 하루에 열 시간 넘는 시간을 투자할 만큼, 한 땀 한 땀 정직하게 완성되는 것이 자수 작업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에서 딸에게로

손인숙 작가가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자수를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자수 작업을 이어온 데에는 아흔을 넘긴 지금도 손인숙 작가의 작업을 지지해주는 어머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초등학교 교장, 경상남도 초대 교육위원 등을 거치며 평생을 교육자로 살았던 어머니 이경수 씨는 전인교육을 실시하며 손인숙 작가의 창의력을 키워주고 넓은 시야로 볼 수 있는 포용력과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뿐만 아니라 외할머니에게 자수를 전수받은 어머니는 자수 관련 논문을 작성할 정도로 전문가였기에 손인숙 작가는 어려서부터 자수와 친숙했다. 그렇게 7살부터 그림을 그렸고, 10살부터 자수를 놓던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섬유예술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이화여대 재학 중이던 1976년 김옥길 총장과 한미협회 이원순 회장의 주선으로 제작한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 독립선언문 자수가 미국독립기념관에 소장되면서 자수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고, 1986년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손인숙 작가의 예술가적 면모가 어머니로부터 전해졌다는 점은 그의 작품세계의 기저에 놓인 오랜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자수는 규방 문화라 불리는 여성들의 문화였으며, 어머니에서 자식으로 이어져 왔다. 손인숙 작가와 함께 어머니에게 자수를 배운 그의 동생 손경숙 작가 역시 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며 자수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왔고,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이들 세 모녀의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손인숙 작가 가족이 만들어온 작품세계의 가치를 인정 받았다. 어머니로부터 딸에게 전수된 자수를 선보인 기메박물관 전시의 제목이 여성문화를 상징하는 《한국의 안채》인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손인숙, 〈연인의 길〉, 면사, 실크사, 65×80cm, 2018, 이미지 제공: 예원실그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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