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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UNG ART 1979~1994 ㉞

사회변혁론과 민중미술Ⅰ

글 김종길

정원철, 〈아버지의 땅〉, 목판화, 38×76cm, 1988. 이미지 제공: 김종길 미술평론가

1980년대 미술운동은 포괄적으로 그 시대의 문화, 사회운동이 지향했던 민족민주운동의 궤적과 그 방향성을 같이했다. 그것은 당시의 미술운동이 문화, 사회운동사적 맥락과 분리되어서 완전히 독립적인 활동으로 연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정치·경제·사회·문화라는 그 시대의 현실적 테제들과 연계해서 미술운동을 바라볼 때, 보다 선명하게 윤곽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 사회가 예술장르인 미술에 비해 더 광범위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는 전제를 기저에 깔고 미술과의 관계를 위계적 개념으로 한정하려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당시의 미술운동은 대부분 리얼리즘(Realism, 현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각 소집단의 미학적 선언과 활동에 따라 몇 가지 갈래로 분류된다. 예컨대, 비판적 리얼리즘, 당파적 리얼리즘, 민족적 리얼리즘, 민중적 리얼리즘, 자주적 리얼리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신형상주의, 신표현주의, 비판적 리얼리즘, 민중적 현실주의 등 소집단마다 경향이 달랐다. 그 이유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미술계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1985년 ‘민족미술협의회’(이하 민미협)의 창립과 더불어 민족민중미술(이하 민중미술)이란 합의 개념으로 통일되긴 하였으나 소집단의 정체성과 비평적 시각, 사회운동 변혁론에 따른 입장 표명에 따라 민족미술과 민중미술을 개념적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앞서 밝힌 것처럼 소집단별로 경향성을 달리했다.

이러한 논의는 1980년대 후반에 본격화된 한국사회구성체논쟁(이하 사구체논쟁)과 맞물려 계파적 경향성이 쟁점화되었고, 급기야는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1988년 12월에 ‘전투적 신명’의 기치를 내건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이하 민미련) 건설준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민미협은 계파분열의 내홍을 겪어야 했으며, 또한 1988년에 ‘미술비평연구회’(이하 미비연)가 탄생하면서 민중미술계 내부의 이론적 계파성 논쟁이 불붙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운동의 이론적 실천과 사회변혁론이 미술현장의 실제 작품들에 어떻게 투영되어 나타났으며, 결실을 맺었는가에 대해선 구체적인 성과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이론적 경향성의 각 개념에 대한 정리도 되어 있지 않다. 그보다 먼저 미술운동 내의 미학적 계파성과 사회변혁론을 비교 분석한 연구도 거의 존재하지 않아서 이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회주의권 몰락과 함께 급격하게 소멸해 버린 사회변혁론만큼이나 빠르게 민중미술의 계파적 미학, 미술론도 자취를 감춰 버렸다. 아니, 그러한 변혁론과 미술이론의 경향성이 과연 미술창작방법론으로서 충실했고, 그에 따른 작품들이 창작 내지는 발표되었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의 사회변혁론을 재구성해서 살펴보자.

 

사회변혁론 논쟁

1980년대 사회운동은 변혁론을 둘러싼 이론투쟁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사구체논쟁’ 혹은 ‘변혁론논쟁’이라고 불리는 이 투쟁은 그간의 우리사회에 대한 본질적이고 과학적인 인식을 제약하고 있었던 ‘인식의 벽’을 깨뜨리면서 한국사회의 구조와 실천운동에 대한 변혁적 인식을 명확히 하는데 기여했다. 그 단초는 『창작과 비평』이 제공했다.

1985년 『창작과 비평』 통권 57호가 기획한 “한국자본주의논쟁”에서 당시 경제평론가로 활동하던 조선대 박현채 교수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하 국독자론)을 발표하고,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가 ‘주변부자본주의론’의 입장에서 국독자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구체논쟁은 본격화 되었던 것이다. 이 논쟁은 1980년대의 경우 1983년에 결성된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민청련) 내부의 CNP(CDR·NDR·PDR의 약칭으로 시민·민족·민중민주주의 변혁론을 뜻함) 논쟁으로 소급되지만, 사회학자들은 더 근원적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 “반봉건적 사회제관제의 철폐를 통하여 자본주의적인 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모든 인간이 법적으로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는 근대적인 정치 질서를 수립하려는 민중들의 자각적이고 의식적이고 집단적인 운동을 근대 사회변혁운동”의 차원에서 이 논쟁의 뿌리를 찾기도 한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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