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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엣지: REVERSE EDGE

글 주슬아

《리버스 엣지: REVERSE EDGE》 전시 전경, 사진: 오창동

나는 종종 너무 매력적인 어떤 것을 마주하면 처음에는 그것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고, 그다음에는 꼼꼼히 읽어 외우다가, 마침내 읽지 않고 되뇐다. 되뇌는 반복의 과정에서 처음에 눈앞의 명확했던 것은 기억에 의해 흐려지고, 다시 보면 명확해졌다가 또다시 흐려진다. 이 과정을 수백 번 — 수천 번일 수도 있다 —반복한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몰입한 것의 기억을 불러오고 다시 보고, 또 기억을 불러오고 다시 본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명확해지기를 반복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으며 겹치고 쌓인다. 이 과정으로 그것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 오독한 부분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럴 때면 “내가 이것을 오독했어!”라며 수차례 되뇌고, 옆 사람에게 말하고, 강아지에게 말하고, 수십 번—수백 번일 수도 있다—은 말하고 놀라워한다.

언어라는 건 머릿속에 연상되는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오독’을 인지하는 것은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 이미지를 부정해버리는 것이다. 그 의미가 명확하여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틈이 거의 없는 경우 ‘오독’을 인지할 때 부정의 강도는 더 크다. 나는 언젠가 오카자키 쿄코의 〈RIVER’S EDGE〉(1993)에서 ‘RIVER’S’를 ‘REVERSE’로 오독— 엄밀히 말하자면 오청— 했는데 두 단어가 내포한 연상 이미지는 서로 달랐고, 후자로부터 떠올린 이미지는 전자의 그것과 전혀 달랐으며, 서로 간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었다. ‘RIVER’S’와 ‘REVERSE’는 외래어 표기법상 모두 ‘리버스’로 발음하기에 내 귀에 두 ‘리버스’의 각 음절은 동일하게 들렸다. 이같은 오독 이외에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한 작품을 — 한 캐릭터의 이름이 나라마다 다르게 번역/설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한 번역본이 원작과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재편집된 내용이라는 사실을 추후에 알게 되는—오독하는 경험도 흥미롭다. 이런 경험은 대상과 나의 거리를 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어색해진 거리에서 다시 대상의 기억을 불러낸다.

오독한 대상을 기억해 불러내는 것은 카세트 플레이어의 되감기 버튼을 눌러 카세트테이프를 되감는 행위와 비슷하다(카세트 플레이어의 되감기 버튼을 눌러 카세트테이프를 되감는 것은 무작위로 자동 반복-재생하는 것과 다르게 의식적인 행위이다). 의식의 되감기 버튼을 누르면 기억은 되돌아가고, 뒤집힌 이미지의 시간은 오독의 공간으로부터 탈출한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이해했다고 착각한 이미지에 달라붙어 있던 것들은 분리되고 멀어져 재-배열된다. 드디어 재-배열된 이미지의 파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카세트테이프의 몸체는 뒤집히고 ‘A-SIDE’에서 재-배열된 이미지의 파편들은 ‘B-SIDE’에서 재-재-배열된다. A와 B는 기술적으로 자기 테이프의 동일 선상에 위치하지만, 카세트테이프의 몸체가 뒤집히면 수평선 위에는 여러 개의 영점이 생겨난다. A와 B는 동일 선상의 정반대 편에서 서로 마주 보는 동시에 맞닿아 존재한다. 이제 사건이 일어난 사고의 수평 위에는 겹쳐진 영점들이 배열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수평 위의 겹쳐진 영점들이 배열을 시작할 사고의 공간에는 평탄한 격자가 놓여있다. 가늘고 얇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격자 위에 두껍고 울퉁불퉁한 사건들이 압력을 가하며 위치하는 순간, 흐트러지고 교차하는 선들로 인해 평탄한 격자는 짓이겨진다. 격자를 이루던 선은 무질서하게 교차하고 흔들리고 베이고 짓이겨져 파열이 생기는 등 변형된다. 그 위에 또 다른 가늘고 얇은 선으로 이루어진 격자가 내려앉지만, 선은 다시 교차하고 흔들리고 베이고 짓이겨져 파열이 생긴다. 이제 사건들이 구획에 따라 배열되는 듯하지만 이내 뒤집혀버린다. 평탄한 격자 위에 발생한 사건들과 견고했던 격자는 서로 마주하고 붙었다가 멀어지면서 흔적을 남기고 그사이에는 다중의 시공이 생긴다. 미동 없이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격자는 어느 순간 달라진다. 마침내 사건은 흐트러진 채 놓이고 수면에 비치던 상은 수면 위로 뒤집어진다. 뒤집히기 전에 견고하고 평탄해 보이던 것은 이제 조금의 파장에도 흔들린다. 더는 그것을 무엇이라 단언할 수 없고, 의식한 채로 멀어져 바라본다.


주슬아(b.1988) 작가는 중앙대학교 서양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석사과정 중이다. 회화 매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2인전 《PRESET》(ONEROOM, 2017), 2인전 《FORM OVER: RED DATA》(가변크기, 2018), 단체전 《한국에서의 8명(韓国からの8人)》(파프룸갤러리, 일본, 2019), 개인전 《리버스 엣지:REVERSE EDGE》(공간일리, 2019)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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